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 포스트(Mark Post) 교수가 개발한 ‘소 배양육으로 만든 햄버거 패티’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애그펀드뉴스(AgFunderNews)

[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영국의 총리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1932년 쓴 수필집 <50년 뒤의 세계(Fifty Years Hence)>에 “50년 뒤에는 닭가슴살이나 날개만 먹으려고 닭을 키우지 않을 것이다. 대신 원하는 부위만 골라 키워낼 것이다”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당시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었으나, 80여년이 지난 지금 줄기세포 연구기술의 발전으로 가축 도축 없이 실험실에서 원하는 부위의 고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렇게 실험실에서 만든 고기를 ‘배양육’ 또는 ‘시험관 고기’라고 부른다.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위기가 도래하는 상황에서 배양육이 미래 먹을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 글로벌 축산기업들은 배양육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관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기업들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 배양육 생산과정. 출처=Foodive

가축 사육·도축 없이 실험실서 동물 세포배양으로 만든 배양육

최근 <애그펀더뉴스(AgFunderNews)>를 비롯한 미국 매체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 인구는 95억~100억 명 수준으로, 같은 기간 육류 소비량은 현재보다 70% 이상 늘어난 4억5500만t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매년 400만t 이상의 육류를 추가로 생산해야하는 가운데, 배양육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배양육은 가축을 사육·도축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동물 세포배양을 통해 생산되는 육류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Cultured meat, In vitro meat, Lab grown meat 또는 Clean meat이다.  배양육은 기존의 식물성 단백질을 주원료로 만든 식물성 고기와 별개의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푸드테크 기업 ‘임파서블 푸즈(Impossible Foods)’에 따르면 배양육은 크게 네 가지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우선 소·돼지 등 가축에서 조직세포를 분리하고, 조직세포 내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이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약 6주 동안 배양해 근섬유를 제작하고, 착색한 후 여기에 지방을 혼입해 배양육으로 제조한다.

식물성 고기는 콩(대두)과 밀, 버섯을 비롯한 특정 식물에서 단백질·지방 등의 영양소를 추출해, 여기에 향미·영양·질감을 고려한 다양한 재료를 조합해 생산된다.
 

▲ 멤피스 미츠의 CEO 우마 발레티 박사(가운데)가 지난 3월 맛 감별사들을 초청해 배양육 치킨 요리 시식행사를 했다. 출처=멤피스미트(Memphis Meat)

2013년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쇠고기 배양육 개발

배양육 연구기술 개발은 주로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활발한 편이다. 200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식 연구개발의 하나로 칠면조 고기를 배양했으며, 이듬해 네덜란드에서 금붕어 근육조직을 배양하는데 성공한 적이 있다.

세계 최초의 배양육은 2013년 8월 마르크 포스트(Mark Post)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교수가 개발한 ‘소 배양육으로 만든 햄버거 패티’다. 포스트 교수는 배양육 상업화를 위해 스타트업 ‘모사 미트(Mosa Meat)’를 세웠으며,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40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도 포스트 교수에게 3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세계 2위 규모의 미국의 다국적 축산기업 타이슨푸즈(Tyson Foods) 계열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멤피스 미트(Memphis Meat)’는 2016년 1월 쇠고기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을, 이어 지난해 3월에는 세계 최초로 닭고기와 오리고기 배양육을 개발해 주목 받았다. 

멤피스 미트의  우마 발레티(Uma Valeti)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배양육의 미래는 무척 밝을 것”이라면서 “세계 육류시장 규모가 약 1조달러인데, 향후 배양육의 기술발전으로 수십 년 안에 두 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배양육 생산이 기존 공정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99%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출처=애그펀드뉴스(AgFunderNews)

온실가스 배출 줄이고 식량난 대안으로 주목 받는 배양육

배양육의 장점은 공장식 축산업으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감소시키는 데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가축사육 과정에서 연간 71억t 규모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축산업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들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 

보통 축산농가에서 기존 공정으로 쇠고기 1㎏를 생산하기 위해서 15.5t의 물과 7㎏의 사료가 필요하다. 배양육 생산은 이에 비해 에너지 사용량은 55% 절감, 물은 96%, 온실가스 배출량은 99%까지 줄일 수 있다.

