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재정 확충을 위한 방안으로 주류에 대한 건강부담금 반영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출처= 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건강보험 재정 확보를 위해 주류(酒類)에 ‘건강증진 부담금’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에 주류 업계와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소비자들은 지난 정권이 담배 세금을 올린 것을 떠올리며 “이번 정부가 또 서민들을 쥐어짜는 세금을 올리려고 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주류업체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류 건강증진 부담금 부과에 대한 논리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 7일 ‘건강보험 재정확충 다양화를 위한 사회 합의 도출 연구’라는 주제의 외부 공모를 시작했다. 연구 목적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으로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혼란은 다양하게 제시된 의견 중, 주류(술)에 건강증진 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거론되고 김용익 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이사장이 여기에 대한 의견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김 이사장은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술이 국민 건강에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술도 담배처럼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이 술에 대한 건강증진부담금 부과를 논의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음주로 발생한 피해와 그 사회 비용은 연간 약 6조1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술로 인해 많은 사회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세금을 걷어 이를 충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물론 이 논리에 대해 “음주로 발생하는 여러 사고들을 감안하면, 건강증진 부담금 부과는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국민 여론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여론의 반대 의견에 훨씬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금이 ‘112%’, 국내 주류세 체계 

술과 담배는 철저하게 정부가 관리하는 ‘규제 산업’이다. 두 품목에는 모두 특유의 중독성 그리고 잠재 유해성이 있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시장에서 유통되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가받은 업체나 업자가 아니면 함부로 제품을 만들 수도, 판매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율도 다른 소비재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가장 높은 소주·맥주로 예를 들면, 국내 생산되는 소주와 맥주 출고가격은 모든 세금이 원가와 합산된 가격이다. 재품 생산 원가가 있고, 거기에 주류세(원가의 72%)와 교육세(주세의 30%), 부가가치세(원가+주세+교육세가 더해진 최종 금액의 10%)가 더해진다.

주류업체가 1000원에 소주(혹은 맥주)를 생산했다고 가정하면 여기에 주류세 720원이 더해진다. 그리고 교육세가 216원이 더해진다. 그러면 1936원이 되는데 여기에 10%의 부가가치세가 적용돼 193.6원이 더해지면 2129.6원, 약 2130원이 된다. 세율을 계산하면 112.9%다. 여기에 담배처럼 술에도 건강증진부담금까지 적용시키면 소주나 맥주 가격은 최대 20%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주류 세금 인상의 3가지 ‘나비효과’

주류, 특히 소주나 맥주의 세금 인상은 단순히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 가격이 ‘약간 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첫 번째 효과는 국내 주류업체들의 수익 감소다. 세금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제품의 시중 판매가격도 오른다. 제품의 특성상 판매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일은 없겠지만, 수요 공급의 원칙대로라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점점 줄어든다. 이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수입맥주의 수요증가다. 세율이 점점 낮아지면서 국산맥주에 비해 유리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수입맥주의 수요가 점점 높아졌고 국산 맥주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맥주 수입량은 2013년 9만5211t에서 2016년 22만508t으로 3년 만에 약 132% 증가했다. 가정용 맥주의 주 판매처인 편의점의 점유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수입맥주의 점유율(55.5%)이 국산 맥주의 점유율(44.5%)를 넘어섰다. 만약 세금 인상으로 맥주 가격이 또 오르면, 수입맥주 점유율은 더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효과는 자영업자들의 위기다. 세금이 인상되면 주류를 판매하는 음식점, 프랜차이즈 점포 운영자들이 매입하는 술의 가격도 올라간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을 감안할 때 매입 가격 인상분을 쉽게 술의 판매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다. 가격을 안 올려서 팔면, 수익이 줄어들고 가격을 올려서 팔면 판매가 줄어든다. 이것에 따른 수익 감소는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가뜩이나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들에게 주류 세금 인상은 또 하나의 운영 부담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효과는 장기 관점에서 세수(稅收)의 감소다. 세금을 올리면 그만큼 정부의 세수가 올라갈 것 같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주류업계에서는 지난 몇 차례의 가격인상으로 형성된 현재 소주와 맥주의 가격을 국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가격이 더 오르면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소비를 줄이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수요가 많이 줄면 세금 수익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박근혜 정부의 향기가...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담배에 부과되는 세율을 올려 담뱃값 2000원 인상을 결정했다. 당시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국민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가격을 올려 수요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파악한 국내 담배 판매량은 2015년 33억갑에서 2016년 36억갑으로, 같은 기간 담배 세수도 10조5000억원에서 12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당시의 국민 불만 여론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직간접으로 반영됐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지난 정권과 ‘똑같은’ 이유로 조세 저항이 높은 술의 세금을 올리려 한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술이라는 품목의 특성상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갑작스럽게 세율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주류세가 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수입맥주 세율 조정 문제가 나왔을 때 소비자들의 부담 가중을 문제로 지적하며 이를 철회한 것이 기껏해야 한 달 전인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주류세 인상을 검토하는 정부의 의중을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류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추진을 보면, 주류세 인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결과들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계산해 봤을까’라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혁진(31, 가명)씨는 “이번 정권은 ‘복지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결국 국민들을 쥐어짜는 세금을 올리려고 하는 것 같다”면서 “이런 식이면 경제에 있어서는 지난 정권하고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