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방문한 종각 지하상가 모습. 사진=이코노믹 리뷰

[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남편 퇴직금으로 권리금 3억5000여만 원 내고 지하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갑작스런 시의 통보로 인해 막막하다, 시설관리도 상인들이 비용을 투자한 것이고 권리금도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무조건 시 소유물이라고 양수양도를 금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 종각역 지하상가에서 3년째 속옷매장을 운영 중인 차수연 씨 -

“현재 지하상가 중에 장사가 잘 돼 권리금이 있는 점포는 극소수인 상황에서 상인들끼리 양도가 가능해야지 장사가 안되는 사람들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작정 정부가 권리금을 막는다면 오히려 암암리에 불법거래가 생겨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양수양도를 막는 건 시가 불법을 조장하는 것과 진배없다.” - 종각역 지하상가 내 신발가게를 운영 중인 김선영 씨 -

서울시가 을지로와 명동, 강남, 영등포 등 지하도상가 점포 2788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하면서 서울시와 상인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이코노믹 리뷰>가 찾은 서울 종각 지하도상가는 불경기와 최저임금제 시행 등으로 상권이 악화된 가운데 ‘임차권 양수·양도’ 금지 직격탄을 맞으며 암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 7월 체감 및 8월 전망‘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7월 체감경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2.5로 지난달 대비 9.7포인트가 하락했다. BSI는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매출과 영업이익, 자금 사정 등을 구분한 체감경기도 지난달보다 낮아졌다. 그만큼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51.9와 51.6으로 지난달보다 각각 9.9포인트, 10.2포인트 떨어졌다. 자금 사정도 8포인트 하락해 55.2에 그쳤다. 원재료 조달시장도 6.8포인트 내린 83.9였다. 체감경기가 악화된 이유로는 ▲경기 침체(59.9%) ▲계절적 요인(39.9%) ▲정부 정책 및 규제(4.3%) ▲상권 침체(3.9%) 등을 꼽았다.

상인들의 체감경기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 가운데 서울시 지하도상가 상인들은 막다른 길에 내몰렸다. 서울시가 지하도상가 임차권 양수·양도를 본격적으로 금지하면 권리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임차권 거래가 금지되면서 상인들이 임차권을 사고 팔며 관행적으로 주고 받았던 권리금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종각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우리나라에 권리금이 없는 점포도 없고 지하상가만 해도 다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몇 억원씩 권리금을 냈다”이라며 “돈이 없어서 지하상가로 들어온 것인데 계약 만료 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건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피력했다.

권리금은 기존 상인이 개척해놓은 ‘영업권’에 대한 보상금 개념으로 국내에만 존재한다. 상가건물에서 영업하거나 하려는 사람이 비품이나 영업 노하우, 위치 등에 따른 영업상이점을 양도하거나 이를 이용하게 할 때 보증금과 차임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이다. 권리금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지난 2015년 9월로 이전에는 임차인 간 금전 거래에 불과해 임대인의 방해행위로 권리금을 받지 못해도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했지만 이후로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이를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최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하는 임대차 보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와 관련해 임대료 인상제한과 함께 권리금 보장도 필요하다고 역설을 했다. 박 시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행산업과 유흥주점 등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이 낮은 경우를 제외한 모든 임대차 계약이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대규모 점포 내에 분양된 점포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임대매장의 업주들은 권리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이분들의 권리금도 당연히 보호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서울시가 서울시 소유의 지하도상가 권리금 거래 금지조치를 내놓은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중 작대라는 비판도 일었다.

익명을 요구한 상가 컨설팅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 권리금 보호 확대를 외치면서 오히려 시 소유의 지하상가에 대해서는 상위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권리금을 돌려받을 길을 없애버렸다”면서  “사실상 지하상가는 민간이 기부채납하고 상인들이 상권형성에 큰 역할을 한 만큼 서울시가 사실상 기여한 부분은 지극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하는 건 임대인 횡포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에 지하상가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1970년대이다. 당시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됐다. 서울시는 이후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를 허용하는 조항이 포함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20년간 허용된 임차권 양수·양도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린 것이다.

정부 역시 서울시가 지하상가에 대해 권리금을 금지한 부분에 대해 실정에 맞지 않는 행정조치란 의견을 나타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상가 임대차 보호법에서 국공유지에 대한 권리금은 보호가 제외된다는 조항이 있다”면서  “서울시가 임대인 입장이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통해 권리금 보호 의무에서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지만 당초 권리금이 생기기 이전에 규제를 했어야 했던 부분으로 이미 권리금이 생겨버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하는 것은 바람직한 업무행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10조5항에 따르면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이 국유재산법에 따른 국유재산 또는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따른 공유재산인 경우 권리금 적용이 제외된다.

일각에서 임차인의 충격을 최소하 하기 위한 보상조치 등이 제안됐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임차권 양수·양도 금지로 인한 상인들의 권리금 피해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상인들이 각기 이야기하는 권리금의 규모가 생각보다 높고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태조사가 어렵고 설령 조사를 한다고 해도 피해액의 규모가 맞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며 “상인들과 서울시 간 갈등이 좁혀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례개정안 시행으로 상인들의 권리금 회수가 불가능해지고 이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서울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는 단 한 번도 지하상가 양수양도시 권리금을 허가한 적이 없다”며 “이미 지하도 상가 임차권 양수와 양도를 금지한다는 점이 명시된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간 만큼 조례대로 진행을 할 것이며 (임차권 양도·양수시 발생하는 권리금 부분은)사측인 거래에서 발생한 부분이기 때문에 시가 지하상인들에게 보상 등을 해줄 의무나 이유가 전혀 없다.” 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