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은산분리 완화 기조를 선언한 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8일 일제히 환영논평을 냈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전격 합의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를 거론하며 붉은 깃발법을 언급한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붉은 깃발법은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를 상징합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자동차가 발명되자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을 걱정해 '자동차가 너무 빨라 위험하다'는 명분으로 강력히 반발했고, 영국은 결국 운행중인 자동차 앞에 안전을 위해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따라가야 한다는 붉은 깃발법을 통과시킵니다.

기존 산업 종사자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기 위해 신성장 동력을 스스로 꺾어버린 사례입니다. 최근 모빌리티 규제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사례며, 문 대통령은 이를 거론하며 규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문 대통령이 의료기기 규제 완화에 이어 은산분리 완화까지 추진한 이유는 인터넷전문은행, 즉 핀테크 산업 발전을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 카카오뱅크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의 사명에는 모두 카카오와 케이(KT)가 붙어 있지만, 이들의 주주구성을 고려하면 카카오뱅크는 한국금융지주뱅크, 케이뱅크는 우리뱅크로 불러야 합니다. 카카오뱅크의 주주구성을 보면 한국금융지주가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나 카카오는 18%에 불과하며 케이뱅크는 우리은행이 13.79%의 대주주고 KT와 NH투자증권이 각각 10%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ICT 기술과 금융의 만남을 추구하며 혁신을 위해 ICT 기술기업이 전면에 나서는 개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은산분리가 발목을 잡은 대표 사례입니다.

국내 핀테크 업계는 지금까지 규제 완화, 특히 은산분리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위해 은산분리가 완화되는 한편, 카카오와 KT같은 기업들이 증자를 통해 확실한 주도권을 잡고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문 대통령의 은산분리 완화 기조를 두고 두 인터넷전문은행이 반색하는 이유입니다.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의당은 8일 은산분리 완화를 두고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하더라도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카카오와 KT같은 ICT 기업들의 증자를 허용한다고 인터넷전문은행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고, 고용창출 등의 경제효과도 크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을 독려하며 인터넷전문은행이 산업자본의 사금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던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갑자기 완화 주장을 하자 '말 바꾸기'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국내 핀테크 업체 관계자들에게 이와 관련된 의견을 물었을 때, 대부분 반색하면서도 선뜻 공개멘트를 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케이뱅크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을 위해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부터 보겠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은산분리 완화의 바람을 탄다면 기존 금융권도 새로운 변화를 타진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돌풍을 마냥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안전장치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 3건을 보면 모두 제어장치가 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에게 은행이 돈을 빌려주거나 주식 발행을 금지하는 안도 있고 개인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은 대주주가 될 수 없다는 안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네이버와 카카오가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방안을 원천 차단하는 셈입니다. 또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특정 대주주가 전체 지분의 34%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도 존재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해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일자리 창출 등 경제효과가 미비하다는 점을 꼽습니다. 케이뱅크 직원이 300명 수준인데, 이들을 위한 특혜를 베풀어 줄 이유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 동력도 미비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인터넷전문은행은 한 때 37개 이상 존재했으나 지금은 10개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금융업계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의 점유율은 5%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SFNB는 2001년 8월 캐나다의 RBC 은행에 합병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중국 인터넷전문은행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일당 독재체제인 중국 정부의 특성, 즉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신경쓰지 않고 방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특수성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찬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가운데 기회비용을 따져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ICT 기술의 발전을 위해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명령이 됐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지만 충분한 안전장치를 만든다면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이를 통한 핀테크 전반의 전략을 구성하면 미국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지분구성을 보면 중국의 텐센트가 4%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이뱅크는 정확한 지분비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중국의 알리바바가 주주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 모빌리티 산업이 정부의 규제 일변도로 성장이 정체되는 가운데 네이버와 미래에셋이 외부인 동남아시아 그랩에 투자하는 현상이 오버랩됩니다. 국내 모빌리티 산업이 크지 못한 상태에서 외국 기업의 공세가 이어진다면 우리가 피땀 흘려 키운 약간의 시장도 통째로 넘어갈 판입니다. 텐센트가, 알리바바가 왜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에 판돈을 걸었을까요. 그 가능성에 동의하면서, 피땀 흘려 여기까지 끌고온 인터넷전문은행 시장의 마지막 가능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은산분리 완화를 걱정하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강력한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전제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