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김진후 기자] 일본의 유명 여류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율리우스 시저와 폼페이우스의 전투를 "두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지중해 전역을 무대로 미친듯이 충돌했다"고 묘사했다. 그는 "당시 로마가 엄청난 내전에도 이민족들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민족들이 로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두 마리 거대한 코끼리의 발에 순식간에 밟혀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나미의 말은 21세기 미중 무역전쟁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써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세계는 두 마리 거대한 코끼리의 혈투에 숨 죽이고 있다.

폭풍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후, 글로벌 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전면에 세웠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전임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중부 러스트 벨트 블루컬러 백인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당연한 행보라는 평가였다.

초기는 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압박했다. 자국 일자리 창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가 애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이폰 생산 시설의 미국 이전을 집요하게 주장하며 애플을 흔들었다.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는 기업에는 세금 폭탄을 운운하며 압박했다. 포드가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을 철회한 이유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 기업의 미국인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면서 외국 기업의 미국 일자리 창출 노력에도 신경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그를 만나 미국에서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떠나자 이례적으로 1층 로비까지 배웅하며 "난 마윈 회장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타깃은 미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기업이었다. 미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손해를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손해볼 수 없다'는 정서는 미국의 대중 무역자와 함께 미중 무역전쟁의 결정적인 트리거(방아쇠) 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기저에 흐르는 미국의 주장, 즉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부당하게 탈취한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필요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다'는 논리는 미중 무역전쟁의 근간이자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 미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기업을 압박하며 활용한 핵심 논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압박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가전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해 2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는 멘션을 남겼기 때문이다.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에 있는 오스틴 공장 설비 확장을 발표하는 등 현지 투자에 전향적인 행보를 보인  삼성전자지만, 아직 구체적인 공장 설립 투자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협박'이었다. LG전자도 미국 내 공장 건설 계획을 부랴부랴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두 회사는 미국에 대단위 가전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 이민정책 변화, 제조업 부활 등을 거론하며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해나갔다. 미국에 가전공장을 운영중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를 대상으로 세이프 가드를 발동하는 한편, 전통의 우방인 유럽과도 경제 측면에서는 날을 잔뜩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보호 무역주의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인 시기, 태평양 건너 중국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 두 나라는 외교문제에서 마찰을 빚고 있었다.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에서 추구한 '하나의 중국'을 미국이 조금씩 부정하는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시작된 두 나라의 불편한 기류는 빠르게 경제분야로 옮겨왔다. 지난해 초 중국의 알리바바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부터 짝퉁 판매 악덕 시장으로 지정되고, 중국 정부가 미국 GM 합작법인인 SAIC GM에 2억100만위안의 과징금을 매기는 등 서로를 향한 펀치가 난무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해 1월28일 미국 경제 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기고를 통해 “중국은 지속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지지하고 자유무역을 추진, 세계 경제의 안정과 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회로 불만을 나타냈다.

두 나라의 기류가 심상치않게 돌아갔지만 당시만 해도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G2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은 여전히 미국에게 매력적인 데다, 북한 문제 등 외교적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의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이 북한의 핵 야망을 꺾는데 일조하고, 동북아 지방 평화를 유지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도 미국과 날을 세워봤자 장기적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공감대가 강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도 있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고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은 2016년 11월 트럼프 장녀 이방카의 남편인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을 만났다.

▲ 미국의 대중무역 적자 규모. 출처=미국 상무부.

미국에 진출한 100여개 중국 기업들은 지난해 2월2일 뉴욕 한복판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대형 광고판을 전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祝特朗普和美國人民新春快樂)’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에는 중국 부동산기업 뤼디그룹, 거란스 등이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굴기

2015년 3월 미국 의회 외교위원회에 특별 보고서가 발표됐다. 헨리 키신저 수석 연구원인 로버트 블랙윌과 애쉴리 텔리스가 작성한 '미국의 중국 전략 수정'이라는 보고서에는 중국의 팽창에 대비해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전략이 담겼다. 중국을 가상의 적국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미국 외교정책과는 결을 달리한다.

중국의 행보를 보면 기우는 아니었다. 지난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헌법을 개정하며 시진핑 사상을 명기하는 한편, 사실상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 추인했다. 중국이 약 40년간 유지한 집단지도체제를 끝내고 시진핑 국가주석 1인 절대권력 체제로 접어드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1992년부터 중국 권력 이동의 불문율이던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후보를 미리 점하는 것)의 원칙이 깨졌다.

중국은 마오쩌뚱 이후로 1인 체제를 버리고 공산당 중심의 1당 지배체제를 끌어가면서도 사실상 집단지도체제를 택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결정적인 실수를 통해 집권한 마어쩌뚱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권력이 집중된 당주석제를 폐지하고 총서기제를 도입하는 한편 다양한 파벌을 등용하는 등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상하이방의 장쩌민, 공청단의 후진타오가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던 중 제3지대 태자당 인사인 시진핑이 2012년 국가주석이 되며 21세기 시황제의 재림이 벌어졌다. 시 주석은 최대 정적인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를 쿠데타 혐의로 낙마시킨 후 자기의 권력에 도전할만한 인사들도 모두 숙청했다.

최근에는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3명을 연이어 보좌해 살아 있는 제갈량. 은둔의 책사로 불려온 왕후닝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도 권좌에서 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시 주석의 권력은 중국몽(中國夢) 구현에 뿌리를 둔다. 시 주석은 2012년 11월 총서기에 오르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근대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한 꿈'이라며 중국몽의 시대를 선언한다.

중국몽은 크게 두 개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 창단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샤오캉 시대(인민의 민생이 해결되고 기초 복지가 작동하는 시대)를 여는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열린 중앙위원회 1차 전체 회의(19기 1중전회)에서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포함된 정치국원 25명을 선출하며 재차 중국몽을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몽은 인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한편,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추구한다. 대국굴기의 핵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그림이다.

일대일로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 경제 패러다임이라면, 남사군도 분쟁을 기점으로 벌어지는 군사 갈등은 중국의 군사굴기의 한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국제 분쟁지역인 남사군도에 2013년 인공섬 축조에 나섰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과 일본까지 연루된 치열한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남사군도 인공섬에 최첨단 무기를 배치하고 있으며 지금도 관련국 사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중국 본토와 대만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건설 방안이 발표되는 등 일부 해밍모드가 감지되고 있으나, 중국과 대만의 양안갈등은 지금도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중화제국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강경한 자세를 반영한다.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는 국가의 숫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배경에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외교, 경제적 변화가 시작된 가운데 중국의 대국굴기까지 겹치며 미중 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평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장기집권 플랜이 가동되며 기존 대외정책인 도광양회를 사실상 폐기하고  그 자리를 대국굴기가 채우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을 자극했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월20일 미중 무역전쟁을 분석하며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다"면서 "중국의 부상을 막으려는 미국의 신 봉쇄정책"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