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irvana-싱어, 캔버스에 유채 72.7×60.6㎝, 2018

“빅토르 위고는 ‘바다의 노동자’를 쓸 때 건지 섬(영국해협에 있는 영국령 섬)의 구식 부인복을 입은 인형을 앞에 두었다. 누군가가 그를 위해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데뤼슈트의 모델로 삼았다.”<도시의 산책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著, 조형준 옮김, 새물결 刊>

반항과 부조리 그리고 불우의 그림자가 끈끈하게 혼재된 10대 영혼을 대변한 노래 ‘Smells Like Teen Spirit’는 1991년 발매된 미국의 록 밴드 너바나(Nirvana) 앨범 ‘Nevermind’에 수록된 곡이다.

당시 세계음반시장을 들었다 놓은 이 곡은 비교적 단순한 코드흐름에 혼돈과 담담함의 혼재가 엿보이지만 알 듯 모를 듯 한 가사는 언어로써의 ‘Nirvana’, 그러니까 진리를 체득한 최고의 경지인 열반(涅槃)이라는 의미를 미묘하게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내 안의 파토스(pathos)를 만난다. 그것과 해후할 때, 존재의 심연을 보게 되는 그 순간 ‘나’를 강렬하게 일깨우는 사유의 열림처럼.

▲ 72.7×60.6㎝

◇배반과 반항 유쾌한 무위의 춤

‘자화상’시리즈로 알려진 김상표 작가의 근작은 싱어, 드러머, 치어걸 등 음악적 요소가 근간을 이룬다. 작품명제 또한 그러하다. “처음엔 붓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손으로 작업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붓 대신 열 손가락으로 본능처럼 물감을 할퀴거나 흩어놓기도 하고 강하게 던지듯 캔버스에 때리기도 한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 자아 밖 그 무엇과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되는 몸짓이 지나간 자리에는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형형색색의 흔적만이 격정의 배후처럼 속살을 드러낸다. 튀어 오르거나 내려누른 불규칙한 자국의 미끈한 물질덩어리들….

그리기 대상의 형태와 구조를 확정하는 스케치가 아니라 최초의 선과 색을 칠하면서 동시에 서로 접속하는 다른 선과 색을 찾아간다. 마치 뿌리줄기의 난맥(亂脈) 리좀(rhizome)처럼 화면은 언제든 흘러넘쳐날 것 같은 곧 무언가 다시 시작될 것 같은 팽팽한 긴장으로 어떤 흐름(flow)을 형성하고 있다.

▲ Nirvana-드러머, 캔버스에 유채 72.7×60.6㎝, 2018

김상표 작가(金相杓, KIM SANG PYO)는 “무의식 너머의 그 무엇, 난 감히 그것을 우주의 기억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순간적으로 불러들이는 그것의 교접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에 휩싸이고 곧이어 격렬한 그리기의 몸짓 속으로 빠져 든다”라고 메모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질적인 선과 색의 리듬들에 의해 형성된 패턴이 작가의 공감각과 공명하는 어느 순간 그리기를, 멈춘다.

그럼으로써 화면은 과정의 연속선에서 임시적인, 잠정적 드러남으로 관람자를 맞는다. “내 존재의 바닥, 어두운 심연 속에 있던 충동과 정념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으로 도래하는 비가시적인 삶과 소통하면서 그려내는 것이 나의 그림이다.

때문에 나의 그리기는 프로그램과 루틴(routine), 코드화된 우리의 삶에 대한 배반과 반항의 산물이기도 하다. 본디 그대로의 유쾌한 무위(無爲)의 춤, 진정 그것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