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IT 스타트업 업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모빌리티 규제입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기기 규제 완화,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강하게 추진하며 모빌리티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으나 사실상 반쪽 규제 완화가 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와 더불어 택시기사들이 추후 택배 사업도 하고 관광객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되면 반대급부로 모빌리티 분야의 규제 완화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문제는 모빌리티 규제가 풀려도 온전한 상태가 되기에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카풀 상용화만 봐도 그 어느 때보다 상용화, 합법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택시업체는 강공모드로 일관하며 대정부 투쟁까지 선언한 상태입니다. 이들의 행동을 대통령의 규제 완화 의지를 중심으로 카풀 상용화, 합법화 정국이 꿈틀거리자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투쟁 수위를 올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얻어 보자'라는 의도로 해석한다면, 너무 삐딱한 분석일까요. 이런 상태라면 카풀 합법화가 현실이 된다고 의미있는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카풀이 무조건 '선(善)'은 아니지만, ICT 기술의 발전으로 보면 어떻게든 타협을 봐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 전반이 혼돈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가운데, 일본의 도요타가 보여주는 행보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도요타는 27일(현지시각) 미국 온디맨드 차량 플랫폼 우버에 무려 5억달러(약 556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요타의 우버 투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다, 우버만 투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6월에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우버를 밀어낸 그랩에 10억달러를 투자했고 최근에는 미국 겟어라운드의 3억달러 펀딩에도 참여했습니다.

올해 초 공유 자동차 플랫폼 이팔렛트까지 공개한 도요타의 최근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침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완성차 업체도 이 분야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줄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볼까요? 개인적 경험이지만, 지난해 말 한 카풀 업계 핵심 인사와 인터뷰를 한 후 현대자동차의 투자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기사에 반영하려 했으나 핵심 인사는 기사가 나오기 전 '그 내용은 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카풀 업계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택시업계에서 알면 당장 현대자동차 앞으로 몰려가 시위라도 벌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 정주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모빌리티는 일상의 ICT 플랫폼입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스마트 시티를 구현하며 물류 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전반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중요한 논의를 붉은띠 조여맨 이들의 반발이 무서워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논의라도 해야 현안의 취사선택을 통해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거나 버릴 수 있을텐데, 마치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볼드모트처럼 모빌리티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시대가 됐습니다.

택시업계 4단체는 25일에 이어 28일 연속으로 성명을 발표하며 카풀 합법화 움직임을 규탄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집단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반 카풀 이용자들로 구성된 카풀운전자연맹 카풀러는 25일 택시업계가 국민을 모독하고 있다며 반발했고 28일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는 카풀러 지지를 선언하며 택시업계를 규탄했습니다.

서로의 목소리가 극단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대화의 키를 쥔 쪽은 택시업계입니다. 모두가 "대화하라, 투쟁하지 말고 누가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지 따져보자"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택시기사들이 카풀 업체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택시업계는 카풀 기업들이 말도되지 않는 강공모드만 불사해 부득이하게 투쟁을 선언했다는 주장이지만, 그 주장마저 공론의 장으로 끌어와 논의하면 되는 일입니다. 지난 3월 자유한국당 주최 카풀 토론회를 가득 메운 택시업계 인사들이 앞으로 나와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택시업계 내부에서 분노만 터트리지 말고, 공개 토론회라도 열어 대중의 선택을 받으십시요. 카풀을 비롯해 모빌리티 플랫폼 유료화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논해야 합니다. 디디추싱, 우버, 도요타.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