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김진후 기자] 미국은 지난 3월23일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30억달러의 폭탄관세를 매겼다. 중국도 이에 지지않고 즉각 반격했다. 중국은 미국산 돼지고기와 과일, 견과류 등 128개 종목에 대한 보복 관세를 매기며 그 규모를 정확히 30억달러로 맞췄다. 미중 무역전쟁의 책임이 미국에 있으며, 중국은 공격에 따른 방어에만 나선다는 뜻이다.

이후로는 난타전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4월3일 1333개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매겼고 4월5일 미무역대표부(USTR)는 1000억달러의 추가 관세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어 6월15일 500억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물렸다.

중국도 손놓고 있지 않았다. 6월16일 미국산 대두, 소고기, 자동차 등 총 340억달러의 미국산 수입품 545개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하며 그 시기는 7월6일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은 즉각 보복에 나서 6월18일 중국산 제품에 2000억달러 규모의 보복 관세를 준비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으름장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7월10일 새로운 관세부과 명단을 발표했고 중국도 8월6일과 8월8일 미국산 천연가스 등에 관세 부과를 시사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차관급 회의가 열렸으나 서로를 향한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은 20일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준비한다고 밝혔으며 23일 1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추가 부과했다.

무역전쟁의 핵심은 중국의 '스마트제조 2025'

지난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관세부과와 맞부과는 미국이 중국의 대국굴기를 경계하고 ICT 기술력을 경계하고 한 데 따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조는 중화권 기업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실패였다. 브로드컴은 올해 초까지 퀄컴을 인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로 끝내 실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를 비롯한 주요 외신은 3월12일 트럼프 대통령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금지하는 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도시바 매각 정국에서 기술유출에 따른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동을 걸고, 미국 하원이 올해 초 현지 스마트폰 시장 진출에 나서는 화웨이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막는 대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파격적인 결단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해 11월 퀄컴 인수합병을 제안하는 한편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옮기며 트럼프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던 브로드컴은 닭 쫒던 개 신세가 됐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실패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지식재산권 보호다.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도 지식재산권 논란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이 8월 초 중국에 16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폭탄을 던지며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대응조치”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무단으로 탈취한 것이 미중 무역전쟁의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탈취 문제는 중국 ICT 대국굴기 전반에 대한 견제심리로 이어졌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초 "미국의 조치가 중국의 산업 진흥책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정조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핵심 정책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용인할 수 없는 중국의 대응에 따라 확전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경계하는 '스마트 제조 2025'는 무엇인가? 중국 국무원은 2015년 양회를 통해 스마트 제조 2025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총 3단계로 이어진 중국 제조업 발전 계획이자 국가 혁신 계획이다. 1단계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양적인 제조강국에서 벗어나 질적인 스마트 제조 플랫폼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제조국가에서 스마트 팩토리 등 자동화, 인공지능 전략을 구사해 제조 인프라를 개선하는 방향이다.

2단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글로벌 스마트 제조 시장에서 최소한 중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며 3단계는 2036년부터 2045년까지 글로벌 무대를 석권하는 것이다. 중국은 스마트제조 2025를 위해 9개의 세부목표를 세웠다. 제조업 혁신력을 제고하고 IT기술과 제조업의 융합, 친환경 제조업 육성 등이 포함됐다. 10대 전략사업은 IT와 로봇, 에너지, 스마트팜 등 미래IT기술을 총망라하며 5대 중점 프로젝트를 통해 큰 그림을 그렸다.

중국은 이에 따라 공격적인 ICT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다. 중국의 기술력은 이미 한국을 크게 따라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9일 '한중 수출 구조 변화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2014년 1.4년에서 2016년 1년으로 줄었다고 발표했다. 2014년과 2016년 기준으로 보면 바이오 분야는 1.7년에서 1.5년, 나노소재는 1.1년에서 0.7년, 에너지와 극한기술은 0.9년에서 0.4년으로 간격이 좁혀졌다. 항공우주 기술은 중국이 한국을 압도하며, 2013년 4.3년에서 2016년 4.5년으로 더 벌어졌다. 중국은 위성을 쏘아올리는 수준이지만 한국은 관련 국산기술도 거의 없는데다 그 마저도 예산삭감에 따라 사업이 축소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시장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등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다.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인수에 실패했으나 칭화유니그룹은 지난해 7월 XMC를 인수합병하며 세운 창장메모리를 통해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 후베이성 지방펀드, 후베이성 과학투자 공동투자건설 등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국영 반도체 기업인 XMC는 후베이성 우한에 총 27조원을 투자해 20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13차 5개년(2016~2020년) 계획에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고 정부 차원의 막강한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 약 170조원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 차원의 국부펀드인 국가IC산업 투자기금은 초기 자금규모만 약 21조원이다.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내에 적어도 26개의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전망이다.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지난 7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도체 컨퍼런스를 통해 내년 32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국내 업체들의 기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YMTC가 내년 여세를 몰아 64단 양산까지 나서면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는 96단 3D 낸드플래시, SK하이닉스는 72단 3D 낸드 플래시 기술을 보유하며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균형이 무너질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다.

