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관할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초동 대로변에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텐트가 며칠째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 사이 기록적인 한 여름 더위와 태풍 ‘솔릭’예보도 있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무죄와 석방을 주장하며 노숙도 불사하는 그들의 열정까지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만큼은 끝내 그들의 ‘무력시위’를 외면했다. 지난 4월 6일 박 전 대통령 제1심 선고 이후 검찰항소로 진행된 이번 항소심 사건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형사 제4부가 24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5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다.

선고 결과만 놓고 본다면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결과는 1심 결과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징역형이 1년, 벌금형이 20억 원 더 가중되기는 하였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이미 1심에서 워낙 중형을 선고받은 탓에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법원이 이와 같은 내용의 선고에 이르게 된 ‘범죄사실’에 대한 판단이다.

그 동안 특검과 검찰은 삼성그룹의 뇌물 혐의와 관련하여 ①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 213억원(이하 승마지원), ② 장시호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2,800만원(이하 영재센터), 미르·K 스포츠 출연금 204억원(이하 미르K) 등 총 433억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 대가로 박 전 대통령 측에 지급되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에 대한 판단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이 부회장의 1, 2심마다 서로 달랐다.

우선 승마 지원과 관련해 이 부회장 1심과 박 전 대통령 1심은 72억 여원을 뇌물로 인정했지만, 이 부회장 2심은 마필 구입비 및 보험료를 제외한 36억 원만을 뇌물로 인정했다. 그에 반해 박 전 대통령의 이번 항소심에서는 말 보험료 2억 원을 제외한 70억 원이 뇌물로 인정되었다. 한편 미르K와 관련해서는 이 부회장의 1, 2심 및 박 전 대통령의 1심에 이어 이번 항소심에서도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다. 다만, 영재센터와 관련해서는 이번 항소심에서 지원금 16억 2,800만원에 대한 제3자 뇌물 혐의가 인정되었다. 이전까지는 이 부회장의 1심만이 제3자 뇌물 혐의를 인정해 왔지만, 박 전 대통령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요구는 지원 대상과 규모, 방식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어 만약 삼성 측이 지원금 산출 근거에 대한 충분한 검토조차 없이 지원금을 지급했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단독면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에 대한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어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청탁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5일 특검과의 ‘사투’ 끝에 자유로운 몸이 된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분명 이번 항소심 선고 결과가 달가울 리 없다. 물론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것은 당시 재판장이었던 정형식 판사의 편파성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분명 특검이 이 부회장의 공소사실에 대한 충분한 입증을 하지 못했고,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이 논리일관 되게 이를 방어한 덕분이라는 점(☞ [법과 사건] 특검의 이유 있는 완패...허둥지둥 전략수정, 자충수로 무너졌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항소심 선고 결과는 이 부회장 상고심의 ‘관련사건’에 불과해 박 전 대통령 항소심이 인정한 범죄사실 내용은 이 부회장 상고심 심리과정에서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항소심 결과 때문에 이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결과가 당연히 상고심에서 뒤집힐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다만, 뇌물죄는 2인 이상의 행위자가 서로를 향해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동일 목표를 실현하는 이른바 대향범(對向犯)이라는 점에서 피고인별로 범죄사실을 달리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특히 1심에서는 항소하지 않았던 박 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는 상고를 하여 대법원이 이 전 부회장의 상고심과 박 전 대통령의 상고심을 모두 심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의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한 뇌물 수수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사실관계가 통일적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대법원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과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중 어느 쪽의 사실관계를 원용하게 될지 이 부회장으로서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 항소심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했는데, 이는 최근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 ISD(투자자-국가 소송)절차를 밟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합병 전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던 엘리엇은 박 전대통령이 삼성 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한 합병을 지시해 엘리엇에 불공정한 손해를 입혔다며 지난 4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ISD 중재신청을 한 상태다.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을 근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이번 항소심 선고 결과는 이와 상반된 것이어서 앞으로 이 같은 정부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하여 70억원을 대가로 면세점 사업과 관련한 묵시적 청탁을 한 혐의로 1심에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입장에서도 이번 항소심 판결은 자신의 항소심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법과 사건]신동빈 1심 판결, 이재용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70억 원의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사실관계는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도 그대로 원용되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같은 사실관계가 사실이 아님을 밝혀내야 하는데, 대향범의 관계에 있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하여 항소심이 이미 뇌물수수 사실을 인정한 만큼 신 회장의 사건을 맡고 있는 항소심 역시 이러한 판결 내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항소심 판결로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관련 재판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번 판결이 재계에 미칠 파장은 예측불가다. 과연 이번 판결이 재계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