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대영 화백

강원도, 강원문화재단 후원으로 진행되는 김대영 작가의 ‘존재의 가벼움을 넘어’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을 찾았다. 8월22일 오픈하여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백송화랑에서 성황리 전시 중이다.

 


색 점으로 그린 우리 역사

△글=최형순(미술평론가)

◇조형 요소로서의 점

김대영 만의 색 점들은 아무래도 우리 오방색으로부터 출발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운데 황금색인 황색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에서 보듯, 동쪽의 청색, 서쪽의 백색, 남쪽의 빨강, 북쪽의 검은색, 그렇게 삼원색과 흑백으로 이루어진 오방색이다.

그것은 오랜 우리의 전통이기도 하고 김대영이 주목한 색들이기도 했다. 그런 우리 정서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색으로 하나하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화면이 애당초 그의 색 점들의 이유였다.

 

◇우리 문화를 보는 눈

근래에 들어 김대영이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지금껏 보인 그림들로 볼 때 거의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려했을 때 만나는 우리의 이야기에서는 깊은 역사적 소재들이 우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시베리아로부터 요동반도에 이르는 광활한 평원을 두루 누비며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혼은 그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민족의 시원처럼 신비한 바이칼을 답사하고, 상고시대의 고조선, 멀리 시베리아와 맞닿은 북부여 출신의 고주몽이 개국한 고구려 유적과 해동성국으로 만주를 두루 누볐던 발해를 다시 보았다.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 있는 강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반도의 주요 줄기 시작인 백두산이 또 그 한가운데 있음은 다시 강조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장대한 백두산의 정기를 담아내는 작가의 시선이 어떠했을 지를 그의 그림 앞에서 짐작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어머니와 함께 민속으로 전해지던 치성을 드리던 장면은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늘 보며 자랐던 가슴 아련한 풍경이다. 성황당 어귀 당산나무에 걸렸던 오방색 띠가 저 멀리 바이칼에서도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도 시공을 넘은 듯 한 경험이었다.

 

순록 유목이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 않으며 연암 박지원이 그토록 놀라움으로 맞이한 광활한 벌판이 우리의 역사무대와 무관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의 일선에 섰던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의 『한국통사』는 역사를 보는 우리의 눈을 다시 열도록 가르쳤다.

국경분쟁이나 실효지배 국토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우리가 누볐고 우리 민족의 DNA에 고스란히 박혀있는 역사를 회복하는 그 일에 있어서 말이다. 그런 작가의 정신이 멀리 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백두산, 그 위로 더 넓은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온통 푸른 소나무, 그 앞을 흐르는 독립투쟁사의 해란강이 그의 작품 <백두산 일송정 해란강은>으로 당당히 펼쳐지고 있다.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담고자하는 그가 보는 우리 모두는 서로 얽혀 넝쿨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칡넝쿨처럼 모두가 서로의 관계를 뗄 수 없는 숙명을, 작가는 마른 넝쿨에서 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것은 화려하고 고고해서 멋진 장면만이 아닌 것이다. 낮고 마른자리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생명의 흔적들이 중요했음은 진정한 리얼리즘이 주목해야할 지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대영(KIM DAE YEOUNG) 작가

◇우리 미술의 길

점으로 하나하나 쌓아가는 그림의 견고하고 구축적인 형태에서 우리의 감각은 빠르게 미끄러질 수가 없다. 신인상주의처럼 기계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푹신한 양탄자처럼 시선이 머물 어느 곳이든 흡수해 줄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물질적인 빛에 대한 감각이 아니라 우주의 기운을 색으로 느끼고자 했던 우리 전통을 담아내려는 의지는 남다른 우리 미술의 길 하나에 닿아있다.

역사를 향한 시선 역시 모두의 정서와 감성에 호소하는 미술이 가지고 있어야할 소양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광대한 세계관으로 민족에 새겨진 역사는 함부로 지울 수도 지워 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예술이 가지고 전해야할 내용이 어찌 개인의 작은 감정에만 머물 수 있을까. 가진 것 말고도 무성한 상상력을 펼칠 일이 늘 예술에 요청되고 있다. 그에 답할 역사적 사실의 확인과 공부는 누구보다도 김대영 그림에 필요하고 어울리는 자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