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semble 16-3, 79.5×96.5㎝, Korean Traditional paper, Natural dyes, 2016

박철 작가의 경우 한지는 작품에서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자체의 섬유질과 색상을 뚜렷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고가(古家)의 문짝과 와당, 떡살, 멍석 등을 떠받쳐주고, 몰딩에 찍힌 모양을 묵묵히 받아내는 작품의 버팀목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음각의 이미지를 양각으로 변화시키고 형상의 산파역할을 하는 것 또한 닥종이이다.

한지(Korean Paper, Hanji)의 텍스추어는 부조적으로 처리된 떡살, 멍석의 형체와 함께 우리의 문화적, 정신적 숨결과 잇대어지면서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것으로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근래의 작품은 한층 완성도를 높이면서 예전보다 단색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화면의 표면감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표면감은 한지의 물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표면의 균질성은 씨줄과 날줄로 구성된 멍석의 짜임에서 오는 것으로 주물에서 캐스팅된 것이다.

▲ ‘2016서울아트 쇼’출품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우리시대 한지화가 박철

박철(PARK CHUL)작가가 생활의 도구에 쓰였던 멍석에 주목한 것은 그것이 지닌 무형의 가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멍석은 사회의 발달과 함께 쇠퇴해갔고 우리의 생활권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작가(ARTIST PARK CHUL)는 그것의 조형성에 주목함으로서 한국인과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온 멍석을 재인식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박철의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골의 농가 혹은 민예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시대 한지화가' 박철(서양화가 박철,박철 화백,朴哲)작가는 몰드에서 떠낸 이미지 위에 한지를 바르고 두드려 이것이 완전히 마른 후 채색을 더함으로써 독특한 텍스추어를 만들어냈다. 작업과정은 이전과 마찬가지이지만 그간 형상을 근간으로 하던 데서 평면과 물질성으로의 이동이 포착된다.

지금까지 보여 온 작품 기조는 유지하고 있지만 물질성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한지부조회화 작업을 섣불리 평면으로의 회귀로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잔잔한 표면위에는 고서의 이미지와 떡살의 이미지가 간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여전히 ‘옛 것의 현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성록, 미술평론가,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