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국내 동영상 콘텐츠 시장의 화두는 구글 유튜브의 비상과, 넷플릭스의 콘텐츠 시장 공략이다. 특히 후자에 집중하면 IPTV와 케이블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 전략의 흐름을 간파할 수 있다.

혼돈의 미디어 시장

글로벌 동영상 미디어 플랫폼 시장은 혼돈 그 자체다. 넷플릭스의 행보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2분기 실망스러운 실적을 기록했으나 넷플릭스는 시장의 판을 바꾼 플레이어 중 하나다.

넷플릭스는 탄생부터 인터넷으로 영화를 서비스하겠다는 DNA를 잉태했다. 넷플릭스(NETFLIX)라는 사명 자체가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설명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시작부터 스트리밍을 향해 있었고, 이는 과거 동영상 플랫폼의 가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과감한 역발상이다.

넷플릭스의 미래는 현재진행형이다. 구독형 비즈니스 전략을 고안해 성공시킨 넷플릭스 특유의 DNA가 다소 주춤하는 구독자 순증을 다시 끌어올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외 지역에서의 성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현지 사업자와 협력해 시장에 침투하는 특유의 전략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구독료를 인상했음에도 구독자 순증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콘텐츠 역량도 올해 성장의 여백이 넓다. 지난해 60억달러를 콘텐츠 확보에 사용했으며 올해도 80억달러를 투입한다. 자체 제작 오리지널 콘텐츠를 내세워 플랫폼의 매력을 끌어올리며 ICT 큐레이션 기술로 시청 패턴을 바꾸는 전통적인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넷플릭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 왕자 디즈니는 지난해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한편 713억달러를 투입해 21세기폭스 일부 사업부를 인수했으며 통신사 AT&T도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에 합의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2011년 NBC유니버셜을 인수하는 한편 막판까지 21세기폭스를 노린 컴캐스트와, 최근 콘텐츠 매출 비중을 높이고 있는 애플을 비롯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서비스하고 있는 아마존도 큰 틀에서는 경쟁자다. 미국 방송사들의 연합체인 훌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강한 콘텐츠 전략으로 넷플릭스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국내는 어떨까. 넷플릭스가 진출했으나 유료방송 코드커팅 효과는 미비했다. 지상파 방송 플랫폼 척도인 직접수신율이 바닥을 기어가는 가운데 유료방송 비용이 낮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굳이 넷플릭스로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수급을 통해 글로벌 시장 경쟁력 강화와, 국내 시장 장악력을 동시에 올리려는 전략을 세운 이유다.

국내 미디어 플랫폼 시장의 맹주는 IPTV다. IPTV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케이블을 밀어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결합상품을 활용해 이동통신 업계의 시장 지배력을 미디어 업계로 과도하게 끌어온다는 비판도 있지만, 큰 틀에서 콘텐츠와 플랫폼 전략을 효과적으로 운용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각 통신사의 2분기 실적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SK텔레콤 2분기 IPTV 매출은 30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1% 증가했다. 모바일 TV 옥수수도 상승세다. 6월 말 기준 옥수수 가입자는 전년 동기 대비 22.1% 늘어난 914만명, 월 순방문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2% 증가한 626만명을 기록했다. KT도 IPTV 가입자 확대와 지니뮤직 등 자회사의 성장을 바탕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한 6042억원을 달성했다. 별도 기준 IPTV 매출은 3619억원을 기록해 승승장구했다. LG유플러스도 유선수익 중 홈미디어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0% 상승한 4773억원을 기록했다.

