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두루마리 휴지 한 개를 사는데 바구니 한가득 담은 돈이 필요할 정도의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탈출하는 엑소더스가 계속되는 가운데, 초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화패개혁을 단행했다. 과연 화폐개혁이 혼란을 잠재워 줄까.

▲ 두루마리 화장지의 가격은 260만볼리바르로, 사진 속에 있는만큼의 화폐를 내야 살 수 있다.출처= CARLOS GARCIA RAWLINS / 로이터통신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가 최근 발행한 가상화폐 '페트로' 가치에 연동되는 새로운 볼리바르화인 '주권 볼리바르'를 20일(현지시간)부터 발행했다. 볼리바르 소베라노는 기존 볼리바르를 96% 평가절하한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계속

그러나 새로운 화폐를 발행한 다음날인 21일 200여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에콰도르의 국경을 넘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페루 이민 당국이 25일부터 여권을 소지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만 입국 허용 방침을 발표한데 따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재빠르게 자국을 탈출 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화폐개혁을 시작했지만, 국민들의 불신은 커져만 가는 모습이다.

올해 콜롬비아의 국경을 통해 에콰도르에 입국한 베네수엘라인은 42만3000명이다. 2014년 이후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인구는 230만 명으로 추정된다. 베네수엘라의 전체인구(3200만명)의 약14%가 자국을 탈출했다.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7일 밤 화폐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출처=베네수엘라중앙은행

화폐를 찍어내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다. 재정이 부족한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화폐를 충분히 찍어낼 수 없다. 이에 국민들은 은행과 ATM 앞에서 종일 씨름을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화폐를 구한대도 다음 문제는 화폐가치를 계산하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구권과 신권 가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화폐 계산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그러나 수시로 물가상승률이 변동되는 바람에 혼란은 계속 되고 있다.

우파 야권은 21일 정부의 화폐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며 총파업을 소집했다. 거리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으며, 기저귀나 의약품 부족으로 하루에 세 명의 신생아가 브라질 국경을 넘어 원정 출산으로 태어난다. 혼란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예견된 혼란

베네수엘라가 통화가치를 절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3년 루이스 에레라 캄핀스 전 대통령이 국제유가 급락으로 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물가가 치솟자 볼리바르 단위를 대폭 낮추는 화폐개혁에 나섰다. 포퓰리스트인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재임 기간 수차례 화폐개혁을 진행했다. 그는 2013년 3월 암으로 죽기 직전에도 무려 23%의 통화가치 액면절하를 단행했다.

이에 전문가들과 베네수엘라인들은 이미 화폐개혁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혼란을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두로 대통령이 회패계혁을 발표한 다음날인 19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슈퍼마켓과 주유소에 시민들이 몰려들고, 심지어 일부 상점 주인들은 시민들이 어떤 물품들을 요구할지 몰라 가게 문을 여는 것조차 주저할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뉴욕 투자회사 토리노 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는 화폐개혁이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란시스코는 "이 계획에는 많은 심각한 문제들이 있지만, 정부가 화폐 발행을 중단할 것이라는 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물가를 올릴 것이고, 정부는 정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경제학교수이자 초인플레이션 전문가인 스티브 H. 행크 교수도 "통화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면서 "성형외과 의사에게 가서 주름 제거 수술을 받는 것과 같다. 겉모습은 변했지만, 여전히 똑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베네수엘라의 화폐개혁을 꼬집었다.

혼돈 속에 있는 베네수엘라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발생했다. 지난 21일 오후 베네수엘라 동북부 해안 지역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공포 속에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