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 일자리가 드물어진 시대다. 서울 종로나 명동, 삼청동, 남대문 시장 등 어디를 가더라도 주인을 찾는 ‘임대’ 간판과 빈 상가를 볼 수 있다. 상가가 비어 있다는 것은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말도 된다. 도처에 있는 이 일자리가 하나둘 자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자리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통계는 이를 잘 말해준다. 통계청의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5000명 늘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이 1만명 밑으로 내려간 것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월 1만명 이후 8년 6개월 만이라고 한다. 올해 취업자 증가폭은 1월 33만4000명에서 2월 10만4000명으로 뚝 떨어지더니 5월까지 줄곧 10만명대를 유지했다. 5월에는 7만2000명 증가로 10만명대를 밑돌았고 6월에는 10만명대를 턱걸이했다.

취업자가 준 분야가 많아 걱정을 더 키웠다. 기능·기계조작·조립·단순노무 종사자는 21만9000명 줄었고 서비스·판매 종사자는 10만명 감소했다. 자동차·조선 업종 구조조정에 자영업자 경기 침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용쇼크가 아닌 고용참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요즘의 고용시장이다.

씨가 마르고 있는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없는가? 답은 “있다”이다. 정부도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만들긴 하지만 높은 임금을 주는 영속성 있는 일자리는 민간, 그것도 기업이 만든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고용쇼크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 처방이다.

이렇듯 분명한 처방전이 있는데도 일자리 창출이 되지 않는 이유는 여럿이리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최근 만난 기업인들은 ‘규제’를 첫 이유로 꼽았다. 투자해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해도 이런저런 규제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들은 차량 공유제 영업, 드론 상용화, 영리병원 등을 예로 들었다. 차량 공유 영업은 택시 회사와 운전사들의 반발로 꿈도 꾸지 못한다. 대기업 임원은 “말레이시아 출장 갔을 때 보니 공유차량 영업확대로 택시는 사라졌지만 택시 운전사들이 공유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드론상용화는 기술과 생산을 갖추고 있음에도 크기, 연료 적재량, 탑재능력, 카메라 설치 등 정부의 엄격한 규제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이 상용 드론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눈 뜨고 봐야 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과거에 없는 산업이 출현하고 기존 산업도 그 내용이 급변하니 일자리의 형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낡은 규제만 신주단지 모시듯 요지부동이다. 새로운 일자리는 기대난망이다.

정부의 기업 불신, 기업인 신뢰결여도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힌다. 중소기업의 신고가 있거나 의심만 간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조사에 나선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의 사익편취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SK그룹을 현장조사한 것은 기업이 겪는 어려움의 일단일 뿐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그룹 지주사 SK와 함께 반도체 재료를 만드는 회사인 LG실트론의 지분을 각각 29.4%, 71.6%씩 인수하고, 회사명을 SK실트론으로 바꿨다. 최 회장이 LG실트론의 일부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최 회장이 대신 차지한다는 ‘회사 기회 유용’ 논란이 불거졌다. 한 정치인은 최 회장이 회사 기회를 유용했다고 비판한 게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SK그룹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SK그룹 관계자는 “SK(주)는 당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한 만큼 재원을 다른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당시 실트론 지분은 공개 매각됐는데 중국 투자자의 지분 참여가 예상되면서 최 회장이 반도체 산업 보호 의지로 공개경쟁입찰에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상반기에 SK실트론의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메아리 없는 하소연이었다. 영업이익이 개선되니 회장이 이익을 챙겼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현장조사를 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러니 소위 재벌들은 여력이 있어도 투자를 결심하길 주저한다. 공정자동화 등으로 지금도 인력이 10% 정도 남아돌아 장기 근속자의 명예퇴직을 계속 해야 하는 게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냉정한 현실이다. 기업들은 가계와 경제사정을 감안해 억지로 인력을 보유하지만 불신과 비판만 받으니 힘이 나지 않는다. 정부 눈치만 보든지 아니면 해외로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고용참사의 원인 중 하나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다면 기업인의 해명, 건의를 제발 경청하길 바란다. 기업과 기업인의 말을 신뢰하길 바란다. 그리고 기업이 투자에 나서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하길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치열한 경쟁에 따른 불확실성을 떨치고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게 하는 방아쇠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