D램익스체인지는 올해 초 “도시바와 삼성전자, 인텔 등 주요 제조업체들이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크게 늘리며 내년부터 공급초과에 따른 가격하락 가능성이 높다”면서 “중국 칭화유니그룹 자회사인 YMTC가 올해 하반기부터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하고 인텔도 중국 다롄 공장의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시작할 경우 가격하락세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가 아직 큰 위협은 아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지나치게 포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자생력은 막대한 자금 투입이 무색할 정도로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D램 업계의 기대주인 허페이창신은 3월로 예정됐던 새로운 시제품 개발에 실패했고 그 마저도 25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17나노 공정이며 SK하이닉스는 18나노 공정이다. YMTC가 공언한 32단 3D 낸드플래시 기술도 업계 일각에서는 위협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디스플레이에 이어 반도체에도 특유의 박리다매로 인한 시장 교란이 벌어진다면, 미래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중국의 ICT 대국굴기는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화웨이가 5G 통신장비 시장에서 위력을 떨치는 가운데 국내에도 진출하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장악한 스마트폰 시장도 중국 제조사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LCD 중심의 박리다매 정책을 구사,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주도권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스마트 제조 2025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일대일로를 통한 확장정책을 구사할 경우 미국의 패권국 지위는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스마트 제조 2025는 패권에 대한 도전을 용납않겠다는 '미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미국이 단행한 1차 25% 관세부과 물품 중 무려 818개가 전자와 항공, ICT 기술 전반을 포함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중국의 환율조작도 거론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20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면서 “(미중 무역전쟁에서 결국) 내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의 파격적인 조치에 나설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무역전쟁의 기저에 화폐전쟁의 오래된 패러다임도 깔려있음을 시사한다.

현재까지 판세 '미국의 우위, 중국의 열세'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몽의 꿈을 먹고자란 중국의 대국굴기는 최근 위기를 맞았다. 당장 야심차게 추진하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주춤하는 틈을 노려 미국 패권주의를 둘러싼 의구심을 활용, 중국 패권주의를 일대일로로 풀어갔다.

문제는 중국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일대일로의 대표적인 수혜국이자 친중국으로 분류되는 파키스탄부터 심상치않다. 620억달러의 합작사업 중 일부가 차질을 빚으며 국제통화기금의 손을 벌릴 처지로 전락했다. 일대일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현 파키스탕 야당이 지난 7월 총선에 승리한 것도 중국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스리랑카는 일대일로에 참여한 후 빚더미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중국에 빚진 11억2000만달러의 부채를 갚지 못해 빚 탕감 조건으로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 자오상쥐그룹에 넘겨야 했다. 미얀마 정부도 일대일로에 참여했다가 최근 전면 재검토로 돌아섰다. 결국 몸이 달아오른 것은 중국이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일대일로 정책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여를 독려했고, 21일 시 주석과 만난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대일로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국 언론은 "중국 외교의 성과"라고 치켜세웠으나 중국이 상당부분을 양보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대일로 위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채산성 계산없이 무턱대고 뛰어든 각 국의 성급한 상황판단이 일차 원인이며, 부수적으로 주권 침해 논란과 환경문제 등이 불거지는 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가 빚을 갚지못해 항구 운영권을 중국 국영기업에 넘긴 게 대표 사례다. 중국 법원에 제기된 관련 소송 건수만도 지난해까지 무려 20만건에 이른다는 후문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돈을 뿌리고 다닐 필요가 있으냐'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중심의 중화제국건설에 경고등이 들어온 셈이다.

일대일로의 위기를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일대일로 참가국들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며,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을 일대일로를 통해 패권국가로 부상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불편한 심기에서 찾으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벌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은 관세폭탄과 해당국가의 기업 규제로 수렴된다.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중국이 수세에 몰렸으나 최근에는 중국도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시진핑 주석 체제를 둘러싼 회의감이 감지되는 가운데, 중국이 내부단속에 이은 강경대응을 천명하며 판을 키운다는 뜻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중국은 일대일로와 스마트 제조 2025를 통해 중국몽을 중심에 둔 위대한 중화제국건설의 꿈을 건설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생각보다 일찍 도광양회를 버리고 대국굴기를 내세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리샤오 길림대 경제금융대학원장은 6월말 졸업식 연설을 통해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했다”면서 “우리가 완전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도 8월23일 중국 충칭(重慶)시에서 열린 국제 스마트 산업 박람회 기조연설을 통해 "중국은 미국과 비교해 많은 분야에서 뒤쳐져 있다"면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를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SCMP는 8월28일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를 두고 패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미국은 자신감이 넘친다. 미중 무역전쟁의 주도권을 쥐고 강공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는 8월 23일 미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자신있게 관세부과에 나서는 등 힘있는 행보를 보이는 이유로 미국 경제의 활황기를 꼽았다. 덕분에 매파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미중관계 전문가인 스콧 케네디는 "미국 경제가 활황기인데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인기도 좋은 편"이라면서 "벼랑을 넘어 운전을 해도 자동차가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과의 협상을 원하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보다 로버트 라이트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같은 매파가 최전선에 자주 포착되는 이유다.

미국도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ICT 플랫폼 업계가 어려워짐에 따라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매력적인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에 구애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아이폰 매출이 떨어지고 있는 애플은 중국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 내수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화웨이와 샤오미 등 중국 기업의 성장세를 직접적으로 막아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안술 굽타 연구원은 “화웨이의 향후 성장 가능성은 신흥 아태 시장과 미국 시장 내 시장점유율에 달려 있다”면서 “인도는 중국을 제외한 샤오미의 가장 큰 시장으로 앞으로도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아태 시장의 매출 상승은 샤오미가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IBM은 중국 완다 그룹과 협력해 클라우드 비즈니스 고도화에 나서고 있으며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스모그로 가득한 베이징에서 아침조깅을 하는 스킨십까지 보여주며 구애를 보내고 있다. 최근 불발되기도 했으나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구글은 중국에 인공지능 연구소를 설립해 적극적인 협력을 타진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포털 시장 재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테슬라는 최근 중국에 연간 5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미국도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공세에 나설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