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의 치매노인과 주변 환경과의 상호 관계에 대해 여러 자료를 보며 느낀 바가 있다. 우선, 생활의 방식과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매우 안정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다. 길 잃은 치매노인을 대하는 주민들은 특별히 당황하지도 않고 훈련되어 있거나 최소한 교육이 되어 있다. 어린 학생들까지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 놀랍다. 아마도 그 비밀은 완벽하게 준비되어서라기보다 치매노인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 같다.

또한 마을과 기관마다 치매관리의 유형이 무척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시니어공동주택에 기거하면서 밀가루 반죽, 요리, 머리 감기기 등 취미별, 재능별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는가 하면, 기억은 잃었으되 몸은 기억한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과거 미용실에서 일했던 직업 활동을 재현하도록 하는 네일아트의 기회도 있다. 치매노인들만의 음식점 운영을 통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면서 건강인들과 교류하는 시도도 보인다. 한편 주변 세차장에서 세차를 통해 주민과 교류하고 일하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며, 주변 주간보호센터 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며 나눔의 가치를 상기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개호복지사를 동반해 우체국, 은행 등 관공서도 이용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하며 노래 등 취미생활도 즐긴다. 창의적이고도 다양한 관리 방식의 제공이 가능한 것은 이해에 기반한 인식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동일한 모델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각 마을마다 상황에 맞게 다양한 양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지장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보호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이고 활동하도록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양시설 혹은 집 밖으로 나올 기회가 제한된 채 약물에 의존하는 치료보다는, 치매노인이 최대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리적, 심리적으로 친숙한 환경을 제공하고 돌발상황에 대비해두었다. 그들에게 치매는 관리의 대상이기 이전에 생활의 일부분이라고나 할까.

부러운 마음에, 우리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자문해 본다. 나의 부모님이나 내가 치매 등 심각한 노인성질환 진단을 받고 남은 인생을 신체 및 인지기능 장애 속에서 살아간다고 가정하자. 과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찾는 대신 내 삶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늘 하던 대로 익숙한 환경 가운데, 그러나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일상…. 우리가 동경하는 시나리오의 중심에 있는 단어다. 치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치매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은 늘 익숙했던 일상이라는 환경이라고 한다.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88.6%는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기거하기를 원하며,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사는 집에서 살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비율이 57.6%에 이른다. 일상의 개념을 이루고 있는 영역은 지역적 요소를 포함해서 관계적 요소, 심리적 요소를 포함한다. 그것을 포괄하는 것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 편안한 나의 동네 곧 ‘지역사회’다.

지역사회 주도적 돌봄체계란 심각한 노인성질환 및 일상생활활동(ADL, Activities of Daily Living)이 자유롭지 못해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니즈에 맞는 복지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역사회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돌봄의 통합창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종합적인 돌봄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민간기관과의 연계가 수월한 인프라를 구축해 지속적인 돌봄체계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돌봄체계는 생존을 위한 전방위적인 영역을 포함한다. 곧 시니어 주거지원을 비롯해 교통 및 지역사회 내 일자리 창출 등 생활 지원과 함께 예방과 건강관리로부터 치료 및 질병관리 등 보건의료와 복지를 연계하고 나아가 장례문화까지 이어지는 통합 케어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최근 정부 발표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커뮤니티 케어는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 의료 연계형 돌봄체계를 구축하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시도다. 우리나라는 돌봄에 대해 가족의 과중한 부담을 덜고 국가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돌봄이 필요한 장기요양 수급자는 전체 노인인구의 8%에 이르며, 중증 치매 와상 노인 대상의 시설서비스와 재가서비스인 주야간보호센터, 방문요양, 방문간호 등을 포함한 급여기관 수 역시 양적 확산을 이루었고, 이제는 질 관리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돌봄에 대해 전적으로 가족의 부담이었던 시대가 있었다면, 가족의 문제로부터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사회적 비용부담의 완화 및 개인의 선택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제는 국가 지원 아래 지역사회 주도적인 해법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의료기관에서 돌봄 수요가 있는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퇴원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사회에서 정착하도록 지원하며, 지역사회 내 돌봄 방안을 마련해서 다양한 민간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일상을 보장하는 움직임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모두가 어울려 살기 위한 지역사회 중심 돌봄체계는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단지 병원이나 시설로부터 지역사회로 옮겨놓는 것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 및 지역사회가 병원, 시설 등 기존의 의료·복지·요양 기관과 교류하고 순환하도록 사회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와 복지 간 연계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유도할 정책의 재정립과 인센티브 체계 및 통합적 정보시스템 인프라도 마련되어야 하는데, 발걸음은 떼었으되 가는 길은 그리 수월치 않다. 스웨덴, 일본 등은 모두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이후 합의적 의견을 수렴하기까지 15~2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법 제정을 비롯해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되었다. 사회 전체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삶의 터전 속에서 생활의 주체가 되며 보호 이전에 작더라도 움직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그것이 곧 초고령사회라는 미래에 대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