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모빌리티 산업은 정체됐다. 최근에는 카풀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며 ICT 업체와 택시업계의 충돌이 심각하다. 모빌리티가 가지는 파괴적인 역량을 끌어내고, 구 산업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 정주환 카카오 모빌리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첩첩산중

택시업계의 올해 초까지 카풀 문제에 있어 강공모드로 일관했다. 국회, 서울시 주최로 열릴 계획이던 관련 토론회를 보이콧하거나 ‘난입’하는 방식으로 무조건적인 카풀 합법화 반대를 주장했다. 지난해 풀러스의 24시간 카풀 서비스 운영 시작으로 촉발된 갈등이 글로벌 ICT 거인인 우버 택시를 몰아낸 성공의 기억과 어우러져 일종의 시너지를 낸 셈이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택시업계를 적절히 움직인 특정 정치집단의 움직임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강공모드로만 일관하던 택시업계가 일부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시기는 지난달 초다. 택시 4단체가 쏘카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재웅 대표의 혁신성장본부 민간본부장 위촉을 비판하면서도 대화의 가능성을 넌지시 남겼기 때문이다.

당시 택시 4단체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인터넷기업협회가 나선다면 카풀 문제를 논하겠다”고 말했다. 카풀과 관련해 일체의 대화를 거절하던 택시업계가 모빌리티 시대의 발전을 막는 장애물로 지탄받는 현상에 부담을 느끼는 한편, 일종의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희미한 대화의 희망은 약 20여일만에 파탄났다. 택시 4단체는 지난달 22일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며 카풀 합법화와 관련된 일체의 논의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위원회가 해커톤을 열었으나, 택시업계는 불참을 선언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카풀 업체와 규제 개혁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카풀 업체는 자기들만의 이야기만 했다”면서 “국토부가 최근 카풀 서비스의 1일 2회 운행 허용과 같은 절충안을 제안했으나 카풀 업체는 무조건적인 합법화 주장만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인터넷기업협회 등을 통한 대화의 가능성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는 법대로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와 관련된 모든 대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업계의 강공모드가 계속되는 가운데 카풀 서비스 이용자들도 반격하고 있다. 카풀 합법화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일반인 카풀 이용자들로 구성된 카풀러가 나섰다.

카풀러는 "택시 업계는 2018년 8월23일 한 일간지를 통해 '카풀 운전자의 경우 면허제가 아니어서 성범죄자 등 범법자가 채용될 수 있다'며 카풀에 운전자로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했다"면서 "▲승객이 없는 낮 시간대에 몰려나와 운행하면서 수익이 낮다며 한탄하고, ▲승객들을 골라 태우며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승차난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며 카풀을 이용하는 국민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치부하는 파렴치함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풀을 넘어 모빌리티 전반도 지지부진하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스마트호출 서비스를 안착시키지 못했고, 쏘카와 그린카는 날카로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리운전과 렌트카의 결합을 꾀하던 차차 크리에이션의 도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 택시기사들이 카풀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모빌리티는 거대 인프라"

국내에서 모빌리티를 둘러싼 논란이 심해지는 가운데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은 숙박, 관광, 쇼핑 등 커머스, 화물, 그리고 주차장 등 연계되는 산업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모빌리티를 단순한 이동 플랫폼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은 “인공지능 개인비서를 매개체로 차량과 가정이 연결되는 ‘Home-to-Car’와 ‘Car-to-Home’ 서비스 역시 모빌리티 서비스의 일환으로서 장기적으로 이용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면서 “교통수단이 현대인의 삶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빌리티 서비스의 ‘인프라’로서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모빌리티의 규제 개혁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은 “많은 국가들은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의 전면적 허용보다는 기존 산업의 보호와 인공지능 등 ICT 기술의 적용을 통한 효율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이용자들의 편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방향성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빌리티 서비스 자체도 MaaS를 통해 통합되면서 이용자 측면에서 파괴력을 키우고 있다. 이 대목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 정근호 팀장은 “모빌리티 활성화를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대화를 시작하는 한편 제한적으로 시험 서비스를 통해 실제 기존 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한 후 평가를 기반으로 허용 수준(불허, 허용, 제한적 도입)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면서 “정부는 반대급부로 기존 업계에 대한 규제 완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줄타기가 필요하다. 정 팀장은 “지금 해외에서 지역제한 해제, 합승 완화, 요금 자율화(탄력요금제)를 시작하고 있다”면서 “모빌리티 분야에서 무조건 규제 개혁이 어렵다면 시간이 걸려도 차분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ICT 기술 도입과 함께 기존 산업계도 납득할 수 있는 보상을 제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 위원이자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법률특허분과 단장인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도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저서 <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 출간기념 토크쇼를 통해 "스타트업이 카풀한다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공감대를 바탕으로 관용의 정신으로 판을 깔아준 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빌리티가 단순한 이동수단의 혁신이 아닌 거대한 이동의 플랫폼이 뿌리부터 급변하는 장면임을 인식하고 과감한 결단은 물론, 장기적 관점에서의 전략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