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Middle East Ey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과 터키의 무역전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맞불 상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터키 금융시장은 터키 정부의 외환거래 제한 확대 등의 긴급조치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었다.

터키 정부는 15일(현지시간) 미국 목사의 가택 연금을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의 터키 철강 알루미늄 제품 관세 인상에 대한 보복 의미로 미국 수입 제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전격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이날 미국에서 수입되는 승용차·주류·담배 등 품목에 대한 추가관세를 2배 인상하는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서명한 관보에 따르면 새로운 관세율은 자동차 120%, 주류 140%, 담배 및 화장품 60%, 쌀 50% 등이다.

푸아트 오크타이 터키 부통령은 이날 "터키 정부가 부과하기로 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는 지난 10일 미국 정부가 터키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2배 인상한 데 대한 보복"임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 관세 인상은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 해 오던 상호 호혜적인 관세 부과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불의에 맞서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터키 미국산 불매운동 등 항전의지 계속 확산 

미국과 터키는 터키가 테러조직 지원 등의 혐의로 구속 중인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의 석방 문제, 시리아 사태 해법 차이, 이란 제재에 대한 동참 문제 등으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브런슨 목사는 2016년 터키 군부 쿠데타 베후 조직을 지원한 혐의로 2년 가까이 수감돼 있다가 최근부터는 가택 연금 생활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브런슨 목사 석방 등을 압박하면서 터키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배 인상하기로 결정하자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는 사태를 빚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4일 미국 전자제품 불매 방침을 밝히며 대미 강경 자세를 표명하며 갈등이 폭발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아이폰 등 미국산 전자제품 불매 운동과 함께, 애플 아이폰 대신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캠페인을 벌이겠다"며 강경 대응했다.  터키 항공과 터키 텔레콤 등 주요 기업들도 "미국 매체에 광고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밝혔다.

美도 강경, 브런슨 목사 석방해도 터키 관세 강행, 후속 보복조치 촉각

미국 정부는 터키의 이번 추가 관세 전격 인상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이번 터키 추가관세 인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 무역조치에 모아지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브라운 목사를 석방해도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철회는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고 터키가 미국산 제품에 고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한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비판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터키에 관세를 부과한 것은 "국가안보 차원의 조치"라며 터키 경제의 위기는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이지, 미국이 취한 조치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트윗을 통해 외국 땅에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시험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 터키 리라화 가치는 올들어 40% 이상 하락했다. 출처= news.sky.com

터키 금융시장, 외환거래 제한 · 카타르 투자 발표로 일단 진정세    

터키 금융시장은 리라화의 달러 환율이 최근 이틀간 5.5%나 올라 1달러당 7.2리라까지 치솟았으나 이날 터키 금융 당국이 외환 거래 제한이라는 긴급조치로 사실상 혼수상태(평가유예상태)에 빠져들면서 환율 폭등양상이 멈췄다.

터키 중앙은행과 규제 당국은 리라화 안정을 위해 외환 거래 제한을 강화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13일 외환 스와프 거래 한도를 은행 자본금의 50%로 축소했으나 이날 이를 다시 25%까지 축소했다.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할 때 고정환율을 적용하고 일부 위험 부채를 상환 가능 부채로 조정하는 것을 허용하며 운신의 폭을 넓혔다. 당국은 공매도 단속에 나섰으며 개인 대출을 줄이고 신용카드 할부에 한도를 두는 등 가계 소비 억제에도 나섰다.

또 주변 동맹국인 카타르의 직접 투자 발표도 터키 금융시장 진정세에 큰 역할을 했다.  이브라임 칼린 터키 대통령궁 대변인은 “터키의 강력한 동맹국인 카타르가 150억 달러(17조원)의 직접 투자를 약속했다”면서 “터키의 금융 시장과 은행에 신속하게 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터키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총 108억 8000만 달러인데, 카타르의 지원 자금은 이를 뛰어넘는 규모다. 카타르 정부 관계자는 “터키 경제의 강점을 충분히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금융 당국의 외환 거래 제한 확대로  리리화 가치는 장중 한때 전일보다 약 6% 급등한 달러당 5.883 리라를 기록했다. 

터키사태로 중국·인도 등 외화부채 취약 신흥국 위기론 확산

미국과 터키간 무역 갈등 고조로 신흥국 통화 위기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 터키의 신용부도스와프 CDS 프리미엄은 하루만에 30% 가까이 치솟으면서 2008년 금융위기 수준까지 높아졌다.

중국 위안화도 최근 3개월 동안 7% 넘게 하락하는 가운데 경제 지표마저 부진하게 나오면서 하락폭을 더해가고 있는데다, 터키 상황으로 인해 추가 하락이 전망되고 있다.

통화 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들도 방어 전략으로 금리 인상과 은행 규제 정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연 45%로 끌어올렸다. 지난 6월 IMF로부터 50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으면서 불안한 시장을 잠재웠지만 리라화 폭락 사태가 다시 전이되면서 올 들어서만 네번째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인상으로 단기간 시장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되고 있다며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인도네시아도 1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5.5%로 상향 조정하면서 시장 불안을 방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4개월 만에 3차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루피화 약세를 소폭 저지했지만 이 역시 단기적 방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영국 일간지 익스프레스(Express)는 리라화 폭락을 시작으로  외화부채 취약 5개국의 위기가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외화부채 취약 5개국이란 모건스탠리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긴축 재정에 타격을 입을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공, 브라질 신흥국을 지정해 불렀던 용어인데, 터키 충격으로 남미 국가들을 비롯해,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국 시장에도 여파가 확산될 것이라는 것이다.

▲ 터기발 악재가 남미와 아시아 신흥국들에게까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출처= penMarkets

IIF, 터키 문제 리라화 가치 문제 아닌 대외 관련 구조적 문제

국제금융협회(IIF)도 터키발(發) 금융불안이 선진국 통화정책 정상화와 맞물려 신흥국 금융위기를 촉발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IIF는 16일 '터키 외환당국 시장조치 수단 및 대응 여력' 보고서를 통해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긴축 기조로 선회를 예고하는 가운데 터키를 시작으로, 신흥국의 금융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신흥국의 총부채는 2008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143%에서 지난해 211%로 크게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신흥국 공공부문 부채 평균이 1980년 이후 최대치인 GDP대비 50%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IIF는 "한국, 대만, 태국 등이 1990년대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전환에 기반해 기초 경제여건의 건전성을 확보했음”을 지적하고 "앞으로 통화스와프 체결 등 각국 간 공조 확대를 통해 금융위기 제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IIF는 터키당국의 시장안정대책이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으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시중은행의 해외자본 간 거래를 은행 지분의 25%까지 제한해 자본을 통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시중은행의 신규 통화거래와 거래 갱신이 어려워져 차입비용을 상승시켜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금융부문을 취약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정책도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높이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JP모건은 리라화 가치가 회복해도 정부개입 부작용으로 투자자 신뢰를 잃어 향후 터키의 자본유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높은 외화부채와 경상수지 적자 등 경제적 취약성은 단기 처방으로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IIF는 "터키 문제가 단지 리라화 가치의 문제가 아닌 대외 관련 구조적 문제"라면서 "빠른 시간 내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