배양육 프로젝트를 연구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하나 투오미스토(Hanna Tuomisto) 교수는 “배양육은 늘어나는 인구에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물과 에너지 절약을 위한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존 방식과 비교해 더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인류 식탁에 고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양육은 열악한 축사환경과 도축과 관련한 동물복지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배양육을 생산할 때 필요한 배양액은 해조류를 이용하므로, 광우병·구제역과 같은 가축전염병 발병 위험을 배제할 수 있다. 또한 기술 수준에 따라 쇠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 어류 배양육 생산이 가능하다.

생산비용 높고 기존 육류보다 맛이 떨어지는 것은 단점

배양육의 이점도 있지만, 이를 상업화하는데 난관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큰 애로는 높은 생산비용. 배양육 생산비는 2013년 100g당 37만5000달러(한화 약 4억1900만원)에서 지난해 기준 1986달러(약 222만원)으로 크게 줄었으나 여전히 기존 육류(닭가슴살 기준 0.71달러/100g)와 비교하면 2800배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배양육 맛이 일반 육류보다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쇠고기·닭고기 등 시중에 구입하는 육류는 맛이 근육 사이의 지방(마블링)에서 나오며, 육질은 근육의 운동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배양육은 세포분열·성장으로 생산돼 맛과 육질 구현에 한계가 있다. 현재 배양육 기술은 햄버거 패티 등의 가공육과 유사한 맛을 보이고 있는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배양육 생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로빈 워너(Robyn Warner)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우리가 먹는 고기는 근육 세포와 연결조직으로 촘촘히 구성된 아주 복합한 구조로 구성됐고, 이런 근육과 조직 안에 모세혈관·지방세포 등이 존재한다”면서  “고기 맛은 무려 750여 가지의 화합물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배양육이 실제 고기의 맛을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배양육을 상업화하는데 가장 큰 난관은 높은 생산비용이다. 출처=AgFunderNews

글로벌 축산기업 타이슨푸드, 배양육 기술에 적극 투자

당장 배양육 상업화까지 높은 생산비용 등의 애로가 있지만, 육류업계는 꾸준한 생산기술 개발과 자동화를 바탕으로 향후 대량생산에 따른 비용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많은 축산기업들이 배양육 기술개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타이슨푸즈를 비롯한 축산기업들은 올해 이스라엘의 닭고기 배양육 생산 스타트업 ‘퓨처 미트 테크놀로지스(Future Meat Technologies)’에 300만달러(한화 약 33억5500만원)를 투자했다. 퓨처 미트 테크놀로지스는 2020년까지 ㎏당 생산원가를 10달러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멤피스 미츠(Memphis Meats)’는 2015년 설립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버진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 GE 회장을 역임한 잭 웰치 등으로부터 현재까지 2000만달러(약 223억6000만원) 상당의 투자금을 받았다.

이 외에 미국 캘리포니아 펫(Pet) 스타트업 ‘와일드 어스(Wild Earth)’는 반려동물을 위한 배양육 기술 개발에 400만달러(약 44억7000만원), 샌프란시스코의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 와일드 타입(The Wild Type)’은 연어 배양육 기술개발에 역시 400만달러 규모로 투자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타트업 ‘퍼펙트데이푸즈(Perfect Day Foods)’는 지난 4월 2500만(약 278억원) 달러를 투자 받고, 배양 유제품 생산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국내도 배양육 기술개발 개시

국내의 배양육 연구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거의 전무한 상황이지만, 대전광역시에 있는 바이오기업인 ‘(주)엠비지그룹(MBG Group, 회장 임동표)’이 2020년까지 1100억원을 투자해 배양육 관련 연구 인력을 영입하고 있다.

엠비지그룹 관계자는 “현재 배양육 연구를 위해 충청남도 금산에 실험용 한우를 사육 중에 있고, 최근 카이스트와의 공동연구, 미국·네덜란드의 동물세포 배양 연구기업들과 양해각서(MOU)를 잇따라 체결했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배양육 기술 개발에 나서 국내 배양육 기술개발 선도 기업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