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4종류만 존재하는 치매 치료제 시장을 노리고 국내 제약사가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치매 조기진단 기술, 노화 회복 기술 등 고령화와 노인인구 증가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학계‧정부‧산업계가 힘쓰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전 세계에 4종류만 존재하는 치매 치료제 시장을 노리고 국내 제약사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치매 조기진단 기술, 노화 회복 기술 등 고령화와 노인인구 증가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관련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7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치매센터 치매정보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65세 이상 전체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치매 유병률은 10.2%이며 환자 수는 72만4857명이다. 치매 환자 중에서 아주 가벼운 증상을 앓는 비중은 16.8%, 가벼운 증상을 앓는 환자는 40.3%, 중증이거나 아주 심각한 치매를 앓는 사람은 각각 26.9%, 16.0%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치매 환자 중 남성이 28.6%, 여성이 71.4%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65~69세 6.9%, 70~74세 6.6%, 75~79세 20.4%, 80~84세 25.8%, 85세 이상 40.3%가 치매를 앓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수명이 길어 조사 대상에 더 많이 포함됐다는 점이 꼽힌다. 통계청 기대수명 조사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남성 기대수명은 79.30세, 여성 기대수명은 85.41세다.

▲ 치매 환자 분류별 현황. 출처=중앙치매센터
▲ 치매 유형별 분포도. 출처=보건복지부

치매의 유형별 분포는 2012년 분당서울대병원의 조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형 71.3%, 혈관성 16.9%, 루이체, 파킨슨병 3.4%, 전두엽 1.0%, 알코올성 0.9%, 기타 6.5%로 나타났다. 치매 유형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노화 또는 정신질환이 아닌,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의 심각한 기억력과 기타 인지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질환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72만명 수준인 치매 환자는 2024년 100만명, 2040년 2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국내에서 치매에 사용되는 비용은 14조7396억원이 들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그러나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국민 걱정 질환’에서 암 13.6%, 관절염 10.2%, 고혈압 10.0%, 치매 9.9% 순을 나타내는 등 아직 이 질병에 대한 우려는 다른 암 등에 비해 뒷전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치매 연구개발(R&D) 전략으로 종합 대처 준비

서경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생명기술과장은 5일 ‘한경 바이오헬스산업 콘퍼런스 2018’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7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 치매 R&D 전략’을 발표하고 “치매는 심각한 질환인데 대처 부문 등에서 시급성이 떨어진다고 조사됐다”면서 “10년 안으로 직접 피부에 닿는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 조사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치매 유병률과 치매 환자수 추이. 출처=보건복지부

서경춘 과기정통부 생명기술과장은 “이날까지는 치매 대응이 증상 완화 중심이었는데 뇌 손상이 진행되면 돌이키기 어렵다”면서 “발병 전 조기진단과 대응으로 지원 방향을 바꿀 것이다”고 밝혔다. 종합 치매 관리 정책 계획은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치매 R&D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방안을 마련 중이다. 서 생명기술과장은 “각 민간 연구자 등이 따로 연구하고 성과 공유가 부족했다”면서 “R&D 데이터베이스(DB) 등을 만들어 단계별 협업을 활성화하고 시너지를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치매 관련 산업의 범위를 신약개발뿐만 아니라 조기 진단 의료기기, 항노화가 아닌 역노화 등 관련 산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새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 과장은 “기술 개발 속도에 맞게 규제도 정비할 계획이다”면서 “연구 성과가 산업화에 빠르게 이를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10년 뒤 치매 발병 시기를 지금보다 5년 늦추는 게 목표다. 이는 치매 증가 속도가 지금보다 50% 줄어야 달성할 수 있다”면서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도전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2020년부터 예산을 확보하기로 하고 R&D 예비타당성조사 검토를 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공동 사업도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치매 관련 기술 선진국의 80% 수준, 뇌 영상 기술은 앞서

