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구광모 LG그룹 대표이사 회장이 취임한지 50일이 넘었으나 초반 발 빠른 경영행보를 보인 것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재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 21일 LG유플러스로 이동한 하현회 부회장이 신규 요금제 개편 발표장에 깜짝 등장한 가운데, 구 회장의 정중동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은근한 압박에 의도적인 몸 낮추기에 돌입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조직을 정비하고 추스리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 구광모 회장의 정중동은 올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출처=LG

구 회장은 지난 6월29일 LG그룹의 회장이 되며 4.0 시대를 열었다.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은 구 회장은 평소 소탈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구성원들의 인망이 두텁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스스로를 회장으로 부르지 않고, 핵심 경영인들을 만나면 깎듯한 예의를 보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구 회장은 LG 4.0 시대를 열며 취임 초기 재무통인 권영수 당시 LG유플러스 부회장을 그룹으로 불러들였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이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로 유명한 권 부회장을 통해 어려운 경영환경을 정면돌파하는 한편, LG의 핵심 계열사를 거친 권 부회장의 능력을 십분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연스럽게 구 회장의 행보가 빨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로보스타와 ZKW 지분 인수 등 연구개발, 인수합병 전반을 지휘하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취임 초기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던 구 회장의 경영시계는 7월 중순부터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신선한 파격은 있었다. 오너가 일원이 이사장을 맡아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등 LG 재단의 이사장에 지난달 30일 이문호 전 연암대학교 총장이 선임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와병 후 삼성의 공익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지금까지 오너가의 이사장 선임 전통을 지켰다면, 구 회장은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구 회장은 현재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연이어 만나는 한편 대규모 투자계획과 일자리 창출 로드맵을 발표하는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이가 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제동에 따른 속도조절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구 회장의 파격 중 하나인 재단 이사장의 비오너 인사 선임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기업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의결권을 5% 아래로 정하는 한편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거래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위의 칼날이 매세운 가운데 구 회장이 불필요한 잡음이 벌어질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는 말이 나온다.

구 회장의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재계는 구 회장의 업무 스타일에 따른 특수성과 조직의 미래를 위한 장고가 길어지고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이 취임 후 50일이 넘는 기간 별다른 행보를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부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필사적인 가능성 타진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구 회장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지주사에 잠깐 재직하다 대부분 LG전자에 몸을 담았기 때문에 지주사 대표가 된 지금, 그룹 전체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회장의 취임 일성도 재계의 주장에 타당성을 더한다. 구 회장은 취임 초기 그룹의 현황을 파악하고 장기 플랜을 세우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지 않은 것을 두고 많은 말이 나오고 있지만, 단순하게 그룹의 미래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라면서 "올해까지는 그룹의 현안을 파악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이 최소한 올해까지는 내부에 집중하며 정중동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