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소유란 통제권을 갖는 것을 뜻한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적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안정감을 준다. 그것은 권력이자 안전이고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소비를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독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하루를 보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기분 좀 풀 겸 명품 옷이나 빌려 입어!”라고 말하진 않는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소유욕은 강하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물건을 소유가 아니라 ‘이용’을 하는 새로운 소비 행태가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 교수는 2000년 저서 <소유의 종말 : The Age of Access>에서 자본주의가 물건을 소유하는 시대에서 접속하는 시대로 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접속(Access)’이란 중계 서비스나 인터넷 등의 매개체를 통해 상품이나 콘텐츠의 소유권을 일시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책이 나오고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 ‘접속의 시대’가 왔다. 제법 많은 사용자들이 상품과 콘텐츠를 사지 않고 사용권을 일시 획득한 후 이를 누린다. 현재는 ‘접속’보다는 ‘이용(Subscription)’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이는 한 달 또는 1년 등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요금을 내고 서비스에 접속해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을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요금을 내는 동안은 다양한 콘텐츠와 상품을 산 것과 다름없이 이용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렌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용경제(Subscription Economy)’는 해외에서 업종과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정해진 소득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소비의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에서 그 탄생의 씨앗을 찾는다. 한국에서도 급부상하고 있는 ‘이용경제’, 소유 대신 서비스와 상품을 사용하는 삶은 과연 긍정적일까. 새로운 변화가 갖는 의미를 <이코노믹리뷰>가 조명한다. 

▲ 전통의 ‘상품경제’에서는 소비자가 소유권을 갖고 산 만큼 기업에 돈을 지불했다. 그러다 ‘공유경제’가 부상하 면서 소비자가 일정 기간 점유권을 갖고 쓴 만큼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소비형태가 바뀌었다. 그 런데 최근에는 소비자가 멤버십(회원권)을 갖고 먼저 돈을 지불한 뒤, 콘텐츠나 제품을 이용하는 ‘이용경제 (Subscription Economy)’가 부상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 직장인 유 모(31, 여) 씨는 월세를 내고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 보니 침대와 같은 큰 가구는 월 이용료를 내고 렌털을 이용한다. 영화, 드라마, 음악을 좋아하는 유 씨는 넷플릭스와 멜론 월정액 서비스를 구독해 원하는 콘텐츠를 즐긴다. 유행이 빨라 질리기 쉬운 옷과 가방도 한 달에 4번 취향에 맞게 큐레이션된 제품을 받아 이용하고 있다. 식사는 정기배송을 이용해 해결한다.

전통의 ‘상품경제’에서는 소비자가 소유권을 갖고 산 만큼 기업에 돈을 지불했다. 그러다 ‘공유경제’가 부상하면서 소비자가 일정 기간 점유권을 갖고 쓴 만큼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소비형태가 바뀌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비자가 멤버십(회원권)을 갖고 먼저 돈을 지불한 뒤, 콘텐츠나 제품을 이용하는 ‘이용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부상하고 있다.

이용경제는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 아니다. 과거 ‘구독’은 종이신문이나 잡지를 월정액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에 국한됐다. 최근 이는 소프트웨어, 면도기, 꽃, 식자재, 옷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가 기업에 회원으로 가입(Subscribe)하면 정기적으로 물건을 배송받거나 언제든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모델로 진화했다. 유료 정기 서비스·상품 이용경제 모델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

이런 경제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는 소유하지 않으려는 욕구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처럼 자기 것을 나눠 쓰는 공유경제조차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소비 트렌드가 상품을 소유하는 ‘구매’에서 필요할 때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용경제를 ‘월정액 무제한 이용’, ‘정기배송’, ‘렌털’을 하나의 그룹으로 아우르는 용어로 설명한다. 다만 렌털과 이용의 차이점은 약정기간과 위약금이다. 이용경제는 약정기간과 위약금 없이 언제든지 서비스 해지가 가능하다. 이용은 정기배송, 월정액이라는 용어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용경제의 부상을 경제 불황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구매 대신 서비스·상품 이용만

이용모델의 지불시스템을 개발·판매하는 주오라(Zuora)에 따르면, 2016년 4억2000만달러(약 4701억원)에 이르는 세계 이용경제 시장은 2020년까지 14억달러(약 1조6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이용모델이 과거에 없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확산되는 이유는 ‘효용 이론(Utility Theory)’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효용 이론이란 개인이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경제학 이론이다. 이를 이용경제에 대입해 보면, 사용자들이 구매 대신 이용을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멜론, 지니, 애플뮤직 등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보자. 음반 한 장 값도 안 되는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유료 이용경제는 화장품 정기 이용 서비스 ‘미미박스’처럼 소비자에게 맞춤화된 상품을 매월 정기로 보내주는 데서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 이용모델의 지불시스템을 개발·판매하는 주오라 (Zuora)에 따르면, 2016년 4억2000만달러(약 4701 억원)에 이르는 세계 이용경제 시장은 2020년까지 14억달러(약 1조6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주오라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는 “유료 이용경제는 일상용품인 속옷, 면도날, 칫솔로 시작했지만 최근 영화, 음악, 드라마, 소프트웨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면서 “쓴 만큼, 필요한 기간만큼 소액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 돈이 있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돈이 없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도 가볍게 접근하게 되니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관점에서도 유료 이용 모델이 확산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가장 큰 장점은 첫째,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투자와 자금조달 등의 재무계획을 안정되게 수립할 수 있다.

둘째, 고객이 선호하는 상품이나 소비형태 등의 데이터를 추적·수집할 수 있다. 제품을 판매하면 이후 고객에게 어떤 정보도 받지 못하거나 아주 제한된 정보밖에 접근할 수 없다. 반면 이용모델은 사용패턴 등의 정보 획득이 가능하다. 이를 활용해 고객들과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인화된 맞춤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개인 맞춤서비스로 고객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 사용자로 끌고 갈 수 있다. 이용 서비스를 이용해온 고객은 관성이 생겨서 서비스를 취소할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곧 마케팅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넷째,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현재 고객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6~7배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에도 큰 장점이 있다.

정인호 대표는 “유료 이용경제는 안정적인 현금흐름, 맞춤서비스 제공, 마케팅 비용절감 등 다양한 이점이 있다”면서 “클라우드, 스트리밍, 사물인터넷 등 기술발달로 모든 장비와 서비스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기술 발전 덕분에 이런 경제모델이 확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용서비스로 기업의 단위당 매출은 줄더라도 서비스 이용자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가치는 이용경제가 더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