치매 치료제에 집중된 R&D뿐만 아니라 치매가 발병하기 전에 이를 진단하고 예방 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묵인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이날 열린 한경 바이오헬스산업 콘퍼런스에서 “DNA, 환경 등 여러 치매 유발인자 중 제어가 가능한 것은 전체의 35% 수준이다”면서 “조기 진단과 예방 치료로 치매 환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 뇌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활용한 알츠하이머 진단. 출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묵인희 서울대 교수가 소개한 뇌 양전자단층촬영(PET)을 활용하면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매 환자뿐 아니라 정상인의 뇌에도 치매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묵 교수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20년 전부터 뇌에 아밀로이드가 축적되는데 대부분 이를 방치한다”면서 “이를 확인하는 등 조기 진단을 하고 예방 치료를 한다면 치매 발병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묵 교수는 또 혈액, 소변, 침 등에서 간편하고 빠르게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과 의료기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가인 PET, 뇌척수액 검사를 대체할 생체지표(바이오마커) 기반 진단 키트를 다양화하고 이를 활용하면 정상인과 경도인지장애 환자를 진단하고 예방 치료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치매 진단 키트가 쉽게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면서 “이는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 비용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묵 교수에 따르면 치매 연구에도 예방, 원인규명, 치료제 개발, 진단, 돌봄 등 다양한 영역이 있고 각각의 기술 수준은 다르다. 그는 “전체 기술 수준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수준은 80%라고 생각하지만, 특정 영상분야 등은 우리가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묵 교수는 치매 진단 키트 개발에서 규제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식약처가 별도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치료제 등 환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게 심사하고 검토해야 하지만, 진단 키트는 환자 내부로 들어가는 방식 등이 아니고, 환자에게서 이미 채취한 것이기 때문에 허가 기준을 다르게 만들어 진단 부문에서는 선진국을 앞설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불가능은 없다…국내 제약사, 바이오벤처 등 치매치료 신약개발에 가세

치매를 치료하는 의약품은 아직 없다. 치매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치매 치료제는 증세를 완화하거나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출 뿐 근본 원인인 뇌세포 손상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다. 이 치료제도 전 세계에서 허가된 5개 중 4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어서 미충족 수요가 크다. 고령화 등의 사회 문제와 치매 치료제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 등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속속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는 전 세계 치매‧알츠하이머병 환자 수는 2013년 4400만명에서 2050년 1억3500만명으로 3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치매치료제 시장규모도 2015년 기준 3조5000억원에서 2024년 13조5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ADI는 또 2025년께 알츠하이머병의 발병을 5년 지연하는 신약이 허가되면, 2050년에는 치매 환자 수가 40% 감소하고, 의료비용도 3670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늦어지는 것은 임상시험에서 실패율이 높기 때문이다.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대부분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에서 유효한 효과를 거두지 못해 실패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임상 실패율은 99.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뇌건강센터의 제프리 커밍스 박사는 “2002~2012년 사이에 개발된 치매치료 신약 413개의 임상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를 받은 건 단 1건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치매 치료제 신약 개발이 어려움에도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기업들은 이를 위해 애쓰고 있다. 동아ST는 치매 근본 치료제 개발을 위해 2013년 민간이 주도하는 치매 전문 연구센터인 ‘동아치매센터’를 설립하고, 동아에스티, 삼성서울병원, 차의과대학, 한국파스퇴르연구소 등과 함께 치매환자에서 유래한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매질병모델을 개발해 치매의 진단과 평가에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 연구를 하고 있다.

동아 ST는 또 천연물 소재에 기반을 둔치매 치료제 ‘DA-9803’의 전임상을 마치고 미국 제약사인 뉴로보 파마슈티컬스에 500만달러와 지분 24%를 받는 조건으로 기술 수출했다.

▲ 동아치매센터 현판. 출처=동아치매센터

일동제약도 천연물에 기반을 둔 ‘ID1201’의 임상 2상을 하고 있다. 이는 멀구술나무의 열매인 천련자에서 추출한 천연물로 치매의 주요 발병 원인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작용을 보인다. ID1201은 동물 시험에서 치매의 다양한 원인들을 차단하면서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포스트는 2012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줄기세포재생의료 실용화 컨소시엄 사업 과제의 지원을 받아 제대혈에서 유래한 중간엽줄기세포를 주성분으로 한 ‘뉴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올해 2월 미FDA로부터 경도와 중등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2a상 시험계획을 승인 받고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1‧2a상을 하고 있다.

차바이오텍은 태반줄기세포에서 유래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CB-AC-02’의 임상 1‧2a상을 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1회 투여로 1개월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도네페질 데포’ 개발을 위해 2015년 말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을 승인받고 개발 중이다. 대화제약도 도네페질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증, 중등증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DHP1401’의 임상 2b상을 하고 있다.

메디프론은 응집억제제 기전의 치매 치료제 ‘DWP09031을 개발하고 있다. 김영호 메디프론디비티 대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는 고령화 사회가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면서 “알츠하이머는 한 번 진행되면 멈추기가 어려워, 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약 개발에 도전했다. 많은 제약사가 도전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