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가뜩이나 거래도 안 되는데 집주인들이 싸게 내놓지 말라고 난리예요.”

서울 송파구 가락동 재건축 아파트인 ‘송파 헬리오시티’ 근처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모 씨가 6일 <이코노믹리뷰>에 한 말이다. 대규모 공급으로 주변 전세값을 잡으리라 기대를 모은 ‘송파 헬리오시티’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공급으로 집값 잡겠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라면서 “오른다는 분위기를 조장해 우르르 집 사게 만들더니, 지금은 언제 떨어질지 불안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1만세대 초대형 공급 몰린 송파 헬리오시티

‘송파 헬리오시티’는 옛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한 곳으로, 단일 단지로는 가장 많은 84개동 9510세대가 집결한 아파트 단지다. 현대산업개발,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참여했다.

서울의 경제 상업 중심지 강남이 가까운 데다 잠실과 하남, 성남 등지로 사통팔달하는 버스 노선과 지하철 8호선이 주변을 지나는 등 교통여건이 대단히 뛰어나다. 제2롯데월드와 가든파이브 등 대규모 쇼핑단지를 이웃해 알짜 입지를 자랑한다.

정부와 언론은 헬리오시티를 두고 대규모 공급으로 주변 전세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7월만 해도 전용면적 84㎡ 형의 전세가가 6억원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 전망은 현실화되는 듯했다. 주변 전세값도 10주 동안 하락했고, 내년 상반기까지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일반론의 시각에서 ‘대단지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불투명한 전세가 안정 효과

춘몽(春夢)은 오래 가지 않았다. 8월 중순,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의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렸다. 실수요자든 아니든 너도 나도 ‘지금 아니면 영영 놓친다’는 생각에 시장에 뛰어든 결과였다. 정부의 미숙한 정책 운용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포·용산 개발’ 발언도 한몫했다.

이미 가락동 일대는 카페 등의 매장이 폐업하고, 십여 개의 부동산 중개업소가 군락을 이루어 입점해 있었다. 그런데 치솟는 집값에 거래 문의는 뚝 끊겼고, 중개인들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송파구 아파트 매매가와 비례해 출렁이는 전세가. 출처=부동산114.

부동산 114가 송파구 아파트 변동률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가는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8.2대책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다가, 다시 올해 1월 3.89%로 급등했다. 이후 5월과 6월 각각 –0.12%, -0.49%의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헬리오시티 공급 등으로 매매가 안정 효과가 나타나나 싶었는데 8월부터는 1.44% 반등했다.

전세도 비례해 올랐다. 3월 0.20% 떨어진 뒤로 7월 0.12% 하락에 이르기까지 5개월 연속으로 하락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역시 8월 매매가 반등과 함께 전세가도 0.13% 올라 정부와 언론이 말한 ‘전세가 안정 효과’를 무색하게 했다.

정부 부동산 정책으로 매매가가 반등했고, 그 여파로 전세가격이 올랐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중론이다. 또한 수도권 입주물량과 함께 전세수요가 함께 늘어난 것도 작용했다.

S부동산 관계자는 “실속 있는 수요자는 매매가가 낮은 지난해에 이미 계약을 마쳤다”면서 “지난해 8.2 대책 이전엔 프리미엄으로 1억도 안 된 전세도 있었다”고 말했다.

6일 현재 매물로 나온 전용면적 84㎡ 매매가는 16억~17억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같은 전용면적 84㎡의 전세가는 7억원 초중반대다. 실제 거래는 이뤄지진 않는다.

거래 묶이자 더 날뛰는 호가

집주인은 비싼 값을 받고 싶고, 임차인은 더 싸게 집을 구하고 싶은 것은 상식이다. ‘송파 헬리오시티’의 가격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D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곳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전매가 금지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3년 이전에 보유한 사람만 거래가 가능하다 보니 물량 자체가 많지 않다”면서 “분양권이 한 번이라도 손바뀜이 있으면 거래가 제한돼, 전체 물량도 잠겨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C공인중개사 관계자는 “헬리오시티가 재건축 주택이라는 특이성과, 조합원 비율 60%라는 점이 이 지역 가격을 좌우한다”고 주장했다. 9510세대 가운데 8500세대 가까이가 재건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서울 아파트 가격 시세가 미치는 영향력보다 더 막강하다는 것이다. 세대수가 많다 보니 특정한 가격에 주택이 거래되면 모두 그 가격으로 올릴 정도라고 한다. 집주인 모두가 민감하게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이 관계자는 “보통 융자를 얻어서 집을 마련하는데, 이곳 주민들은 조합원 출신이라 융자가 적고, 부담해야 할 잔금도 많지 않다”면서 “집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그 정도의 잔금은 또 다시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당시 이주비와 공사비용 분담금 명목의 잔금이 적다는 뜻이다.

