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갑자기 가시고, 게다가 비까지 오니

가을이 턱하니 온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간 것은 반갑기 그지 없으나,

숙제할 틈도 없이 가을을 맞은 것 같은 낭패감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베짱이처럼 무심하게 세월 보낸 사람의 마음이 이럴까요?

최근 접한 두 소식이 있습니다.

한 시절이 넘어가는 소리에 제대로 반응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달초 올림픽 공원에서 ‘원나잇 인 파리’라는 공연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조수미씨 얘기입니다.

‘신이 주신 최고의 목소리’라는 평을 받으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화려한 기교에, 파워 넘치는 목소리로 열창하는 모습에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는데,56세라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내가 더 놀란 것은 둥글 둥글해진 삶의 자세였습니다.

옛날엔 죽기 살기로 음악만 했다고 하네요.

그녀의 오늘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여덟 시간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 문을 안 열어주었던 집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어머니가 알츠하이머 말기로 더 이상 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일을 겪으며, 또 나이가 들며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넘나드는 이번 공연에 대해서도

다른 음악도 존중하고,눈맞추는게 기쁨이고,배려라는 거죠.

또 과거 고난도 기교로 자신을 괴롭혔다면,

이제는 기교는 버리고,담백하고 간결하게 노래해도 만족하게 된다는 거죠.

그녀의 이런 변모속에 한 시절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칠십대인 한 고향 선배가 6개월전 시골로 이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시골로 이주를

나이 들어서라도 실현했다는 점에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간 무더위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중에는 이백여평의 밭을

돌보는 걸 최우선으로 하며 가급적 농부의 모드로 살았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심한 가뭄으로 인해 심었던 일곱가지 작물중,

아쉽게도 한 작물만 건지게 되었다며, 말라죽은 작물들에 대해

잘못 만난 주인탓이라며 너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속에 내년에는 좀 더 좋은 농부가 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 또한 한 시절이 가는 소리를 제대로 들었지 싶습니다.

 

산등성에 홀로 서서 한 시절이 가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