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이 좋았다. 깔끔하고 깨끗하며 어느 색에나 다 잘 어울리는 흰색은 어느 스타일이건, 어느 옷이건 꼭 한 벌은 있어야 했다. 이 법칙은 티셔츠나 셔츠, 블라우스를 벗어나 한복에도 해당하는 얘기였다.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전통한복 저고리 50벌 중, 흰색 저고리만 20여벌이다. 어떤 치마색이라도 잘 살려주고 무난하게 입을 수 있으며 단정하다. 처음으로 감색 저고리를 맞추며 흰색 치마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복집에서는 흰색 한복이 상복이나 다름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에야 웨딩 한복이나 패션한복이 많아져서 크게 개의치 않지만 당시 흰색 한복 치마는 상복이나 다름없다며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필자는 옅은 상아색 치마를 맞추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필자에게 흰색 한복 치마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의 일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흰색이 아무리 기본 색상이라 해도 이렇게 몇 년 동안, 흰색 한복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이 백의호상(白衣好尙)하는 풍습은 조선 시대를 포함해 훨씬 이전인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1934년 <동아일보>에서 유창선(劉昌宣)이 백의고(白衣考)를 통해 자세히 기록한 바 있으며, 이에 부여, 신라, 고구려, 백제시대 언급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천을 표백해 일부러 하얗게 만들기 전 단계인 ‘소색(素色)’ 또한 백색, 흰색으로 명명했다. 이는 자연이 만든 그대로의 상태,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상태로, 미색이나 밝은 담갈색 혹은 청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청렴함과 절개를 의미하는 백색, 현대적 개념의 백색인 설백색(눈이 내려 눈부시게 하얀 광경), 빛바랜 색인 지백색 등 15가지에 달하는 백색이 한국 전통색에 존재한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흰색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돌아가신 분을 보내는 상중에는 흰옷을 입어온 전통은 ‘흰색을 특별히 사랑하는’ 우리 문화의 단면이라 하겠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오행설에 따라 백의 금령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임금(당시 정조)도 백색 옷을 많이 입으니, 오래 가지 못했다. 한때 관리들에게는 흰옷을 입지 말라는 지침이 있어, 평소에는 청색 옷이나 흑색 옷을 입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금을 비롯해 모든 백성들이 보편적으로 즐겨 입는 의복색인 흰색은, 평민들이 흔히 입는 일상복이며 양반들의 편복, 심의, 종교인들에게는 승복과 무복으로 폭넓게 나타난다. 1902년 고종의 초상화를 그린 프랑스 화가 드 라네지에르는 한국인들의 흰색 옷이 물결과도 같으며 음색의 향연이라 했으며, 1904년 프랑스 여행가 두크로크는 그의 책에서 한국인이 즐겨 입는 흰옷이 매우 쾌활하고 발랄하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고 표현했다. 백색 의복뿐 아니라 담색 옷도 즐겨 입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환하고 밝은 거리의 사람들이 특별해 보였음이 분명하다.

 

백색은 비단 의복에만 한정되지는 않았다. 항상 하얗게 유지해야 하는 동정이나 띠, 버선도 포함한다. 요즘 표현으로 한다면 ‘깔맞춤’으로 의복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고려함과 동시에 발랄하고 유쾌한 색감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한복 유전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필자가 이토록 한복을 좋아하는 이유는 필시 과거에서부터 시작한 필자의 조상이, 필자의 할머니가 물려준 유전적인 선호도의 영향이 분명하다 생각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흰 복색을 사랑하고 즐겨 입는 필자는 고대로부터 이어 내려온 진짜 한국인이 분명함을 다시 한 번 확신한다.

 

[참고]
금기숙(1990). 조선복식미의 탐구. 복식, 14. Pp. 167-183.
박찬승(2014). 일제하의 ‘백의’ 비판과 ‘색의’ 강제. 동아시아문화연구 제 59집. Pp43-72.
서봉하(2014), 한국에서 백의호상현상이 고착된 배경에 관한 논의-유창선의 백의고를 중심으로. 복식, 64(1), pp. 151-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