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ARTIST PARK CHUL)은 일찍이 빼어난 손맛으로 유명했다. 특히 그의 생명력 넘치는 인물초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무릎을 쳤다. 인물의 생김새와 표정은 물론, 속심을 훔치는 기가 막힌 눈썰미와 손맛은 그를 당대 장안 최고의 인물화가로 손꼽기에 충분했다.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기막힌 드로잉과 인간적인 소묘술(素描術)을 자랑하던 박철(한지부조회화)은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지 않기 시작했다. 이른바 붓을 꺾거나 버린 것이 아니라, 작업의 주요대상과 그 대상을 담아내는 방식에 있어 일대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한지작가 박철(서양화가 박철,박철 화백,朴哲,박철 작가, Hanji, Korean Paper)이 회화의 오래된 전통을 거부했다기보다는 창작의 모티프, 즉 동인(動因)으로서 '전통'이라고 하는 또 다른, 다소 광범위한 습속(習俗), 혹은 이를 추체험(追體驗)할 수 있는 추상적인 관심과 방식으로 '이행'하려한 것으로 이해된다.
기존에 관심을 두었던 인물이라든가 삶의 풍경 등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을 전통의 회화방식으로 삼투(滲透)하거나 상사(相似)하는 매력적인 고유작법으로부터 벗어나 ‘전통’의 시간성과 공간성 나아가 그것이 지닌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동시대적으로 환기시켜보려는 나름의 지성적(知性的) 판단과 몸짓이었다.
이러한 관심의 전환은 무엇보다 ‘전통’, 특히 쉽게 버려지고 잊히는 생활 속 '전통 오브제'들에 대한 아쉬움과 관심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억의 저편으로부터 끝임 없이 밀려오고 묻어나는 삶의 흔적, 자연과 전통의 순수함과 질박함 등에 대한 경험과 인식, 이해 그리고 그로부터 길어 올린 자연스런 기운과 시적 영감을 거부할 수 없었음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께 집안과 마을의 대소사, 혹은 애경사가 있을 때면 으레 늘 그 현장에 함께 했던 멍석이라든가, 삶의 향기 가득한 떡판 등으로부터 일상과 함께했던 창호(窓戶), 음악, 또는 악기 등이 작업의 주요 직간접적 모티프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글=박천남/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