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의 저축 패턴이 종전의 스타일을 벗어나고 있다.   출처= 123RF.com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지난 두 차례의 경기 침체 직전에 미국의 가구들은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수년동안 주식 시장은 호황을 누렸고, 집값은 상승세였으며, 일자리 사정도 계속 좋아지고 있었으므로, 소비자들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저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001년과 2007년에 경기 침체가 닥쳐 실업률이 상승하고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소비는 급격히 감소하고 경제는 위축되었다.

몇 주 전까지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 10년차를 맞아 이번에 발표된 미국 가구 개인 저축률 공식 통계는 미국인의 저축이 종전의 스타일을 벗어났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미국 경제분석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가구들은 수년간 세후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만 보면, 미국 개인 저축률(가처분 소득과 지출의 차이)은 추정치인 3.3%의 두 배를 넘어선 7.2%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1990년 이후 최고치였던 6.4%를 넘는 수준이고, 최저치였던 2005년의 2.5%에 비하면 거의 3배에 해당한다(2분기 말 개인저축률은 6.8%다).

1분기에 늘어난 저축액은 무려 6135억 달러(686조원)로, 이는 포드 F-150 트럭 2000만대, 또는 아이폰 X 6억 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경제 데이터 산정에 약간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일반적으로 있는 일이지만, 이번 개인 저축률 산정 방식은 2002년 이후 가장 크게 변경됐다.

저축액은 전체 수입에서 지출과 세금을 빼고 남은 금액이다. 최근 저축률이 상승한 이유는 그동안 보고되지 않았던 자영업과 건물주 수입(proprietors’ income)이 새로 집계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보정으로 저축률의 상승치가 매우 크게 상승했는데 이는 자영업과 건물주 수입이 최근 2년간 급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가 지난 6월 발표한 5월 개인소비지출 보고서를 보면, 4월까지 2.8%에 머물던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5월에 6.8%로 한 달 만에 4% 포인트 급등했다. 실제 저축액이 크게 늘어났다기 보다는 정부가 저축률 산정 방식을 바꾸면서 생긴 일종의 착시효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저축률은 잠재 소비력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새로 포함된 항목이 소득 상위 계층의 저축액과만 관련이 있을 뿐이어서, 새로운 저축률이 이전 저축률만큼 ‘잠재 소비력을 평가하는 잣대’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들의 저축액 증가가 소비력을 대폭 증가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 미국 저축률 추이(기존 산정 방식과 새 산정 방식 비교)    출처= FRED

새로운 산정 방식은 또 평균 저축률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소득 중간값의 저축률이 나온다면 좀 더 정확한 지표가 될 수 있겠지만, 이 값은 발표되지 않는다.

그러나 JP 모건의 미국 경제 전문가 마이클 페롤리는 미국 소비자들의 저축 패턴이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소득이 많아지면 소비가 늘고 저축이 낮아진다’는 이른 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따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미국 가구들은 또 다시 올지 모를 침체에 대비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3년 이후 실업률이 떨어지고 주택 가격과 주식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축률이 감소하지 않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

페롤리는 만일 2013년 이후 미국 소비자들이 부의 효과를 따랐다면, 현재의 저축률은 2% 대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미국 가구들의 절약 정신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비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가구들이 오랜 동안 따르던 패턴을 벗어남에 따라, 경제 전문가들도 저축률 상승이 소비 증가와 경제 성장에 어떤 의미를 가져올 것인지를 알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개인 소비율은 2분기에 연율로 4% 상승했지만, 공화당의 세금 감면에 따른 즉석 효과였기 때문에 지속될 가능성은 적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저축률 산정 방식 변경 이후 소비 지출이 둔화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중반까지 소비 증가율을 당초 예상했던 연율 2%에서 2.4%로 상향 조정했다. 자동차, 건강 관리 등의 상품과 서비스 부문에서 580억 달러의 추가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자문회사 스티펠(Stifel)의 린제이 피그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다 신중하다. 그는 “소비자들이 과거보다는 좀 더 튼튼한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는 근본적으로 일자리와 수입에 의해 좌우된다”며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이 놀라울 정도로 부진하다. 올 하반기에 소비자 지출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저소득 가구와 중간 소득 가구가 전보다 형편이 나아졌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이 저축률을 높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소득가구와 중간 소득 가구가 엄청난 돈을 저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