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네이버는 구글의 공세를 막아낸 토종 ICT 기업이자, 국내를 대표하는 플랫폼 사업자지만 오랫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 몇 년사이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의장직을 내려놓은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GIO)이 직접 외부 시장 전략을 전개하며, 조금씩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라인의 성공을 중심으로 촉발된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 이해진 GIO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네이버는 최근 국내에서 많은 논란에 직면했다. 최근 특검수사가 종료되며 일단락되고 있으나 드루킹 사태로 몸살을 앓았고,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논란과 플랫폼 공공성 전반의 위기가 고조됐다. 그러나 네이버는 이해진 GIO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한성숙 대표와 변대규 의장이 큰 그림을 그리는 체제를 유지하며 기술기반 플랫폼을 중심에 두고 글로벌 전략까지 힘있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네이버가 22일 프랑스 자회사인 네이버 프랑스 SAS에 2589억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유럽 내 연구개발과 현지 시장 장악력 강화를 위해 출발한 네이버 프랑스 SAS를 통해 글로벌 시장 전략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 GIO 주도로 프랑스를 중심에 둔 현지 경쟁력 강화 가능성을 위한 특단의 계획이 발표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은 일본 라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이 1단계, 프랑스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유럽 시장 공략을 2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 네이버와 라인이 K-1 펀드와 협력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1단계의 결실이 라인 상장이라면, 2단계의 시작은 유럽 시장 공략이다. 네이버와 라인이 2016년 9월 코렐리아 캐피탈의 유럽 투자 펀드 K-펀드 1에 각각 5000만유로씩, 총 1억유로를 출자한 대목이 중요하다. K-1 펀드는 유럽의 스타트업을 육성해 아시아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아시아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한 네이버 및 라인과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네이버와 라인은 이를 바탕으로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K-1펀드에 1억유로를 추가 출자했다.

실리콘밸리와 대립각을 세우는 프랑스 유럽 ICT 경쟁력과, 최근까지 구글을 겨냥해 글로벌 기업 역차별을 주장하던 네이버가 만난 지점이 의미심장하다. 특히 네이버와 프랑스의 만남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이 미국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유럽도 세계의 패권을 가졌던 집단이다. 프랑스는 유럽 문화 권력의 중심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존재감을 가진 대국이다. 유럽시장 진출의 첫 단계로 스타트업을 키워드로 삼아 그들의 콘텐츠를 활용하고, 네이버는 플랫폼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들이 원하는 아시아 시장의 발판도 되어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흐르는 콘텐츠는 네이버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네이버의 유럽 공략 중 빼놓을 수 없는 분기점이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 현 네이버랩스를 지난해 6월 인수한 장면이다. 1993년 설립된 XRCE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비롯해 컴퓨터 비전과 자연어 처리 등 다양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그르노블 지역의 외곽에 위치했으며 세계적인 인공지능 인재 80명이 포진해 있는 첨단기술연구센터다.

네이버랩스 유럽의 경쟁력은 정평이 났다.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지난 7월 열린 인공지능 학술대회 ‘PAISS 2018(PRAIRIE Artificial Intelligence Summer School)’의 부활을 끌어낸 것도 네이버랩스 유럽이 있기에 가능했다. PAISS는 프랑스에서 2010년부터 컴퓨터 비전(시각) 연구 분야의 기술 공유로 시작한 인공지능 기술연구 학술대회로 2013년 중단됐으나 프랑스 국립정보통신기술연구소(INRIA) 부설 그르노블 알프스연구소(Grenoble Alpes)와 네이버랩스유럽이 공동 주관하여 부활시켰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 전략으로만 보면 홍콩도 중요한 거점이다. 네이버는 4월13일 홍콩과학기술대학교와 함께 홍콩 현지에 인공지능 연구소를 개소했다고 밝혔다. 공식 명칭은 네이버 라인-홍콩과학기술대학 AI 연구소(NAVER/LINE-HKUST AI Laboratory)며 인공지능 기술 연구의 발전을 목표로 다양한 최첨단 연구를 진행, 산학공동연구의 시너지를 발휘해 나갈 계획이다.

▲ 네이버는 유럽에 이어 홍콩에 인공지능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홍콩과학기술대학교는 설립된 지 약 20여 년 만에 아시아의 주요 연구대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확보하고 있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해외 거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네이버는 연구소를 통해 우수한 기술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이 국경없이 교류하며 더욱 우수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스페이스 그린의 존재감도 중요하다. 네이버와 라인은 2017년 5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테이션 F에 스타트업 육성 공간 스페이스 그린을 오픈한다고 밝혔다. 스테이션 F는 3만4천㎡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의 캠퍼스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글로벌 ICT 기업들이 스타트업 대상의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며 이곳에 네이버와 라인은 80석 규모로 스페이스 그린을 마련했다.

많은 현지 스타트업이 네이버의 흔적이 묻은 스페이스 그린을 통해 협력하고 있다.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은 반 실리콘밸리의 연장선에서 유럽과의 연합은 물론, 현지 스타트업과의 보폭 맞추기도 포함됐다는 평가다.

▲ 네이버 그린을 통해 유럽 스타트업과의 연결고리가 강해지고 있다. 출처=네이버

네이버는 올해 2분기 매출 1조3636억원, 영업이익 2506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2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20.7% 수직상승했고 1분기 대비 4.2%나 늘어났다. 문제는 영업이익이다. 3분기 연속 하락세다. 신사업 투자의 여파, 글로벌 시장 경쟁, 국내 인터넷 사업 안정세가 겹치며 성장의 여백이 줄었다는 평가다. 기술기반 플랫폼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신사업 투자에 집중하면서 영업이익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블록체인과 가상통화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 신사업 진출이 이어지며 전선이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지적이다.

네이버는 하반기 닥공(닥치고 공격) 흐름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향후 3년간 콘텐츠 인프라 확보를 위해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기술기반 플랫폼 역량을 키우면서 다양한 시장의 영향력을 모두 가지겠다는 야망이다. 한성숙 대표는 “글로벌 수준의 인재 영입을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며 기존 서비스의 경쟁력은 유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 부담까지 감내하며 '공격앞으로'를 외치겠다는 뜻이다.

핵심은 이 GIO가 이끄는 글로벌 전략이다. 네이버는 현재 일본의 라인, 싱가포르의 라인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독일 등 주요 나라에 70개 수준의 해외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가 동반되는 글로벌 전략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GIO가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한편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선회했으나 그는 네이버의 기둥이며, 그가 관심을 두는 곳이 곧 네이버의 미래가 된다.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이 강력하게 전개될 가능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남은 것은 글로벌 공략뿐이다. 이 GIO가 국내에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질라 페이스북, 구글’과 글로벌 무대에서 싸우는 일만 남았다.

관건은 네이버 조직의 비대함과 그에 따른 관료집단화를 얼마나 슬기롭게 넘기느냐다. 네이버는 투명한 경영환경을 가지고 있으나 최근 인사담당 임원이 불미스러운 일로 처벌을 받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국내 포털 시장의 격변이 예상되고 있음에도 셀럽 중심의 브이만 고수하며 별다른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등을 통해 블로그를 살리겠다는 전략을 보여줬으나,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글로벌 무대로 뻗어가는 네이버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부의 역량을 추스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