SKB 움직인다… 통할까?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출이 빨라지고 있으나 아직은 찻잔 속 태풍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SK브로드밴드는 7일 고객 중심으로 미디어 서비스 시스템과 홈화면을 개편하고 콘텐츠를 대폭 강화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윤석암 SK브로드밴드 미디어부문장은 “이제 유료방송 서비스도 기존의 똑같은 서비스, 똑같은 콘텐츠 제공에서 벗어나 고객별로 미디어 소비성향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에 맞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번 개편이 진정한 고객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PTV인 B tv를 넷플릭스와 같은 OTT처럼 홈화면을 맞춤형으로 바꿨다. 일종의 큐레이션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천편일률적 홈화면에 익숙한 국내 고객들에게는 생소한 변화다. 새로운 홈화면은 고객의 가입, 이용 행태를 반영해 고객의 시청이력을 데이터로 분석해 메뉴와 이벤트, 추천 콘텐츠 등 집집마다 취향에 맞춰 IPTV 최초로 각기 다른 홈화면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단순나열식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넷플릭스를 비롯한 차세대 미디어 플랫폼의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전략이다. SK브로드밴드는 궁극적으로 B tv의 460만 고객마다 모두 다른 460만개의 홈화면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지상파에서 자리를 옮긴 SK브로드밴드 김혁 미디어지원본부장은 “프로그램의 메인 이미지 등 그림을 중심으로 화면이 구성되면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면서 “B tv는 어떤 화면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의 취향에 맞게 데이터로 분석해 제공한다”고 말했다.

고객이 직접 취향에 따라 B tv 홈, 실시간 TV, 키즈 채널 등 3가지 첫 화면 중 선호하는 시청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새로운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배려하기도 했다. 파격적인 실험에 앞서 일종의 속도조절에 나서는 셈이다. 고객이 TV를 켜면 VOD를 즐겨 보는 고객은 B tv 홈(Full Home), 실시간만 시청하는 고객은 실시간 TV(Light Home), 키즈 콘텐츠를 즐겨보는 고객은 키즈 채널(Kids Home)이 나오기도 한다. 넷플릭스의 전략과 오버랩된다.

키즈 콘텐츠 강화에도 나선다. 3D 안면인식 기술 등을 통해 ‘살아있는 동화’를 구현한다는 설명이다. IPTV 3사 모두 키즈 콘텐츠에 집중하는 가운데 SK브로드밴드는 ICT 기술력을 바탕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다. B tv 키즈 독점 서비스인 ‘영어쑥쑥’ 코너를 통해 ‘마더 구스 클럽’, ‘리틀 팍스’ 등 영어권 현지 아이들이 즐겨보는 글로벌 인기 키즈 영어교육 콘텐츠 1200여 편을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 60대 이상의 시니어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노래방 서비스 에브리싱(Everysing) TV도 공개됐다.

자기가 그린 그림을 TV 화면 속 동화에 구현할 수 있는 그리기 놀이도 있다. 아이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TV 화면 속 동화에 구현해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화 속 주요 문장을 아이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말하기 놀이도 있다. 아이는 동화책의 주요 문장을 영어나 우리말로 따라 읽으며 동화책 읽기에 참가할 수 있다.

OTT 선봉장 옥수수도 강력해졌다. 옥수수의 스포츠 기능을 강화해 IPTV 대비 중계방송 지연 없이 경쟁 OTT보다 최대 20초 빠른 ‘가장 빠른 프로야구 중계’를 하기로 했다. 중계방송 지연현상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SK텔레콤 미디어기술원과 함께 개발했으며, 앞으로 이를 프로야구 전 중계 채널에 확대해 적용할 계획이다. 채널을 이동할 때 15초 광고가 없다는 점도 옥수수의 장점으로 꼽힌다. 프로야구 같은 경우 공수 교대를 할 때 채널을 돌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광고를 시청해야 하면 이용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도… 판 흔든다

SK브로드밴드의 B tv와 옥수수의 행보는 넷플릭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월 옥수수 출시 2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편에 돌입했다. 사용자 환경과 인터페이스를 머신러닝 기반으로 삼아 인공지능 콘텐츠 큐레이션으로 묶어내는 것이 골자다. 글로벌 OTT 강자인 넷플릭스의 콘텐츠 큐레이션 기능과 비슷하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최근 주요 동영상 서비스들이 많이 사용하는 종합분석형(MF, Matrix Factorization) 방식을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추천 알고리즘은 유무료 여부, 평점, 시청 횟수, 시청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콘텐츠의 순위를 매김으로써 개인의 성향에 맞는 정확한 추천이 가능해지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모든 옥수수 이용자들은 각자의 콘텐츠 성향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홈 화면을 접하게 된다.

