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피력하고 있지만 국내 채권 시장은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의 불명확한 시그널은 ‘면피용’이라며 믿지 않는 눈치다.

특히 국내 채권시장은 여타국 채권시장 대비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수준 보다 원화 강세를 예상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배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화 약세를 우려하는 국내 상황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은이 좀 더 명확하게 시장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국고채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에 출석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피력한 탓이다. 앞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9개월 만에 금리인상 소수의견이 등장하고 7월 금통위 의사록도 다소 매파적으로 해석됐다. 한은의 금리인상 의지가 강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후 국고채 금리는 재차 하락하기 시작했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최대 1회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 총재는 소수의견을 공식 시그널로 볼 수 없다고 언급하면서 금리인상 시기조차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경기 둔화 예상과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의구심이 채권시장 강세를 이끈 것이다. 시장은 한은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한은의 금리인상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실질적으로 관심을 두는 곳은 미국”이라면서  “한은의 고용·물가·경제성장률 등 각종 지표에 대한 해석과 시그널도 뚜렷하지 않아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에게 금리 결정은 부담이지만 어떠한 결과를 선택하더라도 향후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시그널은 모호한 게 사실이다. 시장 자금이 특정 자산으로 급격히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도 시장에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한은의 불투명한 시그널은 Fed의 그것과 다르다는 해석이다. 결국 Fed의 금리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차 부담이 한은의 금리인상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이다.

▲ 국고채 장단기 스프레드와 회사채 크레딧 스프레드 출처=신영증권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유사한 지적을 했다. 한은의 표면적 금리인상 요건은 잠재성장률 부합과 물가 목표치 근접, 정부와 여론을 감안한 고용지표 회복 확인 정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금리차 확대 부담과 원화 약세·변동성 확대가 한은의 금리인상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7월 한 달간 국고채 수익률 곡선은 베어스티프닝(Bear Steepning) 양상을 보였다. 경기 둔화 우려 속 연내 금리 인상에 대한 의구심이 반영됐으나 가격부담과 대외금리 상승의 영향을 받았다. 채권시장은 8월 금리인상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회사채 시장도 강세를 보였다. AA등급 이상 우량등급은 물론 A급도 수요우위 장세였다. 이에 회사채 스프레드는(회사채AA- 3년물-국고채 3년물) 6월말 대비 3.2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 축소된 43.6bp를 기록했다.

 

Fed, 연내 2회 금리인상에도 한국 금리 오르지 않는 이유

미국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1%(연율 기준)로 예상치를 밑돌았다. 개인소비지출은 확대됐지만 무역분쟁으로 순수출 기여도가 낮은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2014년 3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하반기에도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금리인상 경계령으로 내년 통화정책 기조는 변할 수 있지만 Fed의 연내 4회 금리인상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Fed의 금리인상을 경계하는 이유는 한미 금리격차다. 한미 금리스프레드(미국채 10년물-한국채 10년물)은 올초 이후 지속 확대되고 있다. Fed가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국내로부터 자금이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국내 채권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채권 가격 수준이 아닌 원화 때문”이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향후 원화 강세를 예상하고 배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안심리가 여전한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 통화 대비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판단”이라면서 “채권금리에 더해 환차익을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상해종합지수와 위안/달러 환율 [출처:신영증권]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시장의 심리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였던 만큼 갈등이 완화되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약달러를 지지하고 있다. 원화가 강세로 전환되면 한은의 금리인상은 다소 불필요하다.

다만, 이 운용역은 “국내 채권시장 강세는 자금유츨 시 더 위험할 수 있다”면서도 “한은이 당장 금리를 인상할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통화정책 결정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