B공인중개사 관계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8월 중순 평균 5000만원에서 1억원이 올랐다”면서 “집주인들은 매매가가 17억원이니 적어도 50%인 8억5000만원 이상은 받아야 수지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갚아야 할 융자의 부담이 적은 데다, 집값에 맞는 수지를 찾아 호가를 높게 부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전세 문의도 주춤하다”면서 “거래되는 물량도 적은데 집주인들이 호가를 너무 높게 부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망가에 거래되지 않으면 월세를 놓거나 직접 입주하겠다는 집주인도 많다고 한다. 월세 보증금으로 1억~2억만 받으면 잔금 융자가 다 융통되기 때문이다.

▲ 송파 헬리오시티와 이웃해 군락을 이뤄 들어선 공인중개사 사무소.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주변 시세에도 영향?

다수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잠실, 위례 신도시 등을 예로 들며 공급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잠실 ‘파크리오’ 등 2호선 역세권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들의 매매가·전세가는 여름휴가 때 1억~1억5000만원 정도 떨어졌다가 지금 원상복귀했다. 7월 8억원까지 떨어진 잠실 ‘리센츠’의 전용면적 84㎡ 전세가는 얼마 전 9억원대로 회복했다. 현재 재건축조합을 세우고 활발히 논의 중인 잠실주공5단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송파 헬리오시티의 공급이 묶인 턱에 한때 1억원 이상 내림세를 보인 위례 신도시 등지의 전세가도 회복됐다.

조심스러운 중개사들도 있었다. E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더 내릴지 오를지는 알기 어렵다”면서 “본격 입주시기인 내년 1~3월까지 급매물은 안 나올 환경이지만 그때 돼봐야 정확히 안다”고 말했다.

실거래가가 오른 것이 아니고 호가만 오른 것이므로, 단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주변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정부와 언론이 과열시켰다”는 중개사들

중개업소들은 정부의 정책 혼선과 언론의 보도가 불안을 부추겼다고 입을 모았다.

J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언론이 만든 것”이라면서 “정부는 공급 확대에 치중하지 말고 근본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위공직자들 주택이 강남에 있으니 자기 집값 떨어질까 봐 정책을 이상하게 세운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대통령이 좋은 뜻이 있다 한들, 국토부와 국회가 건드리기만 하면 가격이 불안해진다”고 비판했다.

K공인중개사 관계자도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면서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당국은 위례 신도시가 한참 오를 때 불법전매, 떴다방 단속을 하나도 안 내놓았다”면서 실효성 있는 법이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실성 없는 법으로는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가 거론됐다. 종합부동산세의 상승분과 비례해서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에게만 피해가 간다는 견해가 잇따랐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주택 시장이 위출될까 두려운 예비 분양인들이 오히려 시장에 몰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전문가들, 그럼에도 ‘공급’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연구원 이사는 안정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송파 헬리오시티를 두고 “이 지역은 강남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권강수 이사는 “천호, 고덕 등지가 개발 중이기 때문에 복합해서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송파는 그동안 다른 강남권에 비해 덜 올라가는 추세였다”고 말했다.

권 이사는 “헬리오시티가 들어서면 송파 지역 매매가가 오르는 영향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지나치게 호가가 높은 것은 아파트 단지의 담합 문제도 있다”면서 “호가는 법으로 제재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집값 불안의 관점에서 보면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과장은 “물량이 풀리면 주변 전세가가 안정되는 것은 맞다”며 앞으로 진정세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윤 과장은 “조합원 비율이 60%로 높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다 입주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1만가구 중 5000가구만 입주해도 주변 수요가 낮아지는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