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지난 5월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치료를 받던 A 씨가 알레르기성 쇼크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후 한의원의 ‘전문의약품 응급키트’ 도입을 두고 양의학계와 한의학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 지난 5월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에서 봉침치료를 받던 A 씨가 알레르기성 쇼크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후 한의원의 ‘전문의약품 응급키트’ 도입을 두고 양의학계와 한의학계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출처=이미지투데이

지난 5월 허리통증으로 한의원을 찾은 A 씨는 B 씨의 제안을 받고 봉침치료를 받다가 쇼크반응을 일으켰다. 이에 B 씨는 인근 가정의학과 의사를 불러 응급치료를 시도하고 차도가 없자 119구급 대를 불러 A 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 씨는 6월 초 끝내 사망했다.

독을 이용하는 봉침시술은 적정량을 투여하는 것이 핵심으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의원에서는 벌침을 몸에 직접 놓는 무면허 봉침시술과 달리 한의원에서 하는 시술은 살아있는 벌에게서 채취한 독을 적정 농도로 희석해 투여하는 방법이다. 이는 같은 양의 벌독을 주입해도 체질과 건강상태에 따라 반응이 달라 사전 검사가 필수다. A 씨 또한 사전검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 씨의 사망 원인으로 ‘아나필락시스 쇼크’를 고려하고 있다. 과민성 충격으로 불리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특정 항원에 접촉한 후 수 분~수 시간 내에 발생하는 쇼크 증상이다. 페니실린의 1000배에 이를 정도로 소염기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진 봉침도 결국 독이기 때문에 체질에 따라 두드러기,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30분 이내로 사라지지만 증상이 심할 땐 에피네프린 등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대한의사협회는 봉침시술 사고와 관련 “한의계에서는 정제한 벌의 독을 경혈에 주입해 인체의 면역기능을 활성화함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사실 봉침을 비롯한 한의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든 약침은 의약품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안전성과 효과가 전혀 검증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의료선진국인 미국은 응급구조사가 ‘에피네프린’ 등 응급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고 영국은 ‘에피네프린’을 포함한 20~30여종의 약물 투여가 가능하다”면서 “우리나라는 양의학계의 무조건 반대에 부딪혀 의료인인 한의사가 봉독 이상반응(아나필락시스 쇼크)에 필요한 ‘에피네프린’과 항히스타민 등의 응급상황 대비 의약품을 단지 ‘전문의약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경혈 표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출처=이미지투데이

또 다른 양의학 계열인 대한의원협회는 성명서에서 “봉침 아나필락시스 사건에 대해 한방은 에피네프린 운운하지 말고 북소리나 울려라”면서 “봉침에 의해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해 환자에게 피해를 줬다면, 학문의 한계를 인정하고 봉침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의료인의 자세일 것이다”고 한의학계를 비판했다.

의원협회는 ‘북소리나 울려라’고 주장한 이유로 지난 2015년 경희대학교 한의대 연구진이 벌에 쏘인 후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했을 때 북소리가 효과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연구는 북소리가 급성 쇼크사와 저혈압의 원인인 히스타민의 분비를 억제하고, 심장박동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혈압, 심장박동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원협회는 또 “동의보감에 아나필락시스에 대한 내용이 있는가? 설령 에피네프린, 항히스타민제가 있다고 가정한다해도, 투여용량이나 방법을 제대로 아는가? 아나필락시스가 단순히 에피네프린, 항히스타민제만 있다고 치료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반문하고 싶다”면서 “배운 적도, 사용한 적도, 투여용량이나 투여방법조차 모르는 현대의학 의약품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마루타 같은 실험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며, 한방이라는 학문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의사협회는 “국가로부터 면허를 부여받은 의료인으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면서 “언제까지 양방(서양의학)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반대에 부딪혀 위급한 상황에 빠진 환자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한의사협회는 또 “한의의료기관에서 에프네프린과 같은 응급의약품을 구비해 유사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조항이 없는 상태이므로,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구체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고 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