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터키 리라화가 폭락하면서 터키 은행에 대출해준 유럽권 은행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터키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등의 조언이 나왔을 만큼 터키 외환시장은 불안하다. 고물가 저성장, 대규모 외채, 미국과 외교마찰 등 4중고를 겪고 있는 터키와 터키의 리라가 제자리를 찾아갈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터키 정부는 벼랑끝에 몰렸지만 금리 인상과 경제개혁 등 근본 대책은 쓰지 않고 있다.
달러화에 대한 리라 가치는 10일(현지시각) 하루에만 15.88% 폭락했다. 달러화에 대란 리가 환율은 1달러 당 6.4323리라를 기록했다. 장중 23% 하락하기도 했다. 이로써 달러화에 대한 리라화 가치는 올들어 70% 이상 하락했다. 이날 리라화 폭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의 관세를 각각 20%, 50% 올린 것이 리라화 폭락의 도화선이 됐다.
이처럼 리라화 환율이 계속 오르면서 터키의 대외 채무 지불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리라화 급락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은 터키 은행들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는 터키의 야피 크레디 지분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스페인 BBVA는 터키 가란티 뱅크 지분 약 50%를 보유하고 있다.
바로 이런 유럽중앙은행 감독기구가 스페인 BBVA 등의 은행에 터키 발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다.특히 스페인의 BBVA는 2017년 총 세전이익의 3분의 1을 터키에서 거둔 것이기에 위험성은 대단히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일은행감독기구(SSM)는 아직 위태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유로존 은행 중에서 터키 노출도가 높은 스페인의 BBVA,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프랑스의 BNP파리바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자료에 따르면 유로존은 터키에 총 1500억달러의 대출을 제공했다고 CNBC는 보도했다. 2006년 360억달러보다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유로존의 터키 의존도이자 노출위험도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 중 BBVA를 위시한 스페인 은행권의 대출이 833억달러로 가장 크다. 프랑스 은행권은 384억달러, 이탈리아 은행권은 170억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밖에 일본 은행이 140억달러, 영국은행 192억달러, 미국은행 180억달러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때 자국의 순이자마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유로존 은행권이, 수익성 높은 터키에 눈을 돌린 결과로 분석된다. 터키 경제는 지난해 크게 성장했는데 이들 외국 은행이 자본의 건설 투자가 큰 영향을 준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런 노출도는 유로존 은행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유니크레디트는 5.6%, BBVA는 5.5%, 프랑스 BNP파리바는 4.3% 하락했다. 도이체방크 역시 5.3%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 역시 하락해, 1달러 당 0.8762유로를 기록했다.
터키 리라화 폭락은 경제 기초여건의 부실에다 미국과 벌이는 외교갈등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터키는 두 자리 숫자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도 막대하다. 지난 7월 물가는 연율 15.85%로 14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터키의 대외 부채는 3월 말 기준 4666억7천만달러로 GDP 대비 53%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4분의 1은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 부채다.
영국의 경제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라화 폭락 저지를 위해 터키 정부가 쓸 수 있는 옵션으로 금리 인상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미국과 협상 타결, 자본통제 등을 꼽았다.
미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인 목사 구금을 이유로 제재를 받는 터키는 악화된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해 7일 외교차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했지만, 대표단은 9일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다. 미국의 관세폭탄에 빌미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