옥수수 접속 시 가장 먼저 나오는 홈 화면의 메뉴 구성을 홈, 랭킹, MY로 간소화했고 랭킹 메뉴에서는 LIVE, 드라마, 예능 등 섹션별 인기 콘텐츠의 랭킹을 제공해 콘텐츠 선택의 편의성을 높였다. MY 메뉴에서는 개인의 콘텐츠 시청이력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한 추천 콘텐츠 제공과 즐겨보는 콘텐츠의 최신 회차, 요즘 유행하는 콘텐츠 추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체적인 메뉴 구성 역시 심플하게 변경했다. 지난 7일 전체 개편의 예고편인 셈이다.

걸어온 길도 이색적이다. 지식재산권(IP) 브랜드를 위한 정지작업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옥수수 패밀리다. 총 5종의 캐릭터(옥수수, 꿀잼, 치치, 칠리, 콘파카)며 불이 꺼진 옥수수 극장에 나타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옥수수 내 채팅과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으로 출시되며 추후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캐릭터와 연계한 콘텐츠 제작 가능성도 열려 있다. 30개의 오디오 채널을 하나의 채널(B tv 311번)에서 청취할 수 있는 오디오 포털인 B tv 뮤직도 서비스한다. 최신가요부터 클래식, 재즈 등 음악 채널뿐 아니라 종교음악, 다문화 방송, 책읽어주는 라디오, 어린이 EQ동요 등 오디오 전용 콘텐츠 채널까지 준비됐다. 30개의 실시간 채널로 구성해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는 후문이다.

▲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눈길을 끈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 이상의 사용자 경험 누릴까

냉정하게 말해 넷플릭스의 진격은 현재 IPTV 사업자에게 큰 위협이 아니다. 구독자 기준이나 시장 파급력을 봐도 넷플릭스 파급력은 명확한 한계가 보인다. 국내 IPTV 업계는 다르다. 이동통신과의 결합에 따른 시장 장악력과 유료방송 시장의 패권을 바탕으로 OTT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N-스크린 로드맵도 구성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의 미디어 전략은 넷플릭스의 역발상과 닮으면서도 안정적인 흐름도 보여준다. 분할 가능성까지 언급되며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동영상 콘텐츠는 최근 네이버 등 포털 사업자를 압도하는 유튜브의 존재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020 세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이 잃었던 10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내는 이유다. SK브로드밴드는 B tv와 옥수수를 통해 이 부분을 명확하게 장악하는 한편, OTT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교한 사용자 경험까지 끌어내고 있다. 이미 발판을 마련한 B tv를 통해 OTT인 옥수수를 키우는 전략이 유력하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신선한 발상을 쫒으며 무작정 넷플릭스만 참고하면 곤란하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큐레이션 전략은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를 끌어냈으나 일각에서는 적은 콘텐츠 숫자를 감추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대한 콘텐츠를 보유한 사업자가 무작정 따라 하기는 무리가 있다. 시청환경 패턴을 명확하게 파악한 후 적절한 ‘차용과 버림’이 필요하다. 오리지널 콘텐츠도 넷플릭스의 성공 사례로 평가되지만, 최근 넷플릭스가 콘텐츠 전략을 구사하며 외부 콘텐츠 수급의 끈을 놓지 않는 장면도 의미심장하게 지켜볼 필요도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은 큰 위협이 아니지만, 콘텐츠 제작자와의 접점이 많아지며 하위 생태계가 종속되는 장면도 경계해야 한다.

경쟁자와의 차별성도 강해야 한다. 통신 3사 IPTV는 모두 키즈 콘텐츠 강화에 나서며 인공지능 스피커와의 결합, 글로벌 ICT 업계와의 합종연횡으로 판을 키우고 있다. 자기의 플랫폼을 지키면서 외부와의 협력을 시도해 확실한 기회비용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