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미함과 경제적 고충을 호소하는 노년세대가 두터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법적 정년은 60세, 근로자의 평균 퇴직 나이는 49.1세인 데 반해 특정 질환이 없는 한, 일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생물학적 노년은 그보다 훨씬 늦게 온다. 복지제도가 북유럽처럼 탄탄한 것도 아니고, 노후 자금을 충분히 모아놓은 것도 아니며 4대, 5대가 공존하는 백세시대에 예전처럼 자녀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바야흐로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우려 속에서 지내는 공백의 시기가 길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소득절벽의 시기다.

저출산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맞이하게 되는 고령사회 대책은 연금 확대, 요양시설 확산 등 복지 개념만으로는 풀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복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에게 엄청난 짐을 떠넘기는 셈이다. 필요한 복지체계는 지속적으로 보완해 유지시키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초고령사회를 잘 헤쳐 나가는 해결책 중 하나로 고령자 일자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른 우리나라 현재 고령자 일자리 수요 현황을 보면, 베이미부머를 포함해 2017년 현재 55~79세 중 61.2%가 일하기를 원한다. 공급 측면에서 60세 이상의 고용률은 41.1%이다. 고용의 질적 양상은 농림어업이나 단순노무 분야에 주로 분포하고 하향 취업이 대부분이며, 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사업도 단기 공익 일자리를 중심으로 수당지급식의 지원에 머물고 있다. 일하고 싶어 하고 또 충분히 일할 능력이 있는데 노년세대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체계나 기반은 부족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령자 일자리 문제는 과연 어떻게 헤쳐가야 할 것인가. 고용대란 및 청년실업이 큰 사회문제로 떠들썩한 오늘날 새삼 고령자 일자리를 논하는 마음이 무겁다. 일자리를 놓고 세대 간 갈등의 가능성을 조율해야 할 숙제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노인이 될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관심을 기울이고 미리 준비해야 할 중요한 이슈다.

고령자 일자리는 단순히 취업의 당위에 입각한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조건의 재정립과 인식전환이 동반되지 않는 한,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이며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될 수 없다.

우선 노동조건의 재정립 측면에서 생산성에 대비한 노동유연성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령, 신체적, 심리적 조건 등 노년세대의 특성을 고려해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린 노동조건의 변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임금을 노년세대의 생산성에 적합하게 책정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 70세에 반값 임금을 받더라도 일할 기회를 찾는 경우가 많지 않겠는가. 기업이 해당 분야 숙련도가 높은 고령근로자를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고용한다면 경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단시간 일하도록 시간제를 활용해서 유연한 고용환경을 제공할 수도 있다.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건강, 여가시간 확보 등을 이유로 시간제 일자리를 희망하는 비중이 높다는 자료도 참고할 만하다. 서비스 직종 혹은 행정업무일 경우, 점심시간 혹은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쁜 시간에 투입되는 인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국가는 고령근로자 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경제를 주도하고 기업을 통제하거나 시혜성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고령근로자를 유지하거나 채용하는 기업에게 세제혜택 등의 인센티브 지원을 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의 주된 주체가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민간 활성화를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단 진정한 고령친화기업을 평가하고 싶다면 채용비율에 더해 지속비율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노동조건을 재정립하지 않은 기업은 오랜 기간 지속되는 고령자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 소득을 담보로 하는 일자리 외에, 사회공헌형 재능기부로 시작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기회를 만남으로써, 비경제적 사회참여활동이 발판이 되어 경제활동으로 진화된 모델도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일본의 교사 출신 은퇴 노인들은 노인복지센터 등 지역사회 내에서 저소득층 어린이들 위해 방과 후 이야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과제를 지도한다. 이는 난독증 학생들을 멘토링하거나 맞벌이 부부의 자녀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시니어 재능기부 동아리의 컨설팅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의 사업역량, 나아가 지역사회 행정을 살린 사례들이 발굴되고 있다. 모두 단계적으로 소득의 창출로 이어졌다.

아울러 이 모든 고령자 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노력은 사회적인 인식전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구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이슈는 고령화, 저출산 가속화 현상을 대비해 오랜 동안의 준비를 요하는 장기적 이슈다. 기존의 많은 통념들이 무너지고 새롭게 세워져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일도 더 오래 해야 하는 세대에 살게 되었다. 고령사회를 준비하며 인식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독일처럼, 노년세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머물지 않고 지식과 경험이라는 풍부한 가치를 지닌 세대라는 인식으로 전환하고, 노년세대 스스로도 인생의 후배들에 대한 서비스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조건의 재정립 및 인식전환과 더불어, 평생교육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고령근로자의 재취업을 위해 또는 노동의 질을 높이는 목적에서 재교육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고령자 일자리는 고령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력 활용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만, 반면 실무 현장에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핀란드는 고령자 재교육 및 재교육을 통한 취업알선을 위해 국가가 프로그램을 운용했으며, 정책을 실시한 지 5년 후 노인취업률이 EU 평균치 5.1%를 훨씬 웃도는 13%로 올라갔다고 보고됐다.

우리는 과거 역사상 우리 조상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초고령사회를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복지에 머물지 않고 사회, 경제, 인식 모든 영역이 변화하는 사회시스템 변혁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통념에 갇혀서 걱정하고 우려하는 대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도전의 마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차 노인이 될 우리 모두에게 고령자 일자리를 통한 노동은 기쁨이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활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령자 근로 희망의 사유로서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지만 기타 자아실현이나 사회공헌을 이유로 일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존재의 확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정년연장, 법적 연령 상향조정 등을 포함한 국가적 방향 제시와 지원에 힘입어, 고용유연성에 기반한 기업의 고령자 일자리를 창출할 여건을 마련해가고 재교육 및 국민의 인식 모두가 재정비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