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배달앱에서 푸드테크로 진화를 꾀하는 배달의민족이 한국피자헛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레스토랑 서빙 로봇 딜리 플레이트를 시범 운영한다고 8일 발표했다. 배달의민족이 3개 로드맵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기존 딜리 프로젝트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인공지능과 로봇 경쟁력을 세분화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 딜리 플레이트가 피자헛에서 고객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브랜드 딜리...2개의 전략

배달의민족이 피자헛에서 운용한 딜리 플레이트는 피자헛 매장 안에서 테이블 사이를 자율주행으로 오가며 음식을 운반한다. 슬림한 바디에 음식을 올리기에 편하게 구성된 설계가 눈길을 끈다. 주문을 받으면 최적의 경로를 찾아 테이블까지 서빙하고 사람이나 장애물을 마주치면 알아서 멈추거나 피한다. 사람이 걷는 속도로 움직이며 본체 상단의 쟁반을 통해 한 번에 최대 22kg 중량의 음식을 나를 수 있다.

2D-Lidar(공간 데이터 수집 센서)와 3D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 센티미터 단위의 정교한 주행을 할 수 있다. 숨겨진 두 개의 바퀴에는 개별 모터가 달려있어 마치 유영하듯 자유롭게 움직인다. 1회 충전으로 최대 8시간 지속 주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딜리 플레이트는 배달의민족이 투자한 미국 실리콘밸리의 로봇 기술 기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가 개발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 베어로보틱스에 2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베어로보틱스의 시드 라운드(Seed Round) 투자 유치의 하나로 발행된 전환사채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베어로보틱스는 구글 출신의 하정우 대표가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로 레스토랑을 탈바꿈한다’는 모토로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2017년 설립한 신생 스타트업이다.

배달의민족 푸드테크 전략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분류할 수 있고, 로봇은 또 2개의 줄기로 나눠진다. 인공지능은 데이빗이 선봉장이다.  ‘배민데이빗’이라는 이름으로 1차로만 100억원을 투자해 우수 인재를 확보하며 자체 역량을 키워왔으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네이버와 공격적인 인공지능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배달의민족은 올해 1월 네이버의 인공지능 스피커 클로바 프렌즈와의 연동을 바탕으로 음성 주문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발표했으며 2016년부터 네이버 아미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로봇 경쟁력은 딜리라는 통합 브랜드를 중심으로 2개의 줄기가 있다.

배달의민족은 올해 3월 자율주행 음식배달 로봇을 전격 공개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구상한 자율주행 배달로봇은 하반기 실질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으며 최대 10년을 고려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1단계 프로젝트는 실내 환경에서 자율주행 기술 기반의 로봇을 시연 테스트하는 수준이다. 이를 위해 2017년 7월 고려대 정우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파트너십을 맺고 준비했으며, 현재 시제품이 1대 완성됐다. 2단계 실내외가 혼합된 공간에서의 시연 프로젝트는 올해 하반기 예정되어 있다. 스마트시티 플랫폼이 깔린 장소에서 2단계 로봇이 구동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3단계는 일반 보행로를 포함한 본격적인 실외 환경으로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 딜리가 천안 푸드코트에서 작동하고 있다. 출처=배달의민족

딜리는 지난 6월 천안의 한 푸드코트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가로 67.3cm, 세로 76.8cm, 높이 82.7cm 규격으로 위치추정센서, 장애물감지센서 등이 장착됐으며 푸드코트 내 지정 레스토랑에서 준비된 음식을 받아 고객이 앉은 테이블까지 최적의 경로를 스스로 파악, 자율주행으로 움직여 음식을 배달했다. 여기까지가 고려대 정우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추진하는 딜리 프로젝트다.

또 하나의 줄기는 피자헛에 나타난 딜리 플레이트다. 베어로보틱스와의 협력으로 등장한 딜리 플레이트는 매장 내부의 음식 배달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고려대 정우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의 콜라보와 동일하지만,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대 정우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과 모색하는 로봇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배달원의 대체, 보완에 방점이 찍혔다. 3단계 실외 환경을 커버리지로 삼는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 실제 거리에 나서 배달을 하는 로봇은 실내용 로봇과 비교해 설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피자헛에 나타난 딜리 플레이트는 실내용으로 설계, 다양한 산업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음식을 배달하는 것을 넘어 아마존 물류창고를 정리하는 키바처럼 물류용 로봇이 될 수 있다. 배달의민족이 배달앱 사업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퀀텀점프를 노리는 상태에서, 최초 음식과 관련된 실내용 로봇 사용자 경험 노하우를 축적한 후 이와 관련된 파생 영역으로 확장할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배달의민족이 로봇 경쟁력을 키우며 굳이 2개의 줄기를 나눴고, 베어로보틱스의 로봇 경쟁력을 고려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달의민족이 푸드테크 시장 전반을 노리는 한편, 로봇 경쟁력을 2개의 줄기로 나눠서 접근하는 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딜리 플레이트는 물류와 안내, 기타 다른 실내용 로봇 효용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 딜리 플레이트가 피자헛에서 고객에게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스타트업의 사업 확장

최근 숙박앱 플랫폼인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글로벌 액티비티 전략을 구사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기존 숙박앱 시장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액티비티라는 키워드에 집중, 글로벌 진출까지 풀어가겠다는 의지다. 배달의민족도 푸드테크라는 키워드를 선택해 영역의 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단 스타트업의 일이 아니다. 로봇에만 집중한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생활가전 부문도 비슷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실내용 로봇 클로이를 비롯해 인천공항 안내로봇 에어스타 등을 운용하고 있다. 생활가전의 진화가 로봇에 있다고 보면서 인공지능과 초연결 생태계를 묶어내겠다는 뜻이다.

배달의민족도 동일한 전략이다. 타이젠과 빅스비로 통칭되는 자체 초연결 생태계를 활용하려는 삼성전자가 아닌, 아마존과 구글 등 외부 기업과 오픈 생태계를 꾸리려는 LG전자의 로봇 전략과 비슷한 로드맵을 보여주고 있다. LG전자가 핵심 운영체제와 인공지능 기술력을 외부 기업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배달의민족도 생활밀착형 서비스 플랫폼을 보유한 상태에서 로봇 경쟁력을 외부에서 차용한다는 점까지 동일하다. 그러나 기업의 규모 비교와는 별개로, 배달의민족은 업의 본질인 배달앱 플랫폼 경쟁력이 탄탄한데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이기 때문에 LG전자와 같은 생태계 종속성 논란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