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크레타섬에 갇힌 아버지 다이달로스를 구하기 위해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만든다. 그는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에 성공하지만,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에 가까이 가는 바람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해 죽고 만다. 그가 떨어져 죽었다는 바다가 ‘이카루스의 바다’라는 뜻의 이카리아해(海)다. 기술을 맹신한 인류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현인들의 경고다.

▲ 이카루스의 꿈은 무엇일까. 출처=갈무리

“이카루스는 틀리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의 실패는 기술을 과신해 죽음을 자초한 불쌍한 인간 군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술이 주는 달콤한 과실을 적극적으로 탐하면서도 끊임없이 사유하고 성찰하는 기조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로 인류의 정신과 육체를 개선하려는 문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 휴머니즘을 초월한 휴머니즘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인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그 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며, 수단으로 기술을 적극 도입하자는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문화평론가인 마크 오코널은 저서 <기술공상가, 억만장자, 괴짜가 만들어낼 테크노퓨처-트랜스 휴머니즘>을 통해 우리가 만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를 ‘첨단 과학기술’로 평가했다. 그는 인체냉동보존 시설인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을 방문하고 전자 장치를 피부에 이식해 감각의 극대화를 노리는 언더그라운드 바이오 해커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을 투영한 초월의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아직 미비하지만 조금씩 몸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공상과학에 나올 법한 개념에 진지한 성찰을 거듭하는 것일까? 트랜스 휴머니즘의 배경과 전제는 우울해지는 인류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인페르노>에는 인류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고, 이를 막으려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트리려는 베르트랑 조브리스트라는 과학자가 등장한다. 그는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류의 절반을 죽이려는 그릇된 사상을 가진 사람이지만, 최소한 현재 인류의 미래에 짙은 두려움이 깔린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기업인 아우렐리오 페체이(Aurelio Peccei)는 1968년 급속한 공업화와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제시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는 30명의 학자들과 로마클럽을 설립했다. 현재 저명한 학자와 기업가, 유력 정치인이 가입된 로마클럽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72년 인류의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발간해 현대문명의 몰락을 경고하기도 했다. <성장의 한계>는 <성경>과 <자본론>, <종의 기원>과 함께 인류가 남긴 불세출의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로마클럽은 1973년 미국의 MIT에 지속가능한 지구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했다. 월드원(World One)으로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디지털 컴퓨터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 MIT 교수가 맡았다. 그는 호주에서 슈퍼 컴퓨터를 활용해 월드원으로 인류가 당시까지 걸어온 행보를 데이터로 삼아 지구와 문명의 미래를 예상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현재의 인류 문명은 2020년 고비를 맞이하며, 2040년 멸망의 길을 걷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최근 호주의 한 방송사가 재조명해 유명해진 월드원의 데이터를 보면 산업발전에 따른 환경오염, 기후변화로 2020년부터 자원이 고갈되고 세계 각 지역에서 대규모 아사사태가 벌어진다. 2040년이 되면 대부분의 인류가 멸망하고 문명도 붕괴된다는 주장이다.

올해 3월 작고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브 호킹도 인류의 멸망을 경계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영국 <데일리메일>을 통해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으로 인류는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면서 “특히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다. 지구는 섭씨 460도 고온 속 황산비가 내리는 금성처럼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인류는 20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인류 멸망과 문명 붕괴에 대한 우려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결정적인 동력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의 기저에는 인류를 둘러싼 무거운 난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 본연의 가치에 집중한다는 정신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이자 기업가인 로랑 알렉상드르는 기술 철학자 미셸 베스니에와의 대담집인 <로봇도 사랑을 할까>를 통해 “인간과 기술의 융합은 이미 현실”이라면서 “인공지능 발달과 트랜스 휴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를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카루스는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류의 난제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본연에 집중, 소위 초인간의 경지를 추구한다.

어려워 보이는 개념이지만 인류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한 답이 나온다. 인류는 불을 발견하며 정착을 시작했고 정치를 태동시켰다. 말을 길들이며 속도의 한계를 돌파했고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역사를 바꿨다. 넓은 의미로 보면 모두 트랜스 휴머니즘의 연장선이다.

넓은 의미의 트랜스 휴머니즘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게 만들었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말하는 진정한 트랜스 휴머니즘은 광의의 개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시작부터 진짜 의미를 추구한 것이 아니다. 최초 불꽃은 육체의 초월에서 튀었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에는 슈퍼스타들이 총 집결해 각국의 명예를 위한 뜨거운 경쟁을 펼친다. 그들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를 외치며 육체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으려 한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을 도와줄 기술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수영의 전신 수영복, 초경량 자전거, 호흡하는 운동화 등 0.001초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기술의 총집결이 벌어진다. 기술의 힘을 통해 인류의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ICT 기술을 동원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스마트 헬스, 유전학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 육체의 초월을 통해 인류의 한계, 즉 수명연장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들이다. 여기에 고차원 ICT 기술을 중심으로 인류의 육체는 물론 정신을 초월하려는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인류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오로지 인류라는 주체에만 집중해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트랜스 휴머니즘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구름 위 신선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