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인류는 불을 발견하고 정치를 발명했으며 산업과 폭력을 두 손에 쥔 채 이 땅에 섰다. 이후 몇 차례 산업혁명을 거친 인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닷컴열풍이라는 열병을 앓으며 인터넷이라는 무한의 공간을 발견한다.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오프라인으로 명명한 인류는 새롭게 발견한 신대륙을 온라인으로 부르며 사실상 두 영토를 동일선상에 뒀다. 인류는 온라인의 발견으로 또 한 번 초월의 경지에 다가선 셈이다.

육체의 초월, 시작과 끝

트랜스 휴머니즘은 기술의 시작에서 발전했다. 고인류가 발명한 불, 건축술, 정치체계, 무기 등 문명의 시작을 알린 모든 아이템들이 트랜스 휴머니즘의 근간을 이룬다는 뜻이다. 다양한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다.

전통 산업혁명에 이은 ICT 기술의 발전은 진짜 트랜스 휴머니즘이 태동한 결정적 계기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생존을 넘어 초월적인 존재가 되려는 시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통신의 개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전에는 ‘인간의 의사·지식·감정 또는 각종 자료를 포함한 정보를 격지(공간적) 사이에서 주고받는 작용·작위(作爲) 또는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광의의 개념으로 이동과 운수부터 좁은 의미로는 전류를 매개로 하는 전기통신기술을 뜻한다. 이를 중심으로 단순한 기술로 넘어설 수 없는 인류의 시공간 개념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 4차 산업혁 개념. 출처=이코노믹리뷰

평야에서 사냥에 나선 고대 인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유난히 눈이 좋은 사람이 위험을 감지하면 그 정보는 오롯이 공동체에 전달되어 기민하게 움직이는 조직의 경쟁력으로 승화된다. “숨어라” “뛰어라” “잡아라” 빠르게 오가는 밀접한 정보의 전달은 의식과 자유, 기억과 인지적 명료화에 영향을 미쳤고 의식의 고도화까지 끌어냈다. 소통은 중요한 생존의 수단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시스템적 측면에서는 역사시대의 등장과 궤를 함께 한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왕 시절, 제국은 통치상의 이유로 곳곳에 역제를 설치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봉화도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암행어사의 마패도 말을 빌릴 수 있는 역참에서 사용된 통신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적 측면은 유럽 중세시대에 잠시 그 명맥이 끊기지만, 1516년 신성로마제국시절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데 다시스가 더욱 발전적인 모습으로 부활시킨다. 당시 그는 제국 내부에 우편망을 구축해 일종의 사영기업으로 만든다. 소통의 메리트가 지배층의 의도를 알리는 도구에서 일반 대중에게 내려오는 최초의 순간이다.

시간은 흘러, 통신의 시스템적 인프라는 시대의 비전인 기술과 행복한 결혼을 한다. 1809년 오스트리아의 죄머링을 시작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전기통신의 역사는 1844년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의 전신선을 연결하는 사업이 등장하며 성장동력을 잡았고, 1876년 A.G.벨이 전화기를 발명하며 기세를 올린다. 무선통신 기술도 1893년 N.테슬라의 손을 거쳐 인류역사의 화려한 발전을 예고한다.

1969년 아르파넷(ARPANET)이 탄생한다. 인터넷의 시작. 이후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리클라이더(John C. R. Licklider)의 은하 네트워크(Galactic Network)가 성과를 거두며 현재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 컴퓨터는 주판의 개념에서 탄생해 계산을 빠르게 도와주는 기기에 지나지 않았다. 디스크로 대표되는 보조기억장치에 데이터를 저장하며 고속으로 연산이 가능한 기기가 초기 컴퓨터의 본질이다. 그러나 1개 이상의 컴퓨터를 연결해 새로운 의사소통의 지평을 열고자 하는 인류의 도전이 시작됐고, 이 노력이 인터넷이라는 결실을 맺은 셈이다.

인류는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거치며 트랜스 휴머니즘의 발판을 착실하게 쌓았다. 기술의 발전이 시간과 공간을 파괴하자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가능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통신과 ICT 콘텐츠 플랫폼이 불꽃을 튀기며 경쟁하거나 협력하는 사이, 더욱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트랜스 휴머니즘의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초월적 도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시공간의 데이터 흐름을 원점에서 변화시켰다면, 21세기는 ICT 기술이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폰이 모바일 혁명을 통해 ICT 초연결의 촉수가 됐다면, 웨어러블은 아직 만개하지 않은 포스트 플랫폼 중 하나다. 구글 글래스가 대표사례다.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구글 글래스는 ‘보는 행위’만으로 즉각적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보여주는 초월적 존재, 세상의 통찰력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을 인류에게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ICT 기술은 더욱 트랜스 휴머니즘의 가치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특히 의학과의 만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하버드대와 함께 피부 주름을 팽팽하게 유지해주는 인공막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 온라인판에 공개했다. 주름진 피부에 크림처럼 바르면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는 기술이다. 이외에도 전자피부와 인공막이 등장해 세계 의료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로봇관절과 수술, 이에 따른 다양한 ICT 기술들도 봇물처럼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 동면 프로젝트까지 시도되며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씨앗이 만개하고 있다. 스포츠 영역도 일찍부터 트랜스 휴머니즘이 집중한 대목이다.

사유의 공간도 접근하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기술의 발전으로 초월적 존재가 되려는 시도지만, 그 영역이 육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사유의 공간에도 트랜스 휴머니즘의 가치가 강하게 배어 있다. 인공지능을 통한 사유의 확장이 대표사례다.

1943년 워렌 맥클록(Warren McCulloch)과 윌터 파츠(Walter Pitts)는 인공지능의 기원이 되는 인공신경망에 대한 최초의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마치 그물처럼 인공신경망을 연결해 사람의 두뇌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후 1950년 소위 인공지능 검사법이라 불리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까지 등장한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 해독가인 알랜 튜링(Alan Turing)이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란 논문에서 처음 소개됐다.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추었는지를 판별하는 실험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어 1956년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최초의 인공지능 학회를 연 후 인공지능 황금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 규모. 출처=시장조사업체

197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 기술력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고, 자연스럽게 연구성과도 축소되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결정타는 역시 기술력 부족, 특히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인공지능의 필요충분조건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고, 확보해도 이를 정제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또 다른 반전 모바일 시대,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1970년대 중반부터 제기되던 인공지능 암흑기는 현재에 이르러 서서히 걷혀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기술의 발전, 데이터의 확보와 활용이라는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대목이 주효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글과 애플, MS를 비롯해 부동의 강자 IBM의 로드맵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제 글로벌 ICT 기업들의 미래 슬로건은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가 아닌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로 좁혀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트랜스 휴머니즘이 추구하는 인류 정신의 초월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인류 두뇌의 한계를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확장하겠다는 야망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와 이세돌 9단의 대국, IBM의 왓슨이 병원에서 활동하는 장면이 대표사례다.

인공지능은 예술의 영역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소설을 쓰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빅데이터를 정제해 의사의 판단을 돕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스마트팩토리를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