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광풍이 불고 있는 반면 ‘빈집’ 또한 늘고 있다. 수익성 부족, 인구고령화 등으로 야기된 문제다.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빈집에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정치권도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2017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빈집은 126만5000호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4만5000호가 늘어난 것으로, 도시·주거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단독주택은 31만호, 아파트는 67만호로 분류된다. 이중 경기도에만 19만5000호의 빈집이 방치돼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126만5000호의 빈집 가운데 38만호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주택이다. 다만, 이 수치에는 미분양 아파트도 포함돼 있다.

▲ 2017년 시도별 빈집 증감률(단위:%). 출처 = 통계청.

빈집은 낙후되고 인구 감소가 심한 도시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원인으로는 우리 사회의 인구가 갈수록 감소하고,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 기대 수명이 증가하면서 한 집에 오래 살다 사망하는 노년층이 많아진 것이다.

또한 경제 불황으로 매각용 주택보다 임대용 주택이 늘어 수요가 감소한 점, 수요자들이 편의성 높은 신축 건물을 더 선호해 분양·임대가 어려운 점 등이 빈집 현상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지역 중심지가 이동하면서 노후화된 동네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빈집은 공간 낭비와 처리의 곤란함 때문에 그 자체로 골칫거리지만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낙후된 지역이다 보니 관리가 허술해지고 부식된 건축 자재가 붕괴되거나 화마에 삼켜지는 경우도 있다. 지역 ‘슬럼화’로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관리에 행정 비용이 투입되는 문제도 있다.

재정 지원 시동 거는 지자체들

이렇게 빈집 현상이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 진정을 위해 신규 택지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도심 정비 사업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도심 재정비 사업의 규제 완화를 공언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소규모 재건축 사업의 활성화 방안에 방점을 찍었다. 자율로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정비사업과 용적률 혜택 확대 등을 담았다. 특히 도시재생 활성화지역으로 지정된 농어촌 지역을 추가해 지방의 빈집 현상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서울시도 ‘슬럼화’를 일으키는 빈집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월 세 번째 임기를 맞은 이래, 빈집 활용으로 도시재생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강북과 강남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빈집 관리부서를 신설하고 대규모 인력을 배치하는 등 정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빈집 비축 시범사업’으로 직접 빈집 매입에 나선다. 빈집이 밀집한 부산의 진구, 남구, 영도부 등과 가까운 시일 내에 빈집이 될 거라 예상되는 곳이 그 대상이다. 연금 형태로 토지를 매입하는 시범사업이 함께 적용돼, 일시불 또는 연금 방식으로 매매대금을 받도록 선택할 수 있다.

재정 지원에 그치지 않는 일본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어떨까?

일본 정부 추정으로는 일본 전역에 약 800만호의 빈집이 산재해 있다. 집주인이 고독사를 하거나 상속인이 관리비용 부담으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나 매매가 어려운 지역인데다가 철거에 돈이 더 들다보니 버려두는 것이다.

수만개의 빈집을 처리하기 위해 들어가는 재정 비용은 상당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각 지자체들은 민간부문이나 NGO와 협약을 맺는 등 비용 절약에 노력을 들이고 있다. 색다른 문화공간을 창출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단순한 재정지원으로는 미봉책에 그치기 때문이다.

도쿄도의 세타가야구는 소유자가 버려진 주택을 고치거나 개조한 뒤 임대하면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독거노인 주택을 아파트 단지처럼 개조한 소유자에겐 1인당 최대 100만엔(한화 약 101만원)을 제공한다.

그런가하면 가가와현의 쇠락한 섬 ‘나오시마’는 예술의 도시로 재탄생했다. 과거 나오시마가 속한 시코쿠 지역 섬들은 구리 제련으로 환경오염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1980년대 제련 산업이 쇠퇴하면서 함께 몰락했고, 섬 전체가 빈집으로 넘쳐났다.

지금은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련되게 꾸며져 뭇 예술가들의 순례지가 됐다. 현재 연간 관광객은 50만명을 웃돌고 있다. 여기에는 출판교육기업 베네사 그룹의 후원과 일본이 낳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헌신이 담겨 있다. 이들은 1989년부터 섬 재생 프로젝트를 열고 각종 미술, 건축 작품을 유치했다. 우리나라의 예술가 이우환의 미술관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