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들어서만도 미국과 중국은 서로 한 차례씩 WTO에 상대국을 제소했다.   출처= VOA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실망은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했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인 것이다.

올 들어서만도 미국과 중국은 서로 한 차례씩 WTO에 상대국을 제소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월, 중국의 특허권 침해와 불공정 기술이전 계약 등 이른바 ‘지식재산권 도둑질’ 관행을 문제 삼으며 WTO에 중국을 공식 제소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은 특허 사용 계약이 종료된 중국 기업의 미국 특허 기술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미국 특허 보유권자들(주로 기업들)의 기본 권리를 부정해 WTO 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지난 4월, “중국 등 12개국에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가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무역 조치이며 국제무역 다변화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미국을 WTO에 제소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제소 다음 날 USTR에 “중국에 1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는 미국의 이익에 광범위하게 기여한 세계 무역 규칙까지 파괴하는 상처뿐인 승리가 될 위험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보다 더 효과적인 해결 방법으로 중국을 WTO에서 추방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것을 핵 옵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실제로 WTO에는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WTO에는 회원을 내쫓는 공식적인 메커니즘이 없다. 그러나 WTO의 기초가 된 헌장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23조에는 추방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23조는 협정을 특별히 위배하지 않았어도 다른 모든 국가가 WTO에서 파생되기를 기대하는 이익을 ‘무효화하거나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회원국을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조지타운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의 법학 교수 제니퍼 힐먼은 지난 6월 미국 의회의 미-중 경제안보 심사위원회에 출석해 "중국 경제는 다른 주요 경제국과는 달리, WTO 협상가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WTO 규칙은 중국 정부, 집권 공산당, 그리고 기업들이 서로 광범위하게 중첩되어 있는 상황을 제대로 다룰 수 없으며, 오히려 GATT 23조가 이런 형태의 상황을 더 정확하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중국은 WTO 가입 이전보다 더 개방적이고 시장 지향적으로 변했다. 2018년 4월까지 중국이 WTO에 제소된 안건은 27개로, 이미 23건이 종결되었다. 중국은 WTO의 판결을 존중하고 진지하게 이행하였으며, 제소자가 보복을 신청한 예는 하나도 없다. 중국은 종종 판결에 패했을 때에도 WTO 결정문을 일반적으로 잘 준수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표적으로 하는 많은 비판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중국이 공식적인 법에 따라 외국 기업으로 하여금 중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WTO의 최고분쟁해결위원회의 위원이었던 힐먼 교수는 중국의 그런 주장은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지키겠다고 내걸었던 약속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위반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4년 WTO 창설로 이어진 마라케쉬 선언(Marrakesh Declaration)에서, 회원국들은 개방적이고 시장 지향적인 정책에 기반한 무역 체제에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장의 힘은 국가 권력이 팽창함에 따라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 WTO는 국제 무역분쟁에 대한 중재권과 세계무역자유화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회원국을 강제 탈퇴시키는 규정은 없다.    출처= WTO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도록 일상적으로 강요받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WTO에 한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힐먼 교수는 중국의 그런 강요 조치들이 문서로 되어 있지 않아 WTO가 다루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 정부의 차별적인 인허가 처리(중국 기업에 대한 편파적 조치)와 외국 회사의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미온적 대응도 WTO의 지적 재산권 협정에 따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중국도, 다른 모든 WTO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모든 보조금을 공식 발표해 다른 국가들이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보조금들이 저비용 대출, 원자재 지원, 다른 국영 기업들로부터의 지원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힐먼 교수는 중국이 그런 위반으로 제소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증거가 없어 이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그에 대한 증거를 제출하기를 꺼려한다. 그런 증거를 제출했던 다른 외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얽혀 보복을 당하거나 성장 자체를 차단당하는 경우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피터슨 국제 경제 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차드 보운 연구원은 다른 많은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중국을 상대로 제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로 하는 제소에는 그런 두려움은 없다.

힐먼 교수는 이것이 다른 국가들이 GATT 23조에 의거해 중국을 ‘크고 대담한’ 안건으로 제소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중국의 체계적인 위반을 다루게 되면, 그런 심판에서는 작고 구체적인 위반 사례를 입증하는데 크게 의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연합,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 한국 등이 공동으로 이 문제를 제소해서 승리한다면, 중국은 정책을 변경하거나 거의 모든 수출에 대해 WTO가 정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힐먼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제소에서 승리하면 그 결과로WTO 헌장을 개정해 위반된 정책 사항들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WTO의 수정안을 준수할 수 없다면, 중국은 효과적으로 WTO에서 철수할 것이다.

통상적으로 WTO는 합의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중국은 수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힐먼 교수는 중국의 거부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WTO는 회원국 과반수의 지지로 수정안을 채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과정은 위험하고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실 23조에 따라 WTO에 제소된 사건은 극히 드물다(그나마 그것도 중국과 관련된 건이 아니다). 실제로 WTO에서 탈퇴한 국가는 아직 없다. 추방된 국가는 더 더욱이 없다.

제소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며, 더욱이 미국이 이런 제소를 하려면 관세로 소외된 동맹국들과 협력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도 WTO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탈퇴 운운하며 분쟁 해결 기구로서의 자격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행정 당국자들은 이 전략을 기꺼이 받아들일 의지가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인 케빈 하셋은 지난 주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Fox Business Network)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은 WTO의 회원이 되면서 다른 국가들과 같이 행동하기 원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하는가? 만일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 나머지 국가 공동체가 중국을 WTO에 남아 있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대사가 되기 전에 23조에 따라 중국을 제소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일본과 유럽 연합 무역 관계자들은 오는 31일 워싱턴에서 중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과 회담을 갖는다. 그들은 모두 중국이 변해야 하는 자신만의 이유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미국이 WTO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WTO의 일원으로서 행동하기를 강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