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ICT 기업이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하며 일반인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비례해 각 정부와 ICT 기업이 마찰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 사례는 세금 문제와 시장 독과점 논란이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은 유럽에서 세금탈루 의혹을 받고 있으며 세금을 낸다고 해도 정상적인 납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 독과점 논란도 심각하다. 유럽연합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각) 구글에게 시장 독과점을 이유로 43억4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퀄컴은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 독과점 행정명령까지 받았다.

▲ 구글의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 출처=구글

세금과 시장 독과점 논란은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주장과 맞물리며 강력한 후폭풍을 일으킨다. 네이버가 지난해 플랫폼 공공성 시비에 휘말렸을 당시 국면전환용 카드로 빼들었던 것이 글로벌 ICT 역차별 논란이었고, 네이버와 구글은 서로 성명서를 발표하며 첨예하게 대립한 바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충돌도 미디어 플랫폼 시장 수호의 관점에서 벌어지고 있고, 구글 유튜브가 10대 이용자를 빨아들이며 국내 포털을 압박하는 장면도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글로벌 ICT 업계 특유의 ‘무국경’ 사태가 촉발시킨 전쟁이다.

글로벌 ICT 기업과 각 국 정부의 충돌을 살펴보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둘러싼 실랑이도 감지된다.

최근 구글은 내분중이다. 인공지능 군사 시스템 구축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프로젝트 메이븐이 논란 끝에 폐기수순을 밟았으나 중국 시장 진출을 두고 갑론을박이 심해지고 있다. 구글이 중국 시장에 재진출하기 위해 중국 당국의 검열을 모두 반영하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프로젝트 드래곤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구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중국 고위 관리들이 만나 구글의 중국 시장 재진출을 타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를 중심으로 성장했고, 자유분방함을 무기로 세계를 하나로 묶은 최고의 IT 기업이다. 설립 초기 ‘사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모토를 통해 자기들의 정체성을 가꿨다는 평가다. 그러나 프로젝트 드래곤은 구글이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을 부정한다. 막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을 품어내기 위해 구글 본연의 가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구글 내부 직원들인 구글러들은 최고경영진에 프로젝트 드래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나도 프로젝트 드래곤의 실체를 최근에야 알았다”면서 “아직 고려중인 사항일 뿐”이라고 발을 뺐다.

구글은 중국 정부와 포털 서비스 범위를 두고 대립하던 중 2010년 전격 철수결정을 내렸다. 중국의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결단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중국 ICT 대국굴기가 시작되는 한편 방대한 내수시장의 매력도가 상승하자 구글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은 지난해 알리바바의 라이벌인 JD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베이징에 인공지능 허브를 구축하며 중국에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구글의 프로젝트 드래곤을 둘러싼 논란이 ‘선(구글)과 악(프로젝트 드래곤, 중국)의 대결’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상황에 따라 처세가 달라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구글은 미국 정부에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ICT 기업이며, 최근에는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를 벌여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사상 초유의 개인정보유출, 2분기 주춤하고 있는 이용자 수 감소로 고전하고 있는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의 백도어 논란에 휘말렸다.

로이터 등 주요외신은 19일 미국 정부가 범죄수사 과정에서 페이스북 메신저 암호화 해제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공익을 위해 일종의 백도어(뒷 문을 여는 것처럼 몰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달라는 뜻이다. 페이스북의 메신저는 종단 간 암호화 기술로 보호되며, 제3자가 엿보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미 법무부는 페이스북을 법정 모독죄로 고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 마크 저커버그가 개발자 회의에 나서고 있다. 출처=갈무리

페이스북이 지난 4월 초유의 개인정보유출 논란을 겪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반응으로 보이지만, 페이스북 스스로 미국 대형 은행에 고객의 자세한 금융자료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한 대목과는 분명 상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5일 페이스북이 미국 대형 은행에 고객의 자세한 금융정보 자료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고객의 은행잔고 정보까지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은행들은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이 연루된 ICT 기업의 백도어 논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애플 아이폰 백도어 논란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016년 3월 아칸소 주에서 부부살해 혐의로 기소된 청소년들 2명이 소유한 아이팟과 아이폰의 보안장치를 해제하기 위해 검찰과 협의하는 한편, 애플에 백도어를 요청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애플이 자체 보안 시스템을 일부 열어달라는 취지다. 그러나 애플은 거부했다. 팀 쿡 CEO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수십억 개의 잠금을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기능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탈리아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파브레티(Leonardo Fabbretti)와 그의 아들 고 다마의 사진. 출처=SNS 갈무리

아들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아버지가 죽은 아이의 아이폰에 담긴 추억을 보관하기 위해 애플에 특별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파브레티(Leonardo Fabbretti)는 2007년 다마(Dama)를 입양했으나 그는 2015년 골수암으로 사망했다. 파브레티는 아들과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다마의 아이폰에 담긴 사진을 열람하려고 했으나 확인할 수 없게 됐다. 백업설정을 하지 않아 클라우드에 보관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추억을 남기기 위해 아이폰 보안을 열어달라며 부탁한 청원을 끝내 외면했다. 어떤 경우에도 백도어는 용납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파브레티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떠한 일이 발생했느냐에 따라 애플의 사생활 보호 기준이 재고 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애플의 철저한 사생활 보호 방침에 동의하지만 나와 같은 몇몇의 특수 상황에는 예외를 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과의 추억이 애플에게 인질로 잡혔고, 다시는 아이폰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오픈 인터넷 정신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애플은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제로 수준으로 유지하는 한편, 백도어 논란에 있어서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있으나 다른 영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망 중립성 폐지 논란이 한창이던 당시 구글과 페이스북 등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오픈 인터넷 정신을 외쳤으나 애플은 끝까지 미온적인 반응만 보였다. 구글이 중국 시장에서 물러날때도 애플은 계속 현지 시장에 남았고, 프로젝트 드래곤에 필적할 수준의 중국향 서비스 플랫폼을 알아서 제공해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