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부인이 집을 비운 사이 간단한 요리로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다. 달걀을 몇 개 요리할 생각으로 냉장고에서 달걀을 두어 개 꺼냈고, 프라이팬 위에 달걀을 깨려고 하는 찰나, 초인종이 울렸다. 오른손에 달걀이 들려 있는 것도 모르고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어줬다.

찾아온 사람은 새로 이사 온 이웃 사람이었는데, 식사 준비를 하다가 달걀이 없어서 하나 빌려 달라고 찾아간 것이었다. 마침 문을 열어준 이웃집 주인 아저씨의 손에는 달걀이 하나 쥐어진 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른손에 있던 달걀을 내밀어 줬지만, 잠시 후에 두 사람 모두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요리하는 것도 흔치 않았고, 옆집에 누가 이사를 오는 것도 드물었으며, 한쪽은 달걀 하나를 필요로 했고, 다른 한쪽은 마침 달걀 요리를 하다가 현관을 열어준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이런 우연을 평생 또 한 번 겪을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글쎄’다. 완전히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성공에 작용한 행운을 인정하고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쓴 로버트 H. 프랭크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기막힌 우연의 순간의 예를 언급한 내용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또 겪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필자가 겪은 최고로 기막힌 우연이 두 가지 있다. 짧은 것부터 얘기하자면 두 시간 간격으로 동일한 택시를 탄 것이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종로에서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도착해서 점심 미팅을 했고, 차를 함께 마시면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냈다. 차를 마시기 위해 몇 블록 정도 이동했고, 이런 저런 얘기까지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좀 못 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기 위해 다시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마치 필자를 위한 택시이기라도 한 것처럼 멀지 않은 곳에서 금새 미끄러지듯 다가왔고, 별 생각 없이 탔다. 잠시 인사를 겸한 날씨 얘기를 하다가 둘 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종로에서 타고 왔던 그 택시의 기사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번호판 같은 것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사람을 보고서야 같은 택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택시 기사도 20년 동안 운전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 택시는 필자를 여의도에 내려준 뒤 손님을 태우고 김포공항까지 갔고, 오는 길에 여의도로 가는 손님을 태우고 다시 왔단다. 그리고 손님을 내려주고 난 뒤 바로 앞에서 필자가 탔다는 것이었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운행되고 있는 택시가 얼마나 많은데, 같은 택시를 다시 탄다는 것,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우연이 평생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른 한 가지는 2009년 추석연휴 때부터 그 이듬해에 걸친 일이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고향에는 가지도 못하고, 서울에 머물던 차에 아침부터 비보를 접했다. 평택에서 해군 중사로 근무하던 사촌 매제가 자다가 심장마비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거였다. 겨우 삼십 대 중반이었고, 사병들도 따라올 수 없는 체력을 보유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촌 누이와 아이들은 연휴 전날 마산으로 먼저 갔고, 매제는 당직 근무를 마치고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연휴 첫날 부대에서 일찍 근무를 서야 했던 매제가 나타나지 않아서 사병 몇이 군인아파트로 찾아 갔는데, 잠든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추석 차례상이며 명절 준비에 정신없던 가족들이 바로 연락받기는 했지만, 평택에 있는 장례식장에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던 상황이라 일단 서울에 있는 필자에게 연락했다.

부랴부랴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식사도 거르고 혼자서 조문객을 맞기 위해 장례식을 준비했다. 작지 않은 장례식장이었지만 명절 전후로 장례가 없었는지 장례식장 직원들도 몇몇만 남아서 한가롭게 쉬고 있었고, 음식 준비에도 시간이 꽤 걸릴 듯해서 먼저 가능한 마른 안주거리와 술 그리고 음료부터 받아서 냉장고에 채웠다.

오후 두세 시 무렵부터 군인 간부들이 도착했다. 장례식장이 어수선했는데도 동료 군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향 피우고 절도 하고 함께 자리했다. 저녁이 되자 조문 온 군인들이 더 늘었다. 혼자서 음식을 나르고 상주를 대신해서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술도 권했다. 그리고 한밤이 되어서야 상주와 가족들이 도착했다.

장례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는데, 놀라운 일은 그 몇 개월 뒤에 생겼다.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TV에서 속보가 나왔다. 천안함이 피격되어 침몰됐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그냥 큰 일이 났나 보다 했는데, 자막에 커다랗게 써있는 ‘평택 2함대’라는 글을 본 순간 하마터면 술잔을 놓칠 뻔 할 정도로 놀랐다. 필자가 상주 대신 장례식장에서 맞이했던 조문객들, 느닷없던 한 청춘의 죽음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바로 평택2함대 소속 군인들이었다.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필연이 된다

그 뒤로 몇 번인가 악몽을 꾸어야 했다. 장례식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시커먼 파도가 집어 삼키는 꿈이었다. 천안함은 멀리 서해바다에서 침몰했는데, 꿈에서는 그 군인들과 함께 한 필자도 휩쓸려 시커먼 바닷속으로 잠기는 통에 소스라쳐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동안 뉴스를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그들의 짧은 인생에 필자도 스쳐 지나간 인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고서야 진정됐다. 먼 바다에서 일어난 불상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누군가 사회적으로 꽤 성공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실력, 노력 그리고 ‘운’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운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패를 했을 때는 운이 나빠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얘기하는 반면, 성공에 있어서는 온갖 역경을 극복한 자신의 노력과 실력만이 성공을 가져다 준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건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나에게 행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농담을 반쯤 더 얹어서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고 하기까지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어찌 된 지도 모르게 성공하는 것이다. 시험에서 연필을 굴려 쓴 답이 정답이 된 것과 같다. 무조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조직이나 기업이 뜻하지 않은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것이나 다름없다.

크게 망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빚은 기업들은 모두가 이전에 크게 성공했던 기업들이다. 그런데 왜 성공을 했는지는 모르면서 과거에 성공한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결국에는 승자의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반면에 도저히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기업들이 절치부심(切齒腐心)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실패한 원인들을 찾아서 끝끝내 극복해 내는 경우에 가능한 얘기다.

이럴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당연히 돈이라고 생각들을 하게 된다. 정답이 아니다. 쓰러진 기업에게 돈이라는 수혈이 있으면 바로 회복해서 펄펄 날아갈 것 같지만, 사실 수혈되어야 할 것은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활성이다. 사람도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체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조직도 마찬가지여서 그러고 난 다음에 돈이라는 처방이 도움이 된다. 그러지 못했을 때는 돈은 차라리 약이 아니라 독에 가깝다.

우연(偶然)이 이어지면 인연(因緣)이 되고, 인연(因緣)이 이어지면 필연(必然)이 되지만, 우연도 인연도 필연도 끊어지면 악연(惡緣)이 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오늘 한 번 커뮤니케이션하고 말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을 두고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나와 조직의 발전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때로는 진심으로 외치는데도 공허한 메아리가 오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음이나 그 다음에는 바뀐다. 일이란 사람과 부대끼며 맺어진 관계가 쌓여서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사람마다 방식은 다 다르다. 그래서 어렵다. 성공에 이르는 완벽한 방법은 사람을 어떻게 얻느냐에 달려있다. 정답(正答)은 없지만 해답(解答)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