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김진후 기자] 미중 무역전쟁은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없다. 시진핑 1인 권력체제의 강화와 일대일로와 같은 중국의 대국굴기가 동시에 전개되며 위대한 중화제국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으나 아메리카 퍼스트를 기치로 내건 미국의 견제를 받고 특히 새로운 패권국의 전제조건인 ICT 분야에서도 미국의 진짜 힘을 확인하고 있다. 워낙 복잡한 실타래가 얽혀있지만 ICT 기술에만 집중해 미중 무역전쟁을 본다면 두 나라의 목표와 한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화웨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마이크론과 퀄컴, ZTE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두 나라는 서로를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고 특정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에도 착수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노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기업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모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에게 실리콘밸리와 날을 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 무역전쟁이 커다란 근심거리다.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유탄을 맞았다. 푸젠성에 있는 푸저우(福州)시 중급인민법원은 7월3일 마이크론 메모리 반도체 제품 26종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마이크론이 일부 중국과 대만 업체를 상대로 특허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자, 중국과 대만 업체가 마이크론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겨냥하며 맞소송을 건 일이 있었다. 중국 지방 법원은 결국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이 중국에 보복관세를 준비하며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대의명분으로 걸었다는 점과, 중국 지방 법원이 마이크론 판매 금지 판결을 내리며 지식재산권 침해를 거론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지식재산권을 역으로 미국 기업을 공격하는 것에 활용한 것이다. 마이크론 사태는 미국과 중국이 지난달 6일부터 각자 연 500억달러 수준의 25% 추가관세 카드를 빼들기 직전에 벌어졌다.

퀄컴도 타격을 받았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으로 무위에 그친 가운데, 중국 당국의 반대로 숙원인 NXP 인수가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퀄컴은 자동차 반도체 업계의 최강자인 NXP 인수를 통해 모바일 시장을 넘어 다양한 반도체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NXP 반도체는 보안용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부문에서도 강점을 보이는데, 이 역시 퀄컴이 흡수 가능하다. NXP 반도체는 NFC 시장에서도 74.6%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퀄컴은 NXP를 인수하기 위해 9개 나라 반독점 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중국을 제외한 8개 나라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끝내 불허했다. 퀄컴은 7월25일300억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선에서 NXP와 결별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ICT 기업도 제재를 당했다. 대표 사례가 ZTE다. 

ZTE는 지난 2017년 3월 이란과 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미국은 4월16일 ZTE를 대상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발표하며 압박했고 ZTE는 크게 휘청였다. ZTE는 5월9일 홍콩증권거래소에 '회사의 영업활동이 중단됐다'는 자료를 보낼 정도로 존립을 위협받았다. 미국의 ZTE 제재가 시작되자 중국 정부도 발끈했다. 중국 상무부가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방식은 자기의 발등을 찍는 행위"라면서 "부디 함부로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하는 한편 시진핑 국가 주석은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며 "자유무역을 수호해야 한다"며 호소하기도 했다.

ZTE 제재는 퀄컴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다이제스트 ICT는 4월20일 "미국 정부의 제재는 현지 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 "특히 퀄컴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퀄컴의 제품 중 최대 10%가 ZTE에 판매되기 때문이다. ZTE 사태는 다행히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던 5월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제재 조치가 일부 해제됐다. 그러나 ZTE가 중국의 '5G 대국굴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화웨이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았으나, 중국의 화웨이처럼 사연이 많은 기업도 드물다.

화웨이는 올해 초 북미 스마트폰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중저가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유럽과 아시아에서 거둔 성과를 북미 시장에서도 재연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미국은 화웨이의 자국 시장 진출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중 무역전쟁 정국에서 더욱 강력한 압박 일변도로 나가고 있다.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ICT 대국굴기 견제와 소위 '스파이 이론'이다.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장비시장의 최강자이자, 단말기까지 제조하는 기업이다. 2020년 5G 상용화 시대를 맞아 중국 ICT 대국굴기의 최선선에 섰다. 5G 시대에도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은 화웨이의 비상을 손 놓고 지켜볼 수 없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도 중요하다.

