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인정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 최근 경영일선에 모습을 드러낸 이 부회장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으나 법원이 개별 현안 등에 대한 명시적 청탁은 없었다고 판결한 만큼 '삼성은 상황을 지켜볼 필요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4부는 24일 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두 사람의) 단독면담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공단 찬성 등의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성립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에게 1심보다 형량이 는 징역 25년,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다.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 영재센터에 출연한 16억2800만원을 제3자 뇌물죄로 인정했다. 특검은 당초 영재센터는 물론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 출연금 모두 뇌물이라고 봤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영재센터만 제3자 뇌물로 봤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있는 18개 혐의 중 가장 무거운 것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뇌물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영재센터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제공된 승마지원을 뇌물로 판단해 총 89억원을 삼성의 뇌물로 봤으나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승마지원만 유죄로 보고 72억9400만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 2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제센터 뇌물을 인정하지 않았고 삼성이 정유라의 말 소유권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뇌물금액을 36억3400만원으로 낮췄다.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 이 부회장이 지난 2월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다.

재판부가 이날 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서 삼성의 영재센터를 제3자 뇌물죄로 본 것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 부회장 2심 재판부의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박 전 대통령이 2심에서 형량이 늘어난 것과,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본 대목은 향후 이 부회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재판부가 묵시적 청탁은 인정해도 개별 현안 등에 대한 명시적 청탁은 없었다고 봤기 때문에 이 부회장 남은 재판에 미칠 영향을 두고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한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노코멘트"라고 말을 아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유럽과 북미, 중국과 일본 등 글로벌 출장을 통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중심의 신성장 동력을 타진했다. 창립 기념일과 신경영 선언 25주년을 조용히 보내면서 삼성의 미래경영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는 뜻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노조와해 의혹 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조용한 경영에만 집중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의 정중동 행보는 지난 7월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서 끝났다. 인도를 국빈 방문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가운데 이 부회장도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만나 일자리 창출을 부탁했고, 이 부회장도 "노력하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귀국한 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연이어 만났다. 김 부총리는 이 부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시계도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 시민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중재에 전격 합의하는 한편 지난 8일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삼성은 180조원을 향후 3년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키로 했다. 또 삼성의 혁신역량과 노하우를 개방·공유하고, 효과가 검증된 프로그램 중심으로 상생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경영전면에 나서는 한편 공격적인 투자로 국내 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가운데, 24일 법원의 판단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