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75-71.4-2.8. 이 숫자는 인터넷 프로토콜이나 암호가 아니다. 실패와 관련된 숫자들이다. 97%는 사람이 새로운 행동을 하면 실패할 확률이고, 75%는 미국 벤처기업들이 투자받은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망하는 비율이며, 71.4%는 우리나라 자영업에서 창업 후 5년 안에 폐업한 비율이다. 마지막 숫자 2.8회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창업에 도전한 횟수다.

실패. 듣기만 해도 두려운 단어다. 그러나 실패를 검증해서 독점자산을 쌓은 사람은 성공으로 보상받지만 과거의 실패를 돌아보지 않으면 루저(Loser)로 전락할 뿐이다. 사자는 배부를 때는 돼지처럼 행동하지만 배가 고파야 비로소 사자의 본성이 살아난다. 배고파본 사람이 오히려 참 인생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실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찌 내 실험을 헛되이 지우려고 하는가.

세계적인 성공 사례를 보자.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진 중국의 e-커머스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 회장. 그는 대학입시에 두 번 낙방하고 사범대 영어강사로 일하며 월수입이 12달러에 불과했던 쓰린 과거가 있다. 1994년에 처음 창업한 통번역회사는 얼마 안 가 실패했고, 인터넷 전화번호부(Yellow Page) 사업 또한 연이어 실패한다. 그는 이러한 실패 경험을 밑천으로 1999년 몇몇 친구들과 지금의 알리바바를 창업해서 오늘날 IT기업 중 구글에 버금가는 부자가 됐다.

세계적인 기업가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전 회장인 조동민. 그는 20대 후반, 누나에게 1200만원을 빌려서 오리고기집을 냈다가 6개월 만에 실패하고 이런저런 업종을 전전했다. 연이은 실패에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 당시 해외취업이 용이했던 병아리 감별사로 호주에 이민 가려고까지 했다가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치킨공장으로 성공했다.

우리는 창업하기 위해 늘 성공 사례를 참고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만일 그 사람과 똑같이 해서 나도 성공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실패하겠는가? 때로는 성공 사례가 필요한 학습 과정이지만 성공의 기준은 타인이 정해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던가?

어떤 이는 성공하기 위해 사주를 본다. 독자들도 만약 사주를 본다면 다음 사례를 참고하면 좋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과 영화배우 실버스타 스탤론은 1946년 7월 6일,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지만 가는 길은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도 육상 황제 칼 루이스와 1961년 7월 1일 같은 날 태어났지만 길도 달랐고, 더욱이 한 사람은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처럼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도 방향이 다르고 삶도 큰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목적한 바를 이룸’이다. 여기서 목적이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말한다. 여기서 다시 실현이란 ‘꿈, 기대 따위를 실제로 이룸’이다. 종합해서 정리하면 성공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특정해서 그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성공하려면 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이른바 정향(定向)이 필요한 것이지 남들이 가는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방향을 정하기 위해 남의 성공보다 자신의 걸어온 실패를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례 하나를 더 보자.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 교수인 요하네스 하우스호퍼(Johannes Haushofer)는 최근 자신의 ‘실패이력서’를 써서 공개했다. 입학하지 못한 대학, 장학금을 받지 못해 힘들게 다녀야 했던 기록, 학계에서 소외당한 경험 등.

그런데 자신의 실패이력서를 관찰해 보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던, 이른바 성공에 취해 있던 시기가 의외로 짧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결론으로만 보면 실패했지만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었고, 그 시간들이 가장 역동적이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실제로 성공한 기간은 대단히 짧았고 가장 정체된 시간들이었다. 따라서 실패는 예기치 못한 환경의 변화나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앞으로 나아가려면 실패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오랫동안 안전하게 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과거를 되새긴다. 프로기사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바둑 천재들도 끝나자마자 바로 복기를 한다. 패착을 다시 둬보면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사고 운전자들은 대부분 백미러를 잘 본다. 뒷차의 추돌까지 예방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앞으로 안전하게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실패학’이란 학문을 처음 도입한 일본 학자는 실패란 ‘인간이 관여해 행한 하나의 행위가 처음에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방향이 잘못됐거나 방법이 달라서 실패한 것이지 자신이 무능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남의 성공 사례를 배우기보다 자신의 실패이력서를 써서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졌다.

실패 경험에서 제대로 배우면 그 문제점을 자신이 알기 때문에 반복된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점, 향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는 순발력이 생긴다는 점 등은 어느 성공 사례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한 노하우다.

이렇듯 실패에서 배워보려는 시도는 선진국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일본에는 ‘팔기회’와 ‘실패지식활용연구회’가 유명하다. 팔기회가 기업가 모임이라면 실패지식활용연구회는 학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시장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실패를 연구해서 귀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일콘(FailCon) 즉, ‘실패 콘퍼런스’가 자주 열린다. 이 자리에는 벤처 사업가들이 모여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토론을 벌인다. 실패학(Failure Study) 권위자인 로버트 맥메스의 주창으로 결성된 이 콘퍼런스가 지금은 일본·이란·스페인 등으로 확산됐다. 페일콘의 모토는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만들자’다. 신제품 가운데 90%가 실패하는 바로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모임을 결성했다고 한다.

익히 알려졌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대상 1순위로 두 번 실패한 창업가를 꼽는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미국에서 복권 상금을 획득한 사람 중 무려 44%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액을 탕진한다. 실패 경험이 아닌 운을 밑천으로 얻은 부는 이렇듯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는 남들의 성공모델을 좇기보다 자신의 실패이력서를 써보고 그 원인을 찾아 가야 할 길에 써 먹어야 한다. 그 돌아가야 할 지점 즉 ‘복원 지점’에서 왔던 방향을 쳐다보면 실수한 일들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삼거리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중간에서 헤매는 것보다 안전하고 빠르다는 건 자명하다. 남이 아닌 내가 왔던 길이고,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남이 아닌 내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이란 게 있다. 바라던 핵심요소가 쓰레기통에 마구 집어넣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가 우연하게 재결합되어 나온 결정을 말한다. 우리가 쓸모없다고 버린 실패 이력이 어느 날 새롭게 조명돼서 핵심요인으로 작동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성공해야 한다면 필자는 ‘성공 후 지난날의 고난을 추억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 보기 때문에 실패의 고난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렵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성공할 자유가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