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책읽기는 물론 영화와 음악감상 등이 가능해진 시대다. 여기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등장했다. 최첨단 ICT기술 발전의 결과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가 개화하면서 등장한 디지털 시대의 총아다. 그렇기에 아날로그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아날로그 혹은 오프라인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 전통 등을 그리워해 본뜨려는 풍조인 ‘레트로스펙트(Retrospect, 회상)’ 현상은 결단코 아니다. 그것은 변신이요 진화의 한 단면이다. 오프라인, 혹은 아날로그 기기와 플랫폼은 사라지지 않고 변할 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디지털 기술을 적극 채용해 변신하거나 최첨단 시대에도 잊지 못하는 ‘추억’을 동력원으로 삼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만화방은 만화카페로, 오락실은 VR 게임방으로, LP 음악다방은 LP바로 변신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홍수에도 수동카메라와 필름은 감성을 중시하는 20~30대의 등장으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가 디지털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아날로그, 오프라인의 변신을 점검한다.

[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ICT의 발전은 국내 게임업계 판도를 바꿔놓았다. 과거 지하의 침침하고 퀴퀴한 오락실은 가상현실(VR) 게임방으로 변신하고 있다.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기는 최첨단 VR 기기가 대체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인 오락실은 가상세계에 접속해 미래도시에서 총싸움이나 질주를 경험할 수 있는 세계로 변신한 것이다.

▲ 손님들이 가상현실 속 게임전투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건물 1층 한구석을 차지한 오락실은 이제 건물을 통째로 쓸 만큼 거대해졌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율)가 좋아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데다, 국내 통신사들이 뛰어난 VR콘텐츠를 내놓고 있어 VR 게임방 시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추억만 남긴… 오락실?

아케이드 오락실은 PC방의 활황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모바일 게임시장이 커지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오락실은 2000년 2만5341곳이었지만 2016년 기준으로 전국에 800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세대가 바뀌고 대중들의 여가생활이 변하면서 남아 있는 오락실도 VR 게임방으로 하나둘 바뀌고 있다. 한국VR산업협회에서 집계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퍼지기 시작한 VR 게임방은 현재 전국에 200여 곳으로 추정된다.

<이코노믹리뷰>가 직접 조사한 VR 게임방은 젊음의 상징인 홍대입구역 근처에 35곳, 대학로를 포함한 성신여대 근처는 6곳,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 근처에는 47곳이다. 이외에도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 대형 테마파크도 지난해부터 VR 체험시설을 운영 중이다.

고작해야 1개 층인 오락실은 이제 건물 하나를 다 쓸 정도로 거대해졌다. GS리테일과 KT 등 거대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덕분에 환경도 과거 오락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쾌적함을 자랑한다. 에어컨은 물론 공기청정기까지 설치돼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 실내에서도 여가생활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소확행’과 회식문화의 변화

VR 게임방의 급성장에는 ‘소확행’의 소비트렌드나 직장인 회식문화의 변화도 한몫한다. 젊은 층은 똑같은 데이트 코스에서 약간의 변화만 줘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회식 후 으레 가는 노래방 대신 VR 게임방이 새로운 회식 코스에 들어갔다. 초중고생만 찾는 오락실은 이제 가족과 연인, 직장인 등이 찾는 여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친구끼리 놀러온 손님들이 VR게임 기구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일례로 KT와 GS리테일이 손잡고 지난 3월 오픈한 VR 게임방 ‘브라이트(VRight)’는 660㎡(약 200평) 규모의 20여종의 다양한 VR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용요금은 일반과 소인으로 구분되는데, BIG3는 각각 15000원, 12000원이고 BIG5는 17000원, 14000원이다. 3시간 동안 기구 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프리패스는 일반 22000원, 소인 19000원이다. 소인은 13세 이하에 해당한다. 이용 요금에 KT/LGU+멤버십 10% 할인혜택도 가능하다.

브라이트 신촌점 장태평(27) 매니저는 최근 <이코노믹리뷰>에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VR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고객들이 많이 찾는 가장 큰 이유 같다”고 설명했다.

연인과 함께 처음 온 전수민(30) 씨는 “평소 여가시간을 영화관이나 카페에서 보내는 편인데, 반복되는 지루한 데이트에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왔다”면서 “게임을 즐기는 시간과 재미에 비해 가성비도 좋고 그래픽 수준이 아주 뛰어나 일반 오락실의 낮은 화질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 한 어린이가 VR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기자

가족끼리 VR 체험을 하러 온 김수연(45) 씨는 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만족하는 듯했다. 김씨는 “아들이 집에서만 매일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직접 와서 놀고 체험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학창시절 다닌 옛날 오락실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와 그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한 게임들이 나왔다면서 놀라워했다. 그는 “아들과 또 방문할 생각”이라면서 “가격도 저렴하고 멀리 있는 놀이공원을 굳이 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아 VR 게임방을 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통신업체 가상현실 서비스 잇따라 내놔

VR 게임방은 많이 늘고는 있지만 초기투자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문화·취미 업종의 신규 창업 점포 수는 799곳으로 2년 전 같은 기간(172곳)의 4.6배 넘게 증가했다. 문화·취미 업종을 비롯해 올해 새로 문을 연 점포가 가장 많이 늘어난 업종은 주로 여가나 놀이 관련 업종이었다. DVD로 영화를 보거나 VR(가상현실) 게임을 할 수 있는 ‘비디오·게임방’과 운동이나 건강 증진 활동에 도움을 주는 ‘레포츠클럽’ 업종의 올 상반기 신규 창업 증가율은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각각 90.5%, 79.8%였다.

▲ 창업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업종 비교. 사진=이코노믹리뷰

문제는 오락실에 비해 창업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VR 장비도 고가인 데다 게임저작권은 게임회사와 일일이 협상해서 받아야 한다. 그래서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월 매출은 업력과 위치 등에 따라 다르지만 쏠쏠하다는 게 중론이다.

VR 게임업체 관계자는 “근무시간 단축으로 직장인들의 여가 시간이 늘면서 창업 트렌드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면서 “여가와 놀이 관련 업종의 신규 창업 증가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VR산업협회는 2016년에 1조4000억원에 그친 국내 VR 산업 규모가 2020년에는 5조700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 규모가 지금보다 4~5배 수준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KB증권은 국내 VR 시장은 콘텐츠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2017년 2000억원 수준에서 2020년 1조원을 넘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현장감을 중시하는 공연과 스포츠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업계와 VR·AR콘텐츠업계는 5G 상용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LTE망에서도 VR과 AR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현재는 반쪽짜리라는 것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5G망이 구축되면 현재보다 실감 나는 진정한 VR·AR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초고속 대용량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5G를 통해 무선 VR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지면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