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P로 음악을 듣는 젊은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출처= 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1970~1980년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낸 기성세대들에게 ‘LP(Long-Playing Record)’ 음반의 의미는 남다르다. LP 음반을 바늘이 달린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음악이 나오는 순간의 “치지직…” 소리는 같은 공간에 있는 모두의 숨을 죽이게 만들었고, 그 특유의 생생한 음질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LP는 곧 낭만이었다. 안타깝게도 LP 음반은 음향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점점 입지를 잃어갔고 이후 등장한 음향 기록 수단인 CD와 MP3에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LP는 사라지지 않았다. MP3의 전자 신호가 절대 줄 수 없는,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찾는 이들은 다시 LP를 찾기 시작했다. 이에, LP 음반으로 음악을 들려주는 호프나 카페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LP, 글로벌 트렌드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LP 음반 판매량은 2008년 500만장에서 2015년 3200만장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성장률로 계산하면 7년 동안 600% 이상의 성장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전 세계 LP 판매량을 약 4400만장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포브스>는 “전 세계 LP 음반 시장의 경제 가치는 이미 1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이르렀으며 그 규모는 앞으로도 점점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음악 산업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LP바람이 불고 있다. 음악 관련 통계조사업체 닐슨 사운드스캔에 따르면 미국 내 LP판매량은 1993년 30만장에서 2007년 100만장 그리고 2013년에는 610만장으로 급증했다.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문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2017)에서 “디지털의 차가움에 신물이 난 소비자들은 LP 음반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모여들고 있고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는 연간 수백만장의 LP 음반들이 거래된다”면서 “너무나도 쉽게 소비되는 디지털 음악의 장점은 어느 순간 단점이 돼버렸다. 결국 아날로그 레코드(LP) 음반을 부활시킨 것은 LP를 고사시킨 디지털 음악”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LP 바람

몇 년 전만 해도 ‘보관이 힘들다’는 이유로 LP 음반들은 이사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짐처럼 여겨졌다. 요즘은 달라졌다. 유명 가수들의 LP 음반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 본래 가격의 수십 배에서 최대 수백 배 가격으로 판매되곤 한다.

‘비운의 가수’ 김광석의 4집 중고 LP 음반은 한 장에 7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옛 가수가 아닌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의 LP 음반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수 아이유의 중고 LP 음반은 온라인 서점에서 22만원대에 팔린다. 가수 윤종신이 지난해 LP로 발매한 음반 <월간 윤종신 THE VINYL-MONTHLY DRIPS>는 온라인 한정 선착순 400장, 1인 1매 구매인데도 단 몇 시간 만에 동이 났다. 특히 요즘 가수들의 LP는 한정판 음반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아 LP 마니아들은 이 음반들을 손에 넣기 위해 경쟁하기도 한다.

일련의 변화에 힘입어 2004년 음반사 서라벌 레코드가 생산을 중단한 이후 약 13년 만인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LP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콘텐츠 기업 마장뮤직앤픽처스(이하 마장뮤직)는 2017년 6월 국내 유일 LP 생산 공장의 문을 열었다.

마장뮤직이 추구하는 가치는 오직 하나다. 사람이 음반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서 LP에 담는 것이다. LP 공장 재가동에 대해 마장뮤직 하종욱 대표이사는 “아직은 LP가 다시 주류 음악 매체로 떠오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최근 LP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아티스트의 LP를 계속 요구하고 있어 LP의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면서 “일련의 변화들은 LP가 일시 현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다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LP바 TALE 5를 운영하는 김수현 사장.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젊은이들의 낭만 휴식처, LP 바

LP 수요 증가는 젊은 세대들의 유흥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 혹은 전국 주요 도시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LP를 들으면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LP 바(Bar)들이 있다. LP라는 음향 매체가 주로 유통된 시기를 떠올리면 이런 곳에는 40대, 50대들이 많이 찾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요즘은 LP만이 낼 수 있는 풍부한 소리를 찾아 젊은이들이 LP 바로 모여들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작은 LP바를 운영하고 있는 김수현(48) 사장은 “LP가 옛날 매체라고 해서 뭔가 고리타분한 느낌이 있어 젊은이들이 싫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서 “매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보면 20대 대학생부터 30대 직장인 그리고 50대, 60대 중년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라고 말했다. 옛 시절의 아날로그 낭만, LP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