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0년 영화 <인셉션>은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를 통해 타인의 꿈에 접속, 생각을 빼낼 수 있는 미래 사회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돔 코브가 인셉션이라는 기술을 통해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서는 가운데, 영화의 주요 설정 중 하나인 코브의 아내 이야기가 재미있다. 코브의 아내는 주인공 코브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방황은 현실에서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난다. 코브의 아내는 왜 현실로 돌아오기 싫었을까? 가상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경험이, 현실의 팍팍한 기억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은 현실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실제생활과 인간과의 교류에서 조금씩 ICT 기술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

▲ 지니뮤직이 살려낸 유재하의 홀로그램 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KT

홀로그램부터 섹스봇까지

KT의 지니뮤직은 지난달 22일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공연장에서 1987년 세상을 떠난 고 유재하를 소환했다. 이는 홀로그램 기술로 가능했다. 유재하의 모습을 데이터로 변환하고, 남아 있지 않은 데이터는 실제 가수가 투영해 현실로 끌어냈다. 플로팅 프로젝트 홀로그램 기술로 5G의 네트워크 기술력을 적극 활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 홀로그램 기술력은 완벽한 실감형 미디어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정설이다. 실감형 미디어의 틀에 들어가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혼합현실도 시장이 만개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사들의 5G 네트워크가 상용화되면 고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홀로그램을 지원하는 데이터의 흐름도 구현할 수 있다. 초고화질 TV 경쟁이 5G 네트워크를 타고 현실이 되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이미 많은 가수들은 홀로그램을 통해 공연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고 마이클 잭슨도 공연을 통해 홀로그램을 등장시켜 관객의 환호를 받았고,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홀로그램 공연 실험에 나서고 있다.

홀로그램이 5G 네트워크를 타고 실감형 미디어로 완벽하게 구현된다면, 실체가 있는 존재와의 감정적인 교류도 가능할 전망이다.

최종현 SK 회장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지난달 2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그가 직접 홀로그램으로 나타나 SK의 정신을 당부하는 한편, 후손들의 이름을 부르며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눈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최 회장의 얼굴과 모션 데이터 대부분은 원 데이터를 참고해 재창조한 것에 가깝지만, 홀로그램이 가지는 인간적 교류의 단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고 최종현 회장이 홀로그램으로 부활했다. 출처=SK

홀로그램이 방대한 데이터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실감형 미디어에 가까워지면, 인공지능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에도 나설 수 있다.

현재 일본에는 홀로그램 아이돌이 큰 인기다. 게이트박스의 ‘나의 신부 소환 장치’는 가상의 홀로그램 하츠네 미쿠를 등장시켜 실제의 남성과 연애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생생한 홀로그램 기술력에 인공지능을 덧대어 현실과 비슷한 관계 형성을 끌어내는 개념이다. 일본 도쿄에 사는 독신남인 콘도 아키히토는 조만간 하츠네 미쿠와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이다.

게이트박스의 기술력도 큰 틀에서 보면 아직 완벽한 기술력이 아니다. 홀로그램과 인공지능 모두 실제 상용화에 돌입하기에는 기술 난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로그램의 생생한 현실 재현력과 인공지능의 상호교류라는 콘텐츠가 채워지면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폭발적인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현직 버추얼 유튜버 키즈나 아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캐릭터다. “나 천재!(私天才!)”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일본의 유튜브를 뒤흔들고 있다. 그녀는 자기의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른다.

▲ 일본 버추얼 유튜버 키즈나 아이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키즈나 아이는 인공지능이 아닌, 실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모션캡처 방식으로 보여준다. 홀로그램, 인공지능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상의 캐릭터라는 점을 홀로그램, 사람과의 교류가 가능한 대상을 인공지능으로 삼으면 그 이상의 산업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가상에 불과하지만, 생생한 현실감과 고차원의 대화와 교류가 가능한 콘텐츠가 존재한다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감정교류를 위한 인공지능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소니의 반려견 로봇인 아이봇이다.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던 로봇이 귀여운 애완동물로 변신해 인간과의 감정적인 교류를 꾀하는 장면이다. 소니의 1세대 아이보를 구매한 사람들은 아이보가 고장 나 기능이 정지하자 너무 슬퍼한 나머지, 마치 사람처럼 사찰에서 장례식을 치르며 명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로봇을 통해 구현되면 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도 오는 4분기 서비스 분야 로봇을 발표할 예정이다.

ICT 기술의 등장으로 남녀의 사랑이 섹스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영국의 선더랜드 대학 헬렌 드리스콜 박사는 최근 “2070년이 되면 불안전한 인간과의 사랑보다 섹스봇을 더욱 찾게 될 것”이라면서 “섹스봇은 단순한 쾌락을 넘어 정신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술이 지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섹스봇에 가상현실이 지원되면 남녀의 육체적 사랑은 완전히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포쿠스>는 ‘섹스의 미래’라는 기사를 통해 “사람들은 점점 가상의 애인과 즐기는 성관계, 즉 사이버 섹스에 빠져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섹스봇 프로토 모델은 지금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어비스 크리에이션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섹스봇 엑스모드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가격은 1만7000달러 수준으로 고가지만, 인공지능이 탑재되고 목소리와 안면 움직임도 정밀하게 지원된다는 설명이다. 몸체는 인공피부를 덮고 연 20달러를 내면 인공지능 하모니의 업그레이드가 자동 지원된다. 하모니는 고객의 성행위 패턴을 분석해 자기의 행동을 업데이트한다는 설명이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원 포스터가 보인다. 출처=갈무리

가상의 공간, 현실의 공간

ICT 기술이 발전하며 기본적인 인간과의 감정교류를 비롯해 다양한 정신의 영역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가상현실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무표정한 얼굴로 ‘ㅋㅋㅋㅋ’를 적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면 편하다.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과 인간의 접점이 좁아지고, 가상의 공간에서 활발한 감정교류가 벌어지는 장면을 어떻게 봐야 할까. ICT 기술의 발전과 최소한의 정서가치를 유연하게 조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시대를 통해 닥쳐오는 새로운 바람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가 나온다.

마르코 브람빌라 감독의 1993년 영화 <데몰리션맨>에는 현실의 연인이 가상공간에서 사이버 섹스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에서 온 주인공 스파르탄이 이를 거부하자 여자는 화를 내며 외친다. “에이즈가 정복되니 새로운 성병이 계속 나와 인류를 위협했다. 이제 인간은 사이버 섹스만 할 수밖에 없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8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제의식은 약간 다르다. 영화에서 거대한 가상공간 오아시스를 창조한 제임스 도노반 할리데이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실은 차갑고 무서운 곳이면서, 동시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