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는 글로벌 ICT 전자 업계에서 소프트웨어 파워보다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더 인정받고 있다. 구글과 애플 등 소프트웨어 파워를 가진 기업들이 전자 제조업체를 일종의 하청업체로 삼으며 이러한 기조는 더욱 굳어가고 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 ICT 소프트웨어 파워가 하드웨어, 즉 오프라인 거점을 통해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진화하며 프로그램 언어를 가진 기업보다 일상의 플랫폼을 확보한 오프라인 기업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파워까지 끌어올리는 순간 하드웨어 중심 플랫폼 기업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독일 베를린에 등장한 삼성전자의 자신감이 단적인 사례다.

▲ 김현석 사장이 IFA 2018 기조연설에 나서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자신감 “독자 전략 가능하다”

김현석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8월30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8 현장에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5G 기술이 만드는 초연결 시대에는 사람들의 일상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 될 것“이라면서” “이 분야에서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기술이 진정으로 가치를 발휘하려면 사용자는 원하는 것을 대화하듯 말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으로 사용상 복잡성이 없어야 한다”면서, "인공지능 빅스비(Bixby), 오픈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 중심으로 다양한 파트너사· 개발자 들과 에코시스템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미래 전략을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좁혀서 살펴보면,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빅스비와 사물인터넷 플랫폼 스마트싱스를 중심으로 에코 시스템을 구성하겠다는 말은 대부분의 경쟁사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중심의 플랫폼 생태계를 조성하며 파트너와의 관계정립에만 신경쓰는 것 이상의 전략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 사장은 “구글과 아마존 등 다양한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 잘 하는 분야가 있다고 본다”면서 “어떤 회사도 혼자서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다. 협력 모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가 단순히 파트너와 함께 “공동으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운영체제를 전담하고 하드웨어 업체가 단말기를 제작하는 ‘구글 안드로이드, 삼성전자 갤럭시 모델’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프라인 플랫폼에 대한 자신감이 깔렸다. 김 사장은 “우리 제품이 세계에서 연 5억대 팔리고 있다”면서 “그만한 힘을 가진 기업은 우리 외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플랫폼) 힘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구글 어시스턴트를 불러야하지만, 힘이 있으면 빅스비를 통해 구글의 서비스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김 사장의 말대로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에어컨, 노트북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분기 10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자랑하는 반도체 시장도 틀어쥐고 있다. 하드웨어 오프라인 플랫폼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 삼성전자의 QLED TV가 소개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최근 O2O 시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 후 조금씩 오프라인과의 융합을 지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마존은 무인 매장 아마존고 숫자를 늘리고 있으며 알리바바도 허마센셩과 같은 온라인+오프라인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글과 아마존 등 ICT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파워를 바탕으로 하드웨어 플랫폼 기업과 협력하는 장면을 두고 ‘소프트웨어의 역습’으로 표현하지만, 삼성전자처럼 막강한 오프라인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과의 접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 우위에 설 수 밖에 없는 구조며, 삼성전자는 점점 중요해지는 오프라인 플랫폼 시장의 최강자다.

LG전자가 인공지능 초연결 시대를 준비하며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장면과 비교된다. LG전자는 인공지능 브랜드 씽큐를 도입했으나 구글과 아마존 인공지능 경쟁력도 빠르게 체화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지만 일각에서는 플랫폼 종속성 우려가 나온다. LG전자도 백색가전의 왕자로 불릴 정도로 하드웨어 플랫폼이 강력하지만 초연결 생태계에서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ICT 소프트웨어 파트너들과 만나 플랫폼 우위 경쟁에 나선다면 다소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 IFA 2018에 참여한 삼성전자의 로고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전략 강화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에 이어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소프트웨어 파워를 크게 키우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영권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는올해 상반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을 예방해 인공지능 거점 수립을 위한 포석을 마련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이은 출장을 통해 인공지능 시장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삼성 한국 AI 총괄센터를 중심으로 미국에 이어 영국, 캐나다, 러시아에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신설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삼성 리서치의 무게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 리서치는 한국 AI 총괄센터, 실리콘밸리 AI 연구센터를 비롯해 영국과 캐나다, 러시아의 연구센터를 활용해 선행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DMC 연구소와 소프트웨어 센터를 통합해 만들어진 삼성 리서치는 세계 24개 연구거점과 2만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끌어가는 삼성 인공지능 로드맵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경쟁력을 세계 거점으로 풀어가면서, 한국을 중심에 두고 판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석학인 세바스찬 승 교수와 다니엘 리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소위 '승리 듀오'다. 이들은 모두 세계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두 교수는 1999년에 인간의 뇌 신경 작용에 영감을 얻어 인간의 지적 활동을 그대로 모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했고, 관련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세바스찬 승 교수는 뇌 신경공학 기반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석학중 한 명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이론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벨랩(Bell Labs) 연구원, MIT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삼성과의 인연도 있다. 2008년 인공지능 컴퓨터를 구현하는 토대를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호암재단에서 수여하는‘호암상’공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삼성 리서치에서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전략 수립과 선행 연구 자문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전략에도 집중하고 있다. 더 이상 글로벌 ICT 기업의 하드웨어 제조기지로 머물지 않겠다는 야심이다. 삼성전자가 초연결 시대를 맞아 사실상 독자 행보를 강조하며 구글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겨내야할 지점’이라고 보고 있다.

▲ 삼성전자 쿠킹쇼가 열리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IFA 2018...인공지능 기반 가전 혁신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플랫폼 인프라에 인공지능 중심의 소프트웨어 전략을 녹여낸다는 각오다.

삼성전자 유럽총괄 생활가전 마케팅 담당 다니엘 하비(Daniel Harvie)는 IFA 2018 현장에서 "유럽 밀레니얼 소비자의 70% 이상은 집에서 지인들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재택 근무를 하는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며, "삼성전자는 주방의 역할 확대, 가전의 개인 비서화를 기반으로 기술 기반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을 제품에 적용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식품 주문에서 레시피 추천까지 체계적 식품관리는 물론 AKG 스피커를 적용해 주방에서 고품질 사운드를 즐길 수 있고, 빅스비 · 화자인식 기술로 가족 구성원별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등 주방을 가족 생활의 허브로 만들어 주는 '패밀리허브' 냉장고가 이 트렌드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밝혔다.

세탁 시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인공지능 기반 '큐레이터(Q-rator)' 기능으로 세탁방법을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퀵드라이브(Quick Drive) 세탁기가 소비자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제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소개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오픈 생태계도 꾸린다는 각오다. IFA 2018에 등장한 구글과 아마존의 역습에 삼성전자가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