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생소하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대중문화를 통해 이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어떻게 이해되고, 우리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신체의 강화, 초월적 육체

트랜스 휴머니즘을 신체의 강화로 인한 초월적 육체로 정의한다면, 1987년 개봉한 영화 <로보캅>이 대표주자격이다. 2014년까지 많은 속편과 스핀오프가 제작된 이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신체기능이 정지된 경찰이 수술을 통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로봇경찰이 되는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강력한 중화기로 무장하고 인공지능 센서로 적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기술로 무장했다. 평범한 경찰이 하지 못하는 일을 척척 해내며 악당들은 로보캅의 등장에 공포를 느낀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육체의 초월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고독한 영웅의 전기를 세속적이고 장난스러운 유머 코드로 승화했을 뿐, 영화에 흐르는 기본적인 얼개는 <로보캅>과 동일하다. 그는 불의의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기의 사명과 비전을 위해 스스로 영웅이 됐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랑>도 마찬가지다. 특기대를 중심으로 미래 한국의 우울한 단면을 그려는 작품이며, 주인공은 중화기와 강력한 철갑갑옷으로 무장해 적을 소탕한다.

▲ ICT 기술과 영웅, 그리고 사유의 만남. 출처=이코노믹리뷰 디자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SF 영화의 신기원으로 평가된다. 예지능력이 극의 핵심이지만 주인공이 ‘거대한 악’과 맞서는 장면의 주요 변곡점은 최신 ICT 트렌드를 모두 반영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로 인류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며 터치 스크린과 음성 인터페이스로 방대한 정보를 정리해 축약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봇과 드론을 이용해 정찰을 하며 레이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신체의 한계를 보완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도 있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진 미래, 강력 범죄와 테러 사건을 담당하는 엘리트 특수부대 섹션9의 활약을 그렸다. 주인공은 테러 조직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받아 신체의 한계를 돌파하는 다양한 기술력을 보여준다.

이 영화들은 ICT 기술을 활용해 신체활동을 극대화한 대표사례다. 그 연장선에서 인류 시간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영화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영화 <에일리언>과 <레버넌트>의 세계관을 보자. 미지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탐사를 시도하는 줄거리가 펼쳐지는 가운데 우주 비행사들이 동면에 들어가 긴 비행시간을 견디는 장면이 나온다. 수백년간 펼쳐지는 비행시간은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도 파괴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우주 비행사들을 동면에 들어가게 만드는 개념이다.

▲ ICT 기술과 영웅, 그리고 사유의 만남. 출처=이코노믹리뷰 디자인

<에일리언 4>에는 미래의 유전공학 기술도 등장한다. 군인 42명과 과학자 7명이 탑승한 연방군 의학탐사선 아우리가 호(USM Auriga, Medical Research Vessel)가 행성 피오리 16호에서 200년 전 괴물과 격전을 벌인 리플리의 혈액을 발견한다. 리플리는 이미 사망했으나 그의 혈액을 통해 살려내고, 그의 몸속에 남은 에일리언도 동시에 구현하는 데 성공한다. 결과는 끔찍했지만, 리플리는 인류는 물론 우주괴물 에일리언의 힘과 능력을 모두 보여준다는 설정이다.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저스>의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 중 북극에 추락해 냉동인간이 되기도 했다.

인류의 육체적 강화와 이에 따른 초월, 이 대목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초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옳은 길을 걷고 있을까”

트랜스 휴머니즘이 신체의 초월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ICT 기술과 정신의 결합을 다루는 장면도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라는 본원적 의문이 피어난다.

ICT 기술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는 소재를 가진 영화는 <써로게이트>가 있다. ‘대리, 대행자’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진 <써로게이트>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계의 무한한 능력을 결합해 발명한 대리 로봇의 세계를 보여준다. 써로게이트를 통해 100% 안전한 삶을 영위하는 근미래가 배경이다. 자기가 원하는 아바타를 선택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개념이다. 그러나 써로게이트가 공격을 당해 그 사용자가 죽음을 당하는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영화 <써로게이트>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구질구질한 삶’에서 멀어지는 순간, 이 대목에서 틈을 보이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다뤘다.

▲ ICT 기술과 영웅, 그리고 사유의 만남. 출처=이코노믹리뷰 디자인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에 바탕을 둔 영화다. 세계인이 대부분의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에 거주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으며, 현실은 암담하지만 모두가 ‘오아시스’에서 행복하게 사는 줄거리다. 오아시스의 창업주가 죽으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열쇠를 남기자 벌어지는 거대한 전투를 그리고 있다. 가상과 현실 중 어떤 세계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 인류는 오아시스를 통해 새로운 오감만족의 시대를 살게 됐으나, 현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 담겼다. 영화 <데몰리션 맨>은 고전 SF영화며, 일종의 오락물로 제작됐다. 그러나 트랜스 휴머니즘이 주는 가치관의 혼돈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기술과 ICT에 의존하는 나약한 미래인과 터프한 과거의 형사가 벌이는 미묘한 갈등이 핵심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도 마찬가지다. 1982년 버전에 이어 지난해 새로운 속편이 제작됐으며 인간과 리플리컨트라는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세상을 그렸다. 1982년 작품은 핵전쟁 후 혼란으로 뒤덮인 2019년의 세상이 배경이다. 복제인간 ‘로이’를 포함한 ‘넥서스 6’이 오프월드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지구로 잠입하자 이들을 진압해야 할 블레이드 러너가 투입되는 이야기다.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라는 성찰을 시도한다. 내가 나라는 증거는 나의 기억에 있을까, 타인의 기억에 있을까. 인간의 기억이 복제되어 사이보그에 투입됐다면 사이보그가 나인 것일까?

영화 <엑스 마키나>는 인공지능과 사람의 교감을 그렸다. 매력적인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만난 연구원이 겪는 혼란을 중심에 둔 이야기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그렸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인공지능 인격은 과연 생명의 존중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소모품에 불과한 것일까. 각자의 인격을 의식하던 인물들은 점점 모두를 믿지 못하게 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들어간다.

영화 <트랜센더스>는 인류와 인공지능의 경계를 허문다. 테러를 당해 사망한 과학자가 자기의 정신을 인공지능화하는 영화다. 일개 인간으로 연구를 할 때와 차원이 다른 사유능력을 확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위험한 영역으로 치닫는 정신의 사유에 대한 고찰이다.

영화 <맨 프롬 어스>는 냉정하게 말해 ICT 기술 영화가 아닌, 초자연적 영화다. 어느 날 한 대학교수가 은퇴를 하자 친구들이 방문해 송별연을 열어준다. 이 자리에서 교수는 자기가 석기시대부터 살았으며, 예수와 친구이자 부처를 실제 만났다고 말한다. 그가 허언증일까, 아니면 진짜 고인류일까를 두고 벌어지는 서로 간의 의심과 충격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만약 죽지 않고 오래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가치관과 인생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 <맨 프롬 어스>는 의심과 진실의 사이에서 트랜스 휴머니즘이 겪는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