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현대차 미래 전략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정 부회장은 변화하는 산업 환경과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고 '3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7일 열린 인도 무브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자동차

제조업 →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사업

정 부회장은 7일 인도 뉴델리 비자얀바반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현대차를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과 정보통신(IT)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 현대자동차의 업종을 재정의한 것이다.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는 첨단 기술을 융합한 이동 수단을 말한다. 정 부회장이 이 분야에서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것은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첨단 이동수단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기술을 현대차가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존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탈바꿈 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에 정 부회장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 전환을 위한 3대 전략도 제시했다. 3대 전략은 ▲친환경 이동성(Clean Mobility) ▲이동의 자유로움(Freedom in Mobility) ▲연결된 이동성(Connected Mobility)이다. 앞으로 현대차가 갖춰야 할 3가지 전략 덕목인 셈이다.

정 부회장은 “이동수단의 혁신적인 변화는 우리의 생활뿐만 아니라 환경·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개선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 “현대자동차는 도시-농촌, 현실-상상, 사람-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겠다”고 말했다.

3세 경영 포석?

정 부회장이 직접 그룹 차원의 미래 대응 방안을 밝히면서 현대차그룹이 3세 경영 절차를 밟고 있다는 추측도 업계에서 나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6년 12월 국회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 이후 2년째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정 부회장은 미국·중국 등 지난해부터 판매량이 급감한 시장을 직접 찾아 사태를 수습했다. 미국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지난 5월부터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회복세에 들어섰다. 특히 지난달에는 미국 시장에서 11만1406대를 판매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5% 판매량이 늘었다. 시장 점유율도 7.3%에서 0.2%포인트 늘은 7.5%로 확대됐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와 동풍열달기아도 지난 2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사진=현대자동차

정 부회장은 주요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소비자가전쇼(CES)를 4년 만에 방문했다. 이후 3월 뉴욕모터쇼, 4월 베이징모터쇼를 참관했다. 자동차 산업 트렌드를 살펴보고 경쟁사 기술을 점검하고 현안을 파악했다. 또 현지 법인장 회의를 주관하거나, 현지 주요 생산시설을 시찰하는 등 현장도 의견도 챙겼다.

글로벌 인사들과 회동도 부쩍 늘었다. 정 부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척 로빈스 시스토 CEO, 암논 샤슈아 모빌아이 CEO 등 미래차 선도기업의 주요 인사들과 접촉했다.

벌써 4번째나 정 부회장과 만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현대차 넥쏘에 직접 시승하기도 했다. 기조연설에 앞서 모디 총리는 공식행사 개최 전 행사장 내 별도 공간에 마련된 현대차 디지털 전시장을 방문해 정 부회장을 접견했다. 모디 총리는 정 부회장의 안내로 신기술 관련 디지털 영상을 관람하며 미래 혁신기술 개발에 대한 상호 의견을 교환했다.

정 부회장이 이날 “3종의 전기차 모델과 수소전기차(넥쏘)를 인도 시장에 조기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모디 총리와 인연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전기차·수소전기차를 조기 출시하면 첨단 교통수단 확대를 추진하는 인도 정부의 정책을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앞서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휘발유차와 경유차를 퇴출하고 100% 전기차와 수소차만 판매하게 하겠다는 정부 목표를 밝혔다.

▲ 현대자동차 인도공장 규모. 자료=현대자동차

“인도와 동행할 것”

정의선 부회장은 이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자동차 시장 우호관계도 다졌다. 정 부회장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인도는 지난 몇 년 사이 '사자의 발걸음'을 과감하게 내디디며 과거 오랜 시간 꿈꿔왔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디지털 인디아 정책의 결실을 바탕으로 제조업 혁신뿐 아니라 ICT(정보통신기술) 산업과 융합이 이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1996년 설립된 현대차 인도법인은 현재 90여개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핵심 산업 거점으로 성장했다"며 "앞으로도 현대차는 인도가 꿈꾸는 위대한 미래를 위한 여정에 늘 동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인구 약 13억명 규모 시장으로 미국과 중국 등 'G2'의 대안으로 꼽히는 신흥국이다. 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독일을 제치고 세계 4위 시장으로 올라섰다. 시장조사 전문회사인 IHS마켓은 인도 자동차 시장은 매년 10% 가까이 커져 2020년이면 세계 3위 시장인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기아차는 인도 시장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대차는 1998년 1공장을 완공하면서 인도에 본격 진출했다. 2014년 41만1471대에서 지난해 52만7320대로 늘었다. 현대차는 인도 시장에서 현지 전략형 모델 i20와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크레타를 앞세워 7월까지 작년보다 7.5% 증가한 32만여 대의 차량을 판매해 마루티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55만대 넘게 팔릴 것이라는 전망도 업계에서 나온다.

기아차는 인도 시장에 본격 발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기아차는 지난해 10월 인도 남동부 안드라프라데시주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내년 하반기 완공이 목표다. 소형 스포츠형다목적차량(SUV)을 생산할 계획이다.

한편 올해 처음 열린 무브 서밋은 인도 정부 주관으로 세계 기업 경영자와 주요국 정책 담당자, 석학 등 1200여명이 참석해 미래 모빌리티와 혁신 비즈니스 등을 논의하고 공유하는 자리다. 인도의 마루티-스즈키, 타타, 마힌드라를 비롯해 현대차, 도요타, 포드, 혼다, 벤츠, 폭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 CEO(최고경영자)와 우버, 소프트뱅크 등 모빌리티 서비스업체 CEO들도 대거 참석했다. 정 부회장의 기조연설은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