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임형택 기자]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확산 시대에도 필름 카메라 업소들은 살아남았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고 ‘디지털 네이티브(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사용하는 세대)’로 통하는 20대·30대 젊은 층의 증가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서울 중구 충무로와 남대문로 일대에는 30~40곳의 수동 필름 카메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소들이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필름 카메라’ 해시태그(#)를 달고 나온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게 하나의 소수 문화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1~2년 전에 분 필름 카메라 열풍의 잔열은 여전히 뜨겁다.

충무로의 한 카메라 전문점 진열대에 필름카메라가 전시돼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필름 카메라 매장은 충무로와 남대문로 일대에 밀집해 있다. 서울 충무로 A카메라, 남대문로 C사를 비롯한 매장에선 니콘, 캐논, 미놀타, 펜텍스 등 전통 필름 카메라들을 판매하고 있으며 드물지만 인화점도 있다. 어떤 매장은 건물의 1~3층을 전부 사용할 만큼 영업이 성황을 이룬다. 이들 매장에서 파는 필름 카메라는 전부 중고다. 메이커들이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중고 거래는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온라인 사이트에서 더 활발하게 이뤄진다.

남대문과 충무로 부근에서 카메라 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들은 “필름 카메라를 찾는 젊은이들이 꾸준히 찾아온다”고 전했다. 구매자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원하는 기종을 미리 찾아온다고 한다. 30년 넘게 카메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승환 사장은 “필름 카메라를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한다”면서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은 캐논 ‘AE-1’, 니콘 ‘FM2’, 미놀타 ‘X300’, 펜텍스 ‘ME슈퍼’”라고 설명했다.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묻자, 그는 “필름 카메라는 단순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용법이 간단한 건 디지털 카메라지만 기계만 보면 필름 카메라의 구조가 훨씬 단순하다. 김 사장은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필름 카메라의 원색 표현력은 여전히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주 이용자가 젊은 층인 인스타그램에는 ‘#필름 카메라’로 올라온 게시글이 80만개가 넘는다. 최근 게시물을 보더라도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일 하루 기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필름 카메라 관련 판매 글이 150개 정도 올라왔다.

젊은 층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로는 ‘사진의 색감’, ‘아날로그 감성’, ‘새로운 경험’ 등이 꼽힌다. 한마디로 디지털 카메라와 달라서다. 카메라의 생김새, 사진을 찍는 방식, 사진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 사진의 결과물 모두 다르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날로그 감성이 일부 젊은 층을 매료한 것으로 풀이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대학생 전석현(남, 26) 씨는 “필름을 넣고 셔터를 당기고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맞춘 뒤,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다 쓴 필름을 감아 현상을 하기까지의 기다림 등의 과정이 재밌고 설레며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카메라보다 유지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찍을 때 고심하게 되는 덕분에 디지털과 다른 느낌의 사진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필름카메라(카메라_니콘 FM2 필름_후지200)로 찍은사진. 출처=전석현씨 제공
▲ 필름카메라(카메라_니콘 FM2 필름_후지200)로 찍은사진. 출처=전석현씨 제공

카메라 전문점 사장들은 젊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경험 자체를 신기해하고, 아날로그를 불편함이 아닌 재미로 여기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남대문에서 카메라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기범 사장은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와 다르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것”이라면서 “필름 카메라는 모양도, 작동 방식도, 사진의 결과물도 모두 달라 디지털 카메라가 줄 수 없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특히 수동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려면 조작법도 배워야 하고, 빛의 양을 조절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있는데 그 불편함을 재미로 여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개성표현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젊은 층은 필름 카메라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매장을 찾은 한 손님은 자기가 직접 3D 프린터로 카메라 형태를 만들어서 부품을 구하고 다니던 중 김승환 사장의 매장을 찾았다.

필름 카메라의 특이점은 가격 방어력에도 있다. 제품의 생산이 중단됐는데 중고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다 보니 인기 모델은 가격이 좀체 내려가지 않는다. 구입한 뒤 1년이 지나면 고급 기종 제품도 가격이 절반 가까이 뚝 떨어져 버리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콘탁스에서 생산한 ‘T3’라는 모델은 GD, 이성경, 이효리 등 유명 연예인이 사용하는 카메라로 소문 나 30만원에 출시한 제품이 현재 중고로 15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 콘탁스T3 모습. 출처=위키미디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보고 싶은데 카메라 구매와 주기로 필름을 교체하는 게 부담스러운 이용자들은 일회용카메라로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일회용 카메라는 작고 가벼운 데다 초점과 노출이 자동이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탓이다.

일회용 카메라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며, 카메라 전문점에서는 많이 취급하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는 가끔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정도라고 한다.

여행할 때 늘 일회용 카메라를 챙긴다는 남도연(여·25)씨는 “일회용 카메라는 필름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감이 좋다”면서 “카메라마다 ISO, 플래시 유무 등 촬영 환경이 제한적이라 카메라에 따라 같은 걸 찍어도 결과물에 차이가 많이 난다”고 설명했다. 특정 카메라에 어울리는 환경을 포착해서 찍는 것도 쏠쏠한 재미라는 평이다. 남 씨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여러장을 찍으며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데, 일회용 필름카메라는 22장~27장 정도로 횟수에 제한이 생겨 신중하게 찍게 되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 일회용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어린이 모습. 출처=이미지투데이

필름 카메라 붐이 일었지만 카메라 판매 업소가 필름 카메라 판매로 충분한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 매장 사장들은 전한다. 이는 대표 카메라 제조사들이 필름 카메라 생산을 재개하지 않고, 코닥 등 대표 필름사도 필름을 생산하긴 하지만 소수의 필름만을 생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필름 카메라는 분명 한계가 있다. 주기로 필름을 교체하며 불편함과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촬영 후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 필름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필름을 팔지 못하면 재고를 판매처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 물량을 받아 줄 수요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필름 판매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름 카메라를 찾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 수요가 얼마나 지속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