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이라고 해야 더 고급스러울지 모르지만 왠지 돌아가신 ‘내 아버지’라고 해야 더 정감이 간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지금은 유품이 된 ‘부라더 미싱’으로 헌 옷감을 이용해 누빔이불을 척척 만드셨다. 가족들이 입던 옷이 쥐포처럼 납작해져 이불이 되어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어린 필자는 옆에서 마냥 신기한 눈으로 아버지가 옷감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재봉질을 하는 손을 봤다. 그리고 아버지의 발을 보았다. 위아래도 아니고 앞뒤도 아니고 묘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발판은, 아버지의 발에 의해 드르르륵 빨라졌다가 득득 멈추기도 했다. 지금은 재봉틀이 모두 전기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발판은 보기 어렵다.

돌출입 수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도의의 미학적인 감각과 수술 솜씨 즉, 눈과 손이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보는 눈이 있어야 그것을 목표로 할 수 있고, 손재주가 좋아야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 간과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발재주’다. 발은 손에 비해서 늘 홀대당한다. 예를 들어 발연기라고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의 연기력이 부족하고 어색해서 마치 발로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몹시 더럽고 추하며 보잘것없는 물건이나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거지발싸개’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돌출입 수술이나 윤곽수술을 할 때는 절골용 톱을 사용한다. 이 절골용 톱은 사실 갱 영화의 잔인한 장면에 나오는 전기톱처럼 돌아가는 톱이 아니고, 진동 톱이다. 따라서 톱이 집도의의 손에 닿는다고 해도 손에 상처가 나지 않을 만큼 안전하다. 이 톱은 전기로 작동되며, 집도의가 발로 누르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싱이나 자동차 액셀레이터처럼 더 깊게 누르면 더 빨리 세게 움직이고, 덜 누르면 덜 움직인다.

돌출입 수술을 할 때, 이제는 종이에 이름 석 자 쓰는 일만큼 필자에게는 쉽고 즐거운 ‘톱질’을 하는 순간, 늘 필자의 발도 바쁘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디까지를 어떤 모양으로 절골할지를 필자의 눈, 손, 발이 합체 로보트처럼 구현해내고 있다. 명령은 물론 뇌가 한다. 미학적, 의학적, 해부학적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이유다.

어느 무더운 날, 일상과도 같은 돌출입 수술을 잘 마치고 나서 수술가운을 벗고는 환자가 마취에서 깨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득 그간 눈여겨보지 않던 발판을 응시하게 되었다. 필자는 늘 성형외과 전문의와 같은 수술집도의(Surgeon)는 손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는데, 문득 발의 수고를 간과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출된 입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톱을 움직여 주는 원동력은 수술장의 제일 밑바닥을 밟은 발, 그리고 발바닥보다도 더 낮은 곳에 묵묵히 건재하는 발판이 지켜주고 있었다…. 순간 미싱 발판을 굴리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선한 미소가 오버랩되었다.

손재주든 발재주든, 유전은 무섭다. 돌출입, 윤곽수술에서 나름 솜씨 좋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었다면, 선친에게 감사할 일이다.

한편 이 무서운 유전 때문에 돌출입도 대를 잇기가 쉽다. 돌출입을 가진 필자의 의사 친구의 두 딸이 벌써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았다. 의사 아빠가 딸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도록 해주는 일은 일반인보다 더 쉬워 보이지만, 일면 더 어려운 결정일 수도 있다. 강한 신뢰가 아니라면 맡기지 못할 것이다. 모녀, 쌍둥이 자매, 자매, 형제, 두 형제와 그 어머니, 사촌지간 모두 돌출입 수술을 한 적도 있다. 모두 유전의 힘이다.

한편 돌출입과 인생 이야기라고 하면 ‘돌출입이 인생과 무슨 관계야?’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눈, 코, 가슴, 지방흡입, 돌출입 수술, 광대뼈, 사각턱 수술과 같은 윤곽 수술을 모두 해본 경험으로는, 그중에 돌출입과 돌출입 수술만큼 환자에게 절망과 희열을 극명하게 주는 수술이 없다. 그래서 사연도 많고 인생도 변화한다.

돌출입이 심할수록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거나 상처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돌출입으로 인해 자신감의 결여,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대인관계에서 위축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입이 튀어나오고 웃을 때 잇몸이 훤히 보이는 모 개그맨을 닮았다고 놀림을 당하거나 원숭이, 오리, 개구리, 메기, 유인원처럼 듣기 싫은 별명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화났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든지, 성격이 나쁘다고 오인 받고, 자신 있게 활짝 웃을 수 없으며, 헤어스타일의 제약, 사진 찍기 싫은 스트레스, (동안 아닌) 노안으로 보이는 고민 등은 돌출입 수술을 하는 필자가 늘 듣는 하소연들이다.

며칠 전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은 40대 후반의 전직 학원 원장은, 너무 사나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우리 애들을 맡겨도 될까 하는 학부모들의 수군거림, 입학 알아보러 왔다가 원장의 첫인상에 놀라 돌아서는 상처들을 늘 견뎌야 했다고 고백했다.

오늘도 발판을 눌러 열심히 돌출입 수술을 한다.

필자에게 돌출입 수술을 받는 것이, 돌출입 환자들의 인생에서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것이고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