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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발포 맥주에 얽힌 단상
   

2017년 봄 무렵부터 희한한 맥주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인들이 SNS를 통해 사진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맥주인 듯 맥주 같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인 듯 술 같지 않은 술이었다. 호기심에 한두 번 6개들이 묶음을 사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발포주를 보고 있자니 잊고 있었던 예전의 쓰라린 기억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친근한 모습의 녹색 코끼리를 캐릭터로 내세운 이 발포주는 우리라나 주류 업계의 대표주자인 하이트진로에서 출시해서 히트했다. 맛과 알코올 도수 면에서는 기존의 맥주와 비슷한데, 무엇보다도 가격은 한 캔에 껌 한 통 값 정도인 800원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배춧잎 한 장이면 무려 12캔을 살 수 있고, 6개 들이 두 묶음을 살 수 있기에 가성비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

그러자 2018년 중반기부터는 경쟁사인 오비맥주도 발포주를 출시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만큼, 기존 맥주시장에서의 경쟁이 발포주 시장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사먹는 사람들이야 그러잖아도 저렴한 발포맥주가 나와서 좋은데, 경쟁사도 뛰어들어 그 종류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니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과연 맥주업계의 두 공룡 기업들은 발포주 시장이 커지는 것을 좋아할까? 분명 고육지책(苦肉之策)임에 틀림없다. 한 캔에 이삼천원씩은 받을 수 있는 기존 맥주를 많이 팔아야 좋을 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제 살 깎아 먹는 발포주 시장을 그냥 보고 있기도 속 쓰릴 것은 분명하다.

 

가짜 휘발유는 단속하면서, 가짜 맥주(?)는 그냥 두나?

발포주란 주류의 제조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주액에 함유되어 있다가 병마개를 따면 거품이 나오는 술 종류를 말한다. 발포주는 엄밀히 따지면 맥주가 아니다. 현행 주세법상 맥주는 주원료인 맥아가 10% 이상 함유되어야 맥주로 불린다. 국산 맥주의 대부분은 맥아를 70% 이상 함유하고 있는데,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10% 미만이다.

맥아 함량을 현저히 낮췄기 때문에, 일반 맥주에 비해 출고가를 절반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발포주는 주세법상 기타 주류에 해당되기 때문에 주세율이 30%밖에 적용되지 않는다. 맥주의 72%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그래서 만원에 12캔이라는 무시무시한 가성비의 공격력을 갖출 수 있었다.

물론 호불호는 갈린다. 맥아 함량이 적기 때문에 밍밍하다는 불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게 좋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가격 앞에서는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요즈음, 발포 맥주는 무섭게 성장해서 출시한 지 겨우 1년 만에 2억캔이 넘게 팔리는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일 발포 맥주를 하이트가 출시하지 않고, 다른 양조업자가 만들어서 판매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지금 주류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기업은 하이트와 오비다. 이런 업계 수위권을 제치고 다른 양조업체에서 그것도 이름 없는 소규모 기업에서 발포주를 개발해서,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기존의 맥주 시장을 야금야금 침범해 왔다면 두 기업은 어떤 스탠스를 취했을까?

맥주는 수입이든 국산이든 한 캔당 제조원가에 주세 72%와 이 주세의 30%만큼의 교육세가 붙는다. 그래서 국산맥주는 제품원가, 판관비 및 예상이윤이라는 합에 주세, 교육세 및 부가세가 붙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반면에 수입산은 수입신고가와 관세의 합에 주세, 교육세, 부가세가 붙는데, 당연히 국산 맥주가 불리한 형국이다.

그래서 하이트가 취한 방법이 발포주를 개발에 훨씬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 것인데, 맥주의 알코올과 맛을 흉내 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세금을 혁신적으로 줄인 유사 맥주 즉 가짜 맥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녹스와 발포주, 비슷한 개념이지만 주체가 달라

발포주 얘기를 지금까지 장황하게 한 것은 사실 예전에 필자가 근무했던 곳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칼럼을 읽어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국내에서 가짜 휘발유로 법적으로 분류되어 끝내 정리되고 말았던 비운의 제품이 있었다. 2002년부터 시판에 들어갔고, 시판 시작 1년 만에 전국에 72개의 주유소 형태의 전문판매점을 오픈하면서 그 시장을 무섭게 늘려갔던 제품이었다.

