[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모든 물건의 가격 단위를 ‘1000원’으로 맞춰 판매하는 신기한 가게들이 있었다. 이 가게는 생활용품, 학용품 등 수많은 종류의 제품을 판매했고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은 1000원을 벗어나지 않거나 가격이 아주 비싸야 5000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이 가게들은 품질이 낮아 오래 쓰지 못하는 저가(低價)의 중국산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입지를 굳히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 제품의 품질을 낮춰 판매 단가를 내리는 방식이 아닌 제품 유통구조의 개선이 이뤄짐에 따라 ‘이 가게’들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길게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확산된 가성비(가격 대비 효능) 소비 트렌드는 잠시 잊혔던 이 가게들을 다시 부활시켰다. 이 가게들은 같은 값이면 한 개 더 살 수 있는 제품 혹은 교체 주기가 짧은 생활용품들을 판매하면서, 대형 유통채널이 진입하지 못한 주택가 상권을 장악하고 소비자들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했다. 바야흐로 ‘균일가 유통 할인점’의 전성시대다.

균일가 유통?

균일가 유통은 제품의 원가에 적정 수준의 마진을 더해 판매가(시장가격)를 결정하는 기존 유통 방식과 차이가 있는 유통 구조다.

균일가 유통은 소비자가 특정 제품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시장 가격보다 낮은 판매가(균일가)를 먼저 결정한다는 점에서 일반 유통과 순서부터 다르다.

균일가 유통업체들은 비용 절감, 그리고 각 유통업체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진으로 이 기준을 맞춰 상품을 판매하는 데 초점을 두고 상품들을 매입한다. 기본 상품의 카테고리는 교체주기가 짧은 생활필수품으로 설정돼있기 때문에 제품의 품질이 반드시 최상급일 필요는 없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싼 가격으로 짧은 기간 쓰기에 무리가 없을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면 충분하다. 균일가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나 공급업체에게 장기간의 구매 계약을 전제로 대량의 상품을 매입해 납품 단가를 낮추는 방법으로 판매 단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일련의 유통 효율화 방식은 1990년대 중반 미국·일본 등 유통 선진국에서 시작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로 확산됐다. 당시에는 이러한 방식을 ‘신(新)유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물론 요즘 유통업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신유통’과는 의미가 확연하게 다르다).

우리나라에 있던 과거의 균일가 할인점들은 유행이 지났거나 과도하게 많은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제품들을 거의 원가 수준의 가격으로 정해놓고 판매했다. 그래서 단가를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업체들은 대량으로 수입된, 품질이 좋지 않은 중국산 제품들을 대량으로 수입해 판매했다. 그러나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에게 이들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러나 지금의 균일가 유통점들은 예전과 다르다. 품질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아무리 가격이 싸도 구매하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을 반영해 ‘가격이 싸도 쓸 만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중국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국 내 중소기업에서 생산돼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검증받은 제품들을 판매해 상품의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올렸다. 이로써 각 업체들은 가격 대비 효용과 만족도를 따지기 시작한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