미국은 5G 시대를 맞아 자국 경쟁력을 강하게 틀어쥐고 있다. 일각에서는 5G 국유화 가능성까지 나온다. 미국의 IT 마체 악시노스는 올해 초 미국 국가안보회의 문건을 단독보도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5G를 국영화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5G 통신망을 하나로 모으고 그 비용을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방안이 골자다. 악시노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5G 국유화 논리는 중국의 위협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공개된 문서 일부를 보면 '중국이 우리의 대화를 엿듣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안전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문구가 있다. 중국의 사이버 위협에 대비해 5G 독립 네트워크를 구축해 해킹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다.

미국 하원은 2012년 10월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 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들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한편,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웨이 미국 시장 퇴출의 결정적인 요인이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국가 보안에 균열이 간다는 논리다.

화웨이의 역사를 보면 타당한 구석이 많다.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며, 런청페이 회장의 지분이 1%에 불과할 정도로 소유 구조가 독특하다. 대부분의 지분을 '화웨이 노동자'로 명시된 이들이 확보하고 있는데 그 뒷배경이 중국 정부라는 말이 있다. 이사회는 공개되지 않고 주주 정보도 베일에 쌓여있다. 런청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출신이어서 이른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화웨이의 '스파이' 혐의가 입증되려면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타국의 정보 수집을 위해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화웨이 특유의 비밀스러운 지분구조로 일부 설득력을 가진다. 후자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많다. 화웨이는 "우리가 정보를 탈취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화웨이 스파이 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국에 이어 호주가 화웨이 통신장비 도입을 금지한 것이 대표 사례다. 호주 정부는 8월23일 안보우려를 이유로 화웨이가 호주에 5G 장비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했다.

화웨이가 최근 호주에 철도망 통신 시스템을 구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화웨이는 지난달 11일 호주 서부 퍼스(Perth) 지역 철도망에 음성과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선 이동 통신 시스템을 구축, 유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무선 이동 통신 시스템 교체(Radio Systems Replacement) 프로젝트’를 통해 PTA의 180km 구간 전기 철도망과 새로운 포레스트필드 에어포트 링크(Forrestfield Airport Link) 트윈 터널에 종합적인 엔드투엔드 디지털 무선 이동 통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설명이었다. 호주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호주 정부의 조치는 화웨이 입장에서 일격을 맞은 셈이다.

중국 정부까지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23일 "호주 정부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면서 "인위적으로 장애물을 설정하거나 차별적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화웨이도 "실망스러운 결과"라면서 "합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 스파이 설은 국내 통신장비업계도 흔들고 있다. 최근 국내 통신 3사는 5G 주파수 경매를 마친 후 5G 통신장비업체 선정에 돌입했다. 다양한 장비업체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LG유플러스가 화웨이의 손을 잡겠다고 발표하자 강력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국가 기간 인프라인 5G 플랫폼에 '스파이 혐의'를 받는 화웨이 장비가 도입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장비 도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나오는 등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화웨이 장비 도입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화웨이의 위기는 미중 무역전쟁이 전개되며 더욱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올해 초 펀치를 주고받은 후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지난달 5일, 런청페이 화웨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 런청페이 회장의 오판이라기 보다, 간절한 염원으로 해석된다. 그는 "중국은 더 발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내려야 한다"면서 "직원들은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행동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위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에 이어, AT&T가 최근 삼성전자 통신장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는 AT&T와 5G 통신 기술을 활용한 고정형 무선접속(FWA) 서비스 통신장비 공급을 위한 막판 협상을 거듭하고 있다. 버라이즌에 이어 AT&T까지 품으면 삼성전자 5G 통신장비 경쟁력은 크게 올라갈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화웨이의 존재감이 흔들리는 가운데, 경쟁자가 외연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호주 정부의 화웨이 장비 도입 금지도 동일선상에 있다.

화웨이의 위기는 미중 무역전쟁에 임하는 중국의 고민을 깊게 만든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은 지금까지 '죽의 장막'을 통해 글로벌 기업의 침투를 막으며 자국 기업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중국 기업은 이제 자국 내수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영을 시작했고, 미국 주도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상황도 맞이하고 있다. 내수시장을 둘러친 죽의 장막이 자국 기업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가운데, '밖으로 나간 자식들(기업)'의 어려움이 배가되고 있다. 화웨이의 고민이다. 중국의 ICT 대국굴기를 견제하는 미국의 '진짜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화웨이의 위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