당시에는 걸프전 등의 여파로 인해서 1000원에 미치지 못하던 휘발유 값이 갑자기 2000원에 육박하면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특히나 차를 이용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더한 고통의 시절이었다. 그때 수직으로 상승했던 휘발유 값이 그 뒤로는 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1천하고도 몇백원의 가격으로 고정이 됐다. 지금은 사람들이 예전에 휘발유 1리터당 800~900원 하던 때도 있었다고 하면 케케묵은 얘기라고 치부한다.

우리나라처럼 국토나 인구에 과분하게 대형 정유사들이 포진해서 원유를 막대하게 수입해 오는 나라도 드물다.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쓰고도 남을 만큼의 휘발유를 매년 생산해 내기에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도 해마다 휘발유를 엄청나게 수출하는 국가다.

원유를 정제하면 250가지 이상의 석유화학물질로 나뉜다. 이 중에서 가벼운 십여 가지 물질과 또 다른 석유화학물질인 MTBE라는 것을 혼합해 휘발유로 만든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라는 신기한 물질이 똑 떨어지는 것으로 많이들 오해하지만 휘발유도 섞어 만든 물질이다. 그 십여 가지 물질들 바로 아래 등급의 물질, 즉 흔히 신나 같은 용제라고 불리는 솔벤트류는 엄밀히 법적으로는 소각해서 없애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로 유통이 되곤 했다.

이런 가벼운 물질에 알코올 등의 석유화학물질을 혼합하면 휘발유 그 이상의 성능이 나오면서도 엔진의 기름때를 제거해주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세녹스다. 당시 담당 부처인 환경부와 행정안전부에 수없이 질의하고 찾아갔고 인접 부처인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끊임없는 문의를 통해 탄생됐다.

휘발유라면 특소세가 붙기에 이러한 과도한 세금도 피하고, 대기오염 물질의 획기적인 저감과 함께 엔진 세정 등의 여러 효과를 가진 첨가제로 출시됐다. 어차피 남아돌고 버려야 하는 솔벤트류를 재활용해 저렴한 알코올류의 성분을 보강해 기존의 연료에 첨가해 사용하는 제품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맥주에 발포주라면, 휘발유에 세녹스로 대입되는 콘셉트였다. 그런데 발포주와 세녹스의 차이점이라면 발포주는 인기리에 판매되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그 영역을 넓혀 나가는 반면, 세녹스는 출시된 지 몇 개월 만에 검찰에 고발되었고,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깜짝 쇼를 펼쳤으나, 정부부처를 동원한 힘 있는 세력들의 강공으로 당시 석유사업법, 대기환경보전법, 조세 관련법 등 무려 세 개의 법규들이 한꺼번에 개정되면서 결국 사업은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사실 맥주 회사들이 발포주를 만들어 판매한다면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시장을 스스로 갉아 먹을 뿐이지만,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가격이 아주 저렴한 발포주를 들고 나와서, 인기를 끌면서 맥주시장을 잠식해 들어간다면 맥주 회사들이 두 손 놓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녹스와 같은 제품은 정유사들이 따로 챙겨 놓은 밥그릇이나 마찬가지다. 지구상에서 화석 연료가 점점 고갈되어 가는데, 가용한 원유가 줄어들면 휘발유의 품질등급을 살짝 낮춰서 세녹스가 쓰고자 했던 가벼운 석유화학물질들을 휘발유화해서 사용할 계획이다. 필요에 따라서 그들이 확장해 나갈 수도 있는 시장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그야말로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1심에서 승소할 줄은 세상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 짧은 판매 기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그렇게 깊게 각인될 것도 예상 못했다. 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세녹스는 당시 회사에 근무하던 사람들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부 및 산하 화학시험연구원, 행정안전부 및 소방법 담당 공무원 그리고 심지어 적대시했던 산업자원부 공무원들과도 지겨울 만큼의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하나하나 세팅되었다. 그렇게 해서 주유소를 닮은 위험물저장취급소가 탄생했고, 시험 성적서가 나왔고, 전국에서 열화와 같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또 한 가지가 있다. 만일 차에 문제가 있었다면 자동차업계에서 한 마디쯤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쪽에서는 그 어떤 코멘트도 없